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750년 된 창덕궁 향나무, 상상 속 새를 닮았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⑨ ‘가을의 절정’ 품에 안은 창덕궁·창경궁·경복궁·경희궁

등록 : 2020-11-05 14:37 수정 : 2021-04-15 17:22
400년 수령의 회화나무가 빛날 때

춘당지 붉은 단풍 심장처럼 뜨겁고

걸음마다 다른 풍경, 눈 뗄 수 없는데

푸른 잎 담은 고목 ‘날개’ 단 듯 예쁘다

750년 넘었다고 전해지는 창덕궁 향나무.

가을의 절정을 고궁에서 보았다. 한옥의 형태미와 단풍의 색채미가 어울려 고궁의 가을 숲을 완성하고 있었다. 창덕궁·창경궁·경복궁·경희궁, 종로에 있는 궁궐 네 곳을 돌아봤다. 곧 가을이 다 지나갈 것 같아 괜스레 발길이 바빠진다.


창덕궁 회화나무 군락을 지나 부용정에 도착하다


창덕궁 정문 돈화문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회화나무 몇 그루가 왼쪽에 보인다. 마당 오른쪽에 있는 것까지 모두 8그루가 천연기념물 제472호로 지정된 창덕궁 회화나무들이다. 수령 300~400년 정도 된 이 나무들은 임진왜란 때 불탄 창덕궁을 다시 지으면서 심은 것으로 추정한다.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에 이 나무들이 있다.

돈화문 일원은 조정 관료들이 일하는 관청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 회화나무를 심은 것은 중국 고사 중 ‘궁궐 정문 안쪽에 괴목(느티나무, 회화나무)을 심고 그 아래에서 삼공이 나랏일을 논했다’라는 대목에서 유래했다. 회화나무는 이름 높은 선비나 학자의 집에 심기도 했는데, 그래서 학자나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후원 입구로 곧장 걸었다.

후원은 출입 시간과 인원이 정해져 있고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단체로 관람해야 한다. 낮 12시에 출발하는 표를 사고 출발시각을 기다리면서 성정각 일원을 돌아봤다. 성정각은 세자가 학문을 익히던 곳으로, 세자가 거주하던 동궁의 공간 중 하나다. 성정각 마당에 살구나무와 감나무가 있다. 이 감나무는 조선시대 가구를 만들 때 널리 쓰이던 먹감나무다. 살구는 종묘에 제사를 지낼 때 쓰이던 과일 중 하나였다.

드디어 비밀의 숲, 후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창덕궁 후원은 왕실의 정원이었다. 왕의 휴식 공간이자 왕실 행사를 열던 곳이다. 또 왕이 신하들을 격려하고자 술과 음식을 내고 함께했던 곳이다.

부용지와 부용정, 주합루, 영화당이 가을 숲에 둘러싸인 채 고즈넉하다. 부용지 바로 옆 작은 건물은 만개한 연꽃을 닮았다고 하는 부용정이다. 부용정 맞은편 높은 곳에 있는 건물이 주합루이다. 주합루는 부용지를 굽어보고 있으며 부용지 일대 건물을 거느리고 풍경의 중심점이 된다.

주합루의 정문인 어수문(魚水門)은 왕만 드나들 수 있었다. 어수문에는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 임금 또한 백성을 떠날 수 없으므로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뜻이 담겼다.


비밀의 숲에서 옥류천을 보다

영화당 앞을 지나 애련정으로 가는 길에 있는 돌로 만든 불로문은 단풍의 향연이 펼쳐지는 숲으로 가는 문이기도 하다. 애련지는 숙종이 좋아했던 곳이다. 정자와 연못 주변에 단풍이 짙다. 숙종은 연못 옆 정자에 ‘애련정’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정치 혁신과 왕권 강화를 위한 정조의 글이 존덕정에 남아 있다. 존덕정은 애련지를 지나 마주하는 반월지 가에 있는 육각형 정자다. 정조는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글을 지어 정자에 걸었다. ‘세상의 모든 냇물은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니, 그 달이 곧 임금인 나이고 냇물은 너희 신하들이다. 냇물이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치’라는 내용이다.

존덕정 옆 커다란 은행나무는 동궐도에 나오는 그 나무다. 동궐도가 1820~1830년대에 그려졌으니, 이 은행나무의 수령은 적어도 200년은 넘은 게 확실하다.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면서 은행나무와 존덕정을 돌아본다. 짧은 오르막길에 올라서서 옥류천 이정표를 따라간다. 숲에 안긴 비밀의 정원, 옥류천 일원은 숲의 심장 같았다. 작은 물줄기가 시작된 곳에는 소요암이 있었다. 1636년, 바위에 홈을 파 작은 물길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폭포의 축소판이었다. 바위에 새겨진 글자 ‘玉流川’(옥류천)은 인조 임금의 필체다. 그 위에 적힌 시 한 편은 숙종 임금이 지었다.

가을 숲의 끝에서 다시 걸어 나온다. 애련지 단풍 그늘에서 왜가리 한 마리가 고고하게 걷는다. 멀리 바라보는 눈길 끝에서 단풍이 깊어진다. 천 년 정도 묵었다는 느티나무를 지나 창덕궁 돌담을 따라 돈화문으로 가는 길, 750년이 넘었다는 향나무를 보았다. 멋들어지게 깃을 펼친 상상 속 거대한 새를 닮았다. 흙을 완강하게 움켜쥔 밑동, 휘어지고 비틀며 뻗은 가지가 땅에 닿을 듯 다시 하늘로 곧추서서 자란다. 고목의 푸른 잎은 그래서 더 강렬하다.

창덕궁 옥류천 소요암.

사도세자의 죽음을 지켜본 회화나무

창경궁의 가을 숲은 풍기대에서 성종태실과 태실비를 지나 춘당지까지 이어지는 길목이 백미다. 풍기대 주변 숲과 숲 사이로 보이는 전각 풍경을 뒤로하고 성종태실·태실비로 향한다. 태실은 왕자의 태반을 묻었던 조형물이며 태실비는 그 사연을 기록한 비석이다. 성종 임금의 흔적을 지나 춘당지로 가는 길에 만난 붉은 단풍이 심장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궁궐 여성들의 생활구역이었던 내전 터에도 단풍은 곱게 물들었다. 울긋불긋 단풍 물든 춘당지 둘레를 한 바퀴 걷는다. 걸음마다 풍경이 다르게 보이니 한시도 허투루 볼 게 없었다. 푸른 솔잎과 어울린 노랗고 붉은 단풍 그늘 아래 오리들이 모여 논다. 연못 건너편 숲속에서 반짝이는 건 백송이었다. 보물 제1119호 팔각칠층석탑도 연못 옆 단풍과 섞여 있었다. 햇빛 받은 단풍잎이 반짝인다. 그 길을 다 걷고 선인문으로 향했다.

선인문 부근에 온몸을 비틀며 자란 회화나무가 한 그루 있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가 죽은 곳이 이 근처다. 보통의 회화나무와 다른 모습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경복궁 가을 풍경의 으뜸은 향원정 단풍이다. 연못과 그 둘레에 피어난 단풍, 정자와 주변 전각이 어울린 풍경은 옛 달력에서 가을을 장식하던 단골 사진이었다. 지금은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다시 설치됐던 향원지의 취향교를 원래 자리에 복원하고 향원정을 보수하는 공사를 하고 있어 그 풍경을 볼 수 없다. 취향교의 원래 위치는 건천궁 쪽이었다. 장안당과 곤녕합, 복수당 등 건물로 구성된 건천궁 일원에서 연못 다리를 건너 향원정으로 갈 수 있었다. 건천궁 곤녕합은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인 자객에게 살해당한 곳이다.

경희궁 전각과 도심의 빌딩이 어울린 풍경.

향원지의 단풍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광화문 앞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정원이 제격이다. 경복궁과 백악산(북악산), 인왕산 등이 어우러진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대한민국역사박물관 누리집에서 예약 뒤 이용 가능)

경희궁의 단풍은 정문인 흥화문을 지나 전각으로 가는 진입로가 으뜸이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길 양옆에 나란히 이어진다. 궁궐 뒤쪽으로 가다보면 경희궁 전각과 도심 빌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나온다. 궁궐 뒤 작은 운동장 은행나무 단풍도 볼만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정원에서 본 풍경.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