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6411 투명노동자’ 인권 향상…서울시의회도 적극 노력할 것”
등록 : 2020-11-05 15:05 수정 : 2021-01-22 16:56
‘노회찬재단’-한겨레 <서울&> 전태일 50주기 공동기획
서울시의회 의원들과 함께한 ‘6411 노동자 정책간담회’
“코로나 재난, ‘돌봄노동 공공서비스화’ 기회로 삼아야”
봉제노동자 조직 지원조례 필요 공감
6411 버스 ‘새벽 4시엔 100원’ 제안도
“의회와 노회찬재단, 끝까지 관심 갖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 울린 22살 청년의 절규를 그의 분신 50주기에 맞춰 소환했다. 분명 사람이건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같은 존재들. 이른바 ‘투명노동자’라 불리는 봉제·청소·돌봄 노동자의 삶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고달프기 때문이다.
노회찬재단(이사장 조돈문)과 한겨레 <서울&>이 함께한 전태일 50주기 공동기획 ‘6411 투명노동자 정책간담회’가 10월31일 오후 1시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렸다. 노회찬재단의 ‘6411 프로젝트’ 연구 책임자인 김형탁 재단 사무총장, 신희주 가톨릭대학 사회학과 교수, 박고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과 서울시의회 최선(기획경제위), 이상훈(행정자치위), 권수정(보건복지위) 의원이 만나 봉제·청소·돌봄 영역에서 서울시 차원의 정책과 대안을 모색했다.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느낀 고충과 고민 등도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6411 프로젝트’에서 6411은 구로동에서 출발해 강남까지 운행하는 시내버스 번호다. 고 노회찬 의원이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 때 6411번 버스를 언급하면서, ‘6411’은 우리 사회에서 열악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이번 간담회는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노동존중 특별시’를 향한 소망을 재확인한 자리였다. 먼저 노회찬재단의 김형탁 사무총장이 노동 기본권 사각지대에 방치된 봉제노동자 실태를 요약했다.
“봉제노동자 위한 ‘노동공제회’ 활성화 필요” “무엇보다 봉제노동자에 대한 대우는, 삶을 바쳐 한 업종에서 일한 노동자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지지받고 보장받는지와 함께 그 사회의 공정과 정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는 첫 번째 의미가 있습니다.” 김 총장은 “봉제업은 대표적인 도심제조업 가운데 하나지만,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70년대와 마찬가지로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디자인에서 시제품 제작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는 남다른 산업 밑바탕이 있음에도 한국 봉제업은 낮은 임금 수준과 종사자 고령화, 영세한 작업장 환경, 생산지수 하락, 고용 감소 등 요인으로 쇠락하는 중이다. 새로운 세대 유입이 없어서 기존 노동자의 고립과 사회와의 단절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의 삶은 ‘대단히 고단’하다. 작업 특성상 근골격계 질환 발병률이 높고 비수기엔 수입이 없다. 특유의 ‘객공제도’(특정 사업장에 속하지 않고 작업당 정해진 단가에 따라 보수를 받는 노동제도)는 해당 노동자가 퇴직금과 4대 보험 등을 받지 못하는 것과 더불어 사업체가 작업기술을 축적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공정단가·공정임금’ 책정 문제는 봉제업 노동자가 풀어야 할 핵심 의제다. 김 총장은 ‘봉제노동자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노동자들의 조직 형태는 ‘노동공제화’가 일반적이지만 더 응집된 목소리를 내려면 노동조합으로 조직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노동공제 활성화 지원조례’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이상훈 의원은 “노동 당사자들이 노동공제회 활성화를 위해 더 힘 있게 중앙정부에 요구해달라”고 운을 뗐다. 기존 시에서 운영 중인 ‘노동이사제’나 ‘노동지원센터’ 구축 등 서울시 산하 기관들에서부터 노사관계 모범을 만드는 사업 모델을 더 고도화시키고, 이를 광역부터 기초까지 포괄하는 노동자 지원 조직으로 발전시키는 등 더 적극적으로 보편 서비스를 실행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최선 의원은 봉제노동 특성상 노동조합 조직이 어려운 이유로 봉제노동자 스스로 노동자성을 갖는다는 생각이 약한 지점을 짚었다. 최 의원은 ‘이들이 스스로 노동자성을 주장하는 데 실익이 있다고 판단하는지’ 사업장 안팎으로 섬세히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노동 의제는 서울시 담당 정책관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기에 앞으로 시의원들의 릴레이 질의 등 ‘팀플레이’가 필요할 것이라 했다.
“비정규직의 여성화” 6411번 버스 탑승객과 돌봄노동자의 삶
신희주 교수가 발제한 ‘6411 버스 첫 승객 빅데이터 분석 결과와 청소노동자’ 연구는 6411번 버스 탑승객 전수 설문조사와 교통카드 빅데이터 분석 등 7개 데이터 자료를 바탕으로 새벽 4시에 출발하는 두 대의 첫차를 분석한 결과다. 6411번 버스는 구로구에서 출발해 영등포구, 동작구를 거쳐 강남구에 도착한다. 탑승객 가운데 여성이 78.7%, 60대 이상이 83%, 청소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85%에 달한다. 실상 고령 여성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셔틀버스’와 다름없다.
“청소업은 다른 직종에 비해 고령화가 심하고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평균연령은 61.1세(전체 노동자 평균연령 45세). 남성에 비해 여성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과 월평균 수입이 낮습니다. 연령집단 간 임금격차는 줄고 있는데, 성별 간 임금격차는 줄지 않아 청소업 내부에서도 구조적 성별 불평등이 지속됨을 주목해야 합니다.”
청소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규모는 2010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한국 표준직업분류의 소분류 150여 개 직업 집단에서 6번째로 큰 규모다. 하지만 정규직 대신 시간제 일자리가 증가하고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 최저임금 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 상승 등 열악한 고용 조건을 갖고 있다. 65살 이상 청소원 중 43%가 1인가구로 노인 빈곤 가구 증가 추세도 높다. 이에 신 교수는 ‘백원 버스’란 명칭으로, 새벽 4~5시 버스에 오르는 2만3천여명 탑승객의 ‘버스비 인하안’을 아이디어로 내놓기도 했다. 그 시간에 버스를 타는 사람들의 요금을 100원으로 하자는 것이다.
‘돌봄노동자들의 일과 삶의 불안정성’을 주제로 연구 보고서를 내놓은 박고은 정책연구위원은 “지난 10년 동안 상당 부문 제도화가 진행됐음에도 돌봄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과 임금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은 ‘장애인활동지원사, 재가 요양보호사, 시설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총 4개 사회서비스 부문 돌봄노동자를 대상으로 초점집단인터뷰(FGI)를 하고 전문가 집단의 심층면접을 수행한 결과, 특히 돌봄노동자가 갖는 ‘삶의 불안정성’에 주목했다고 한다. 박위원은 “일의 불안정성, 노동조건 및 근무환경 문제, 존중 부족과 권리 주장이 제약되는 구조, 노동자 건강 및 안전 관련 불안정성, 사회안전망 부정합성으로 인해 노출되는 삶의 불안정성을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돌봄노동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노동을 제공한다는 ‘특수성’이 있다. 이 때문에 노동자가 노동권을 주장하는 일이 마치 직업윤리에 위반된다는 생각을 하는 현장 사례가 많았다”며 돌봄노동 부문에 존재하는 특유의 정서에 대한 이해도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상훈 의원은 이에 “돌봄노동을 공공서비스 영역으로 제도화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코로나19란 재난이 오히려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재정적 뒷받침을 할 수도 있다. 감염병이란 재난이 오히려 사회적 백신이 될 것”이라며 긍정적 해석을 내놨다.
“서울시를 예로 들면 총 424개 동에 100명씩 공공 사회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 공공의료서비스까지 더해 동마다 약 6만 명, 공공노동자 시장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거죠. ‘지역사회 통합돌봄’ 시스템이 이제 동 단위로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라고 봐요. 사회적 안전망은 결국 일자리입니다. 최소한 지방정부가 이런 전략을 설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권수정 의원과 최선 의원은 봉제·청소·돌봄 영역의 노동이 곧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임을 꼬집으며 “여성 노동자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성희롱·성폭행 등 70년대식 열악한 노동 환경도 여전하다. 비정규직의 여성화 현상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정책좌담회를 마무리하면서 세 의원은 “해결점이 도출될 수 있도록 노회찬재단에서 끝까지 관심을 가져달라. 서울시의회도 적극적으로 함께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글·사진 전유안 기자 fingerwhal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지난 10월31일 오후 노회찬재단과 한겨레 이 함께한 전태일 50주기 공동기획 ‘6411 투명노동자 정책간담회’ 참여자들이 3시간에 걸친 발제와 토론을 마치고 전태일기념관 벽면에 있는 전태일 동상 앞에서 간담회를 기념했다. 왼쪽부터 권수정(보건복지위) 서울시의회 의원, 이강준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 김형탁 사무총장, 신희주 가톨릭대학 사회학과 교수, 박고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 최선(기획경제위), 이상훈(행정자치위) 서울시의회 의원.
노회찬재단(이사장 조돈문)과 한겨레 <서울&>이 함께한 전태일 50주기 공동기획 ‘6411 투명노동자 정책간담회’가 10월31일 오후 1시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렸다. 노회찬재단의 ‘6411 프로젝트’ 연구 책임자인 김형탁 재단 사무총장, 신희주 가톨릭대학 사회학과 교수, 박고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과 서울시의회 최선(기획경제위), 이상훈(행정자치위), 권수정(보건복지위) 의원이 만나 봉제·청소·돌봄 영역에서 서울시 차원의 정책과 대안을 모색했다.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느낀 고충과 고민 등도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6411 프로젝트’에서 6411은 구로동에서 출발해 강남까지 운행하는 시내버스 번호다. 고 노회찬 의원이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 때 6411번 버스를 언급하면서, ‘6411’은 우리 사회에서 열악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이번 간담회는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노동존중 특별시’를 향한 소망을 재확인한 자리였다. 먼저 노회찬재단의 김형탁 사무총장이 노동 기본권 사각지대에 방치된 봉제노동자 실태를 요약했다.
“봉제노동자 위한 ‘노동공제회’ 활성화 필요” “무엇보다 봉제노동자에 대한 대우는, 삶을 바쳐 한 업종에서 일한 노동자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지지받고 보장받는지와 함께 그 사회의 공정과 정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는 첫 번째 의미가 있습니다.” 김 총장은 “봉제업은 대표적인 도심제조업 가운데 하나지만,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70년대와 마찬가지로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디자인에서 시제품 제작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는 남다른 산업 밑바탕이 있음에도 한국 봉제업은 낮은 임금 수준과 종사자 고령화, 영세한 작업장 환경, 생산지수 하락, 고용 감소 등 요인으로 쇠락하는 중이다. 새로운 세대 유입이 없어서 기존 노동자의 고립과 사회와의 단절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의 삶은 ‘대단히 고단’하다. 작업 특성상 근골격계 질환 발병률이 높고 비수기엔 수입이 없다. 특유의 ‘객공제도’(특정 사업장에 속하지 않고 작업당 정해진 단가에 따라 보수를 받는 노동제도)는 해당 노동자가 퇴직금과 4대 보험 등을 받지 못하는 것과 더불어 사업체가 작업기술을 축적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공정단가·공정임금’ 책정 문제는 봉제업 노동자가 풀어야 할 핵심 의제다. 김 총장은 ‘봉제노동자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노동자들의 조직 형태는 ‘노동공제화’가 일반적이지만 더 응집된 목소리를 내려면 노동조합으로 조직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노동공제 활성화 지원조례’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이상훈 의원은 “노동 당사자들이 노동공제회 활성화를 위해 더 힘 있게 중앙정부에 요구해달라”고 운을 뗐다. 기존 시에서 운영 중인 ‘노동이사제’나 ‘노동지원센터’ 구축 등 서울시 산하 기관들에서부터 노사관계 모범을 만드는 사업 모델을 더 고도화시키고, 이를 광역부터 기초까지 포괄하는 노동자 지원 조직으로 발전시키는 등 더 적극적으로 보편 서비스를 실행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최선 의원은 봉제노동 특성상 노동조합 조직이 어려운 이유로 봉제노동자 스스로 노동자성을 갖는다는 생각이 약한 지점을 짚었다. 최 의원은 ‘이들이 스스로 노동자성을 주장하는 데 실익이 있다고 판단하는지’ 사업장 안팎으로 섬세히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노동 의제는 서울시 담당 정책관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기에 앞으로 시의원들의 릴레이 질의 등 ‘팀플레이’가 필요할 것이라 했다.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왼쪽 셋째)이 “굉장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어 감사했다. 투명노동자들을 위해 앞으로 계속 힘을 모아나가자”며 간담회를 마무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