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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물질 없는 학교’ 향한 작지만 큰 걸음 내딛다
등록 : 2020-11-19 15:25 수정 : 2021-01-22 16:51
초등교사·시민사회가 손잡고 3개년 프로젝트 ‘유자학교’ 추진
교재·키트 등으로 교육·캠페인 진행…안전마크 만드는 게 목표
“교육청에 학교 유해물질 관리 전담부서부터 있어야”
어린이 제품 안전 특별법 시행 5년
가구류·건축재 등엔 유해물질 여전
“안전 기준을 일상제품으로 넓혀야”
지난 13일 강북구 송중초등학교 5학년 6반 교실에서 선생님과 학생 20명이 플라스틱에 관한 특별수업을 하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주 3회 출석 수업을 하는데, 이날 아이들은 플라스틱 줄이기에 대한 그림이나 글을 과제로 해 와 발표했다. 먼저 민솔양은 ‘플라스틱 그만!!’ 글씨에 홀쭉한 북극곰 그림을 그렸다. “지구온난화로 줄어드는 얼음 탓에 먹이 사냥이 힘들어져 죽어가는 북극곰이 늘고 있다”고 담임인 배성호 교사가 거들었다.
아이들은 장바구니, 머그잔, 텀블러, 손수건, 천 가방 등을 쓰자고 제안했다. 정요양은 “씻어 쓰거나 먹는 빨대도 나왔어요”라고 알려줬고, 윤성군은 “과대 포장한 과자는 안 사요”라고 썼다. 일회용 마스크, 배달 용기 문제를 다룬 아이들도 있었다. 서정양은 “마스크를 길가에 버리는 사람들이 있어 동물들이 마스크 고리에 걸려 위험에 빠진다”고 했다. 재령양은 ‘배달 음식 ×, 집밥 ○’라고 큼지막하게 썼다. 배 교사는 “플라스틱이 좋은 점도 있지만, 너무 많이 쓰고 너무 많이 버리는 게 문제”라고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배달 음식은 플라스틱 포장도 문제고, 열량이 높으니 너무 자주 먹지 않았으면 해요”라고 덧붙였다. 아이들 책상엔 교과서 대신 노란 유자 캐릭터에 ‘유자학교’라고 쓰인 교재가 올려져 있었다. 유자학교는 ‘유해물질로부터 자유로운 건강한 학교’의 줄임말이다. 시민사회가 초등교사들과 안전하고 건강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올해부터 3년 동안 펼치는 프로젝트다. 아름다운재단과 사단법인 일과건강,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발암물질 국민행동) 등이 참여한다. 초등학교 5~6학년 대상 교재, 만들기 키트 등 교육 내용 개발과 학생의 자발적 실천 활동을 지원한다. 배 교사는 “과학 수업이 사회 참여수업으로 넓어지며, 세상을 바꾸는 의미 있는 작은 변화가 기대된다”며 “북유럽의 친환경 마크처럼 제조 단계에서 확인돼 누구든 안심하고 살 수 있게 안전마크가 만들어지도록 캠페인을 하려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일상을 되돌아보면서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유자학교의 수업 목표이다. 교재는 5명의 현직 초등교사가 5명의 환경 전문가·활동가와 함께 아이들 눈높이와 교육과정을 반영해 1년여 걸려 만들었다. 유해물질, 플라스틱, 학용품과 체육용품, 화장품과 개인위생용품 등 4가지 주제를 다룬다. 체육, 사회, 과학, 국어, 실과 등 교과목과도 연계했다. 집필위원이기도 한 배 교사는 “교과서와 달리 융통성 있게 풀어갈 수 있게 구성되어, 교과 통합이나 창의적 체험활동 수업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수업도 과학, 사회, 미술, 실과 과목을 통합해 이뤄졌다. 수업 첫머리에 영상으로 플라스틱의 역사를 알아보고, 플라스틱 분리배출에 대한 퀴즈 게임을 했다. ‘칫솔은 플라스틱으로 배출하면 된다, 안 된다’ 등 다른 학교 또래 친구들이 만든 문제를 풀면서 아이들은 올바른 분리배출에 대해 배웠다. 배 교사의 일회용 마스크의 문제점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아이들은 유자학교의 마스크 만들기 키트로 활동했다. 면 마스크에 붙은 라벨지에 그림이나 글씨로 자신만의 마스크를 만들었다. 유자, 꽃, 앵두, 사람 눈, 별 등 자신이 좋아하는 걸 사인펜으로 정성스레 그려 넣었다. 페트병 재활용 원단으로 만든 끈을 끼워 자신의 귀에 맞게 길이를 조정해 묶었다. 마지막으로 마스크 걸이를 달아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마스크’를 완성했다. 5학년 6반 아이들은 지난 10월엔 ‘학용품과 체육용품에 숨겨진 비밀’로 특별수업을 했다. 현장 전문가인 박수미 발암물질 국민행동 사무국장과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이 진행했다. 이 수업은 11월 첫째 주 환경부의 화학 안전주간 온라인 프로그램으로 소개됐다. 수업에서 박수미 사무국장이 휴대용 X선 형광분석기(XRF)를 써 아이들이 유해화학물질을 쉽게 알 수 있게 도와줬다. 실내화, 플라스틱 지우개, 축구공 등에서 유해화학물질이 검출되는지 점검했다. 그는 “PVC(폴리염화비닐)는 딱딱한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어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재질로,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에 프탈레이트라는 화학물질(환경호르몬)을 가소제로 쓴다”며 PVC 재질 상품은 쓰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필통은 천이나 딱딱한 플라스틱 재질 제품을 쓰는 것을 권했다.
김 부소장은 “홈매트 켜고 자도 괜찮을까요?”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물건을 만들 수는 없나요? 돈이 많이 드나요?” “프탈레이트가 우리 몸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뭔가요” 등의 아이들 질문에 답변했다. 그는 “아이들은 표현을 미숙하게 할 뿐이지 이미 알고 있으며,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코로나19에도 유자학교 1차 연도 활동은 순항 중이다. 상반기 콘텐츠(워크북, 동영상 4편, 만들기 키트 3종) 제작을 마쳤다. 시범교육엔 애초 목표 6개 학급보다 훨씬 많은 27개 학급(서울 5개교 12개 학급)과 1개 동아리의 700여 명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교사들의 자발적 참여가 많고, 교재 등 콘텐츠가 풍성해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어 학생들도 재밌어한다는 반응이다. 프로젝트팀은 연말쯤 교육활동 후기 10여 편을 받아 활동 사례집도 만들 예정이다.
교육 환경 개선 활동에 파급효과도 있었다. 유자학교 프로젝트를 내년 초등학교 특화사업으로 계획을 세우는 지역 교육지원청도 있다. 협치사업으로 지역 초등학교 체육교구를 KC 인증제품으로 바꾸는 사업을 하는 자치구도 있다. 금천구 주민협치회는 올해 2월 국가기술표준원과 시도교육감협의회 업무협약을 근거로 교체 지원사업을 안건으로 올려 내년에 추진하려 한다. 서울시의회의 최선 의원은 학교 교육 환경 유해물질 관리 조례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유자학교 프로젝트는 교육과 캠페인 지원을 이어가며 내년엔 안전한 제품 사용을 위한 민간협의체를 구성하고, 마지막 해엔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 인증 프로그램을 개발해가려 한다. 기업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교육 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박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교육청에 학교 유해물질을 관리하는 담당 부서부터 있어야 종합적 실태조사와 개선계획이 나오고 실행으로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교육 당국이 건강한 미래세대를 키우는 데 예산을 사용한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학교 교육 환경의 유해성 우려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10여 년전부터 인조잔디의 수은, 우레탄 트랙과 문구용품의 납·카드뮴 등 유해물질 검출 논란이 이어져왔다. 2015년 어린이가 사용하는 제품의 안전조처를 규정하는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이 제정됐고 법 시행 이후 학용품 안전이 많이 개선되는 긍정적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교실이나 도서관의 가구류, 건축재엔 유해화학물질이 검출된다. 학교 소파, 체육용품 등은 13살 이하 아이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이 아니기에 법 적용을 받지 않는 상황이다. 법 규정이 아이들 제품으로만 국한하는데 아이들 안전 문제를 풀
어가기 위해선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일상제품으로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발암물질 국민행동은 2013년 ‘PVC 없는 학교 만들기 사업’에 이어 2015년부터는 ‘유해물질 없는 건강학교 만들기 캠페인’을 펼쳤다. 하지만 학습 교구는 사용주기도 길고, 예산 때문에 저렴한 문구점이나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사는 경우가 많아 기대만큼의 변화가 나오지 않았다. 박 사무국장은 “유자학교 프로젝트로 교육 당국이 초등학교 교육환경 개선 인식을 새롭게 하게 돼, 학교에서 안전한 제품을 쓸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11월13일 강북구 송중초등학교 5학년 6반 교실에서 담임인 배성호 교사와 학생 20명이 플라스틱에 관한 특별 수업을 하고 있다. 유해물질로부터 자유로운 건강한 학교 프로젝트 ‘유자학교’ 수업으로 진행됐다. 사진은 아이들이 만들기 키트로 만든 마스크를 쓰고 플라스틱 줄이기에 대한 그림·글을 작성한 종이를 들고 있는 모습.
아이들은 장바구니, 머그잔, 텀블러, 손수건, 천 가방 등을 쓰자고 제안했다. 정요양은 “씻어 쓰거나 먹는 빨대도 나왔어요”라고 알려줬고, 윤성군은 “과대 포장한 과자는 안 사요”라고 썼다. 일회용 마스크, 배달 용기 문제를 다룬 아이들도 있었다. 서정양은 “마스크를 길가에 버리는 사람들이 있어 동물들이 마스크 고리에 걸려 위험에 빠진다”고 했다. 재령양은 ‘배달 음식 ×, 집밥 ○’라고 큼지막하게 썼다. 배 교사는 “플라스틱이 좋은 점도 있지만, 너무 많이 쓰고 너무 많이 버리는 게 문제”라고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배달 음식은 플라스틱 포장도 문제고, 열량이 높으니 너무 자주 먹지 않았으면 해요”라고 덧붙였다. 아이들 책상엔 교과서 대신 노란 유자 캐릭터에 ‘유자학교’라고 쓰인 교재가 올려져 있었다. 유자학교는 ‘유해물질로부터 자유로운 건강한 학교’의 줄임말이다. 시민사회가 초등교사들과 안전하고 건강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올해부터 3년 동안 펼치는 프로젝트다. 아름다운재단과 사단법인 일과건강,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발암물질 국민행동) 등이 참여한다. 초등학교 5~6학년 대상 교재, 만들기 키트 등 교육 내용 개발과 학생의 자발적 실천 활동을 지원한다. 배 교사는 “과학 수업이 사회 참여수업으로 넓어지며, 세상을 바꾸는 의미 있는 작은 변화가 기대된다”며 “북유럽의 친환경 마크처럼 제조 단계에서 확인돼 누구든 안심하고 살 수 있게 안전마크가 만들어지도록 캠페인을 하려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일상을 되돌아보면서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유자학교의 수업 목표이다. 교재는 5명의 현직 초등교사가 5명의 환경 전문가·활동가와 함께 아이들 눈높이와 교육과정을 반영해 1년여 걸려 만들었다. 유해물질, 플라스틱, 학용품과 체육용품, 화장품과 개인위생용품 등 4가지 주제를 다룬다. 체육, 사회, 과학, 국어, 실과 등 교과목과도 연계했다. 집필위원이기도 한 배 교사는 “교과서와 달리 융통성 있게 풀어갈 수 있게 구성되어, 교과 통합이나 창의적 체험활동 수업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수업도 과학, 사회, 미술, 실과 과목을 통합해 이뤄졌다. 수업 첫머리에 영상으로 플라스틱의 역사를 알아보고, 플라스틱 분리배출에 대한 퀴즈 게임을 했다. ‘칫솔은 플라스틱으로 배출하면 된다, 안 된다’ 등 다른 학교 또래 친구들이 만든 문제를 풀면서 아이들은 올바른 분리배출에 대해 배웠다. 배 교사의 일회용 마스크의 문제점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아이들은 유자학교의 마스크 만들기 키트로 활동했다. 면 마스크에 붙은 라벨지에 그림이나 글씨로 자신만의 마스크를 만들었다. 유자, 꽃, 앵두, 사람 눈, 별 등 자신이 좋아하는 걸 사인펜으로 정성스레 그려 넣었다. 페트병 재활용 원단으로 만든 끈을 끼워 자신의 귀에 맞게 길이를 조정해 묶었다. 마지막으로 마스크 걸이를 달아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마스크’를 완성했다. 5학년 6반 아이들은 지난 10월엔 ‘학용품과 체육용품에 숨겨진 비밀’로 특별수업을 했다. 현장 전문가인 박수미 발암물질 국민행동 사무국장과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이 진행했다. 이 수업은 11월 첫째 주 환경부의 화학 안전주간 온라인 프로그램으로 소개됐다. 수업에서 박수미 사무국장이 휴대용 X선 형광분석기(XRF)를 써 아이들이 유해화학물질을 쉽게 알 수 있게 도와줬다. 실내화, 플라스틱 지우개, 축구공 등에서 유해화학물질이 검출되는지 점검했다. 그는 “PVC(폴리염화비닐)는 딱딱한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어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재질로,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에 프탈레이트라는 화학물질(환경호르몬)을 가소제로 쓴다”며 PVC 재질 상품은 쓰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필통은 천이나 딱딱한 플라스틱 재질 제품을 쓰는 것을 권했다.
강북구 송중초등학교 5학년 6반 아이들이 11월13일 ‘유자학교’ 수업에서 만들기 키트로 면 마스크 라벨지에 그림을 그려 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