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마을협동금고 만든 뒤 ‘비빌 언덕’이 생겼다
행복둥지 이야기 공모전 우수상 l 강서구 가양5단지 가양오복마을주민회 마을협동금고
등록 : 2020-12-10 14:45 수정 : 2020-12-11 16:01
비영리단체로 협동조합 방식 운영
매달 5천원 반년 내면 빌릴 수 있어 연 2%, 상환기간 10개월로 연장 가능 현재 조합원 180명, 기금 5천만원 “주민 간 신뢰 쌓은 게 가장 큰 성과”
강서구 가양5단지 가양오복마을주민회는 마을협동금고 운영으로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을 풀 수 있게 서로 돕고 있다. 2017년 7월 가양오복마을주민회 마을협동금고 조합원들이 모여 연 창립총회.
조합원마다 저축과 대출에 저마다 사연 담겨 우리 마을협동금고를 운영하는 주체는 가양5단지 주민이다. 단순하게 저축의 의미를 넘어 내가 내는 적은 돈으로 어려운 누군가를 돕고 있다. 어느 날 조합원 한 분이 대출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하나뿐인 아들이 입대 뒤 첫 휴가를 나오는데 제일 좋아하는 소고기를 아들에게 사주고 싶다며 대출을 신청했다. 그는 그동안 마을협동금고에 출자를 꾸준히 해 문제없이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이분의 사연에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군 복무로 고생하는 아들을 잘 먹이고 싶은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마을협동금고에는 180명 조합원 한 분, 한 분마다 저축과 대출을 하고자 하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89년 서울에 영구임대아파트가 처음 만들어진 뒤 현재 27만 가구 이상의 임대주택과 4만8천 가구 이상의 영구임대아파트가 있다. 그 가운데 가양5단지에는 2411가구가 있다. 구성을 보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36%, 장애인 12% 등 사회적 약자 계층이 거의 절반가량 차지한다. 취약계층이 밀집한 영구임대아파트단지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비롯해 심리적·정서적 어려움 등을 겪는 주민이 많다. 가양5종합복지관은 5단지 주민들의 어려움을 파악하기 위해 지속해서 주민들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주민이 가장 힘든 점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꼽았다. 그래서 주민들이 조금씩 저축해 모은 돈으로 급한 일이 생길 때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을협동금고의 창립을 계획하게 됐다. 2016년 여름이었다. 야심 차게 계획은 수립했으나 시작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 주민은 우리 동네에서 이런 활동이 가능하겠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마을협동금고가 가양5단지에 뿌리 내릴 수 있다고 믿는 주민들을 찾아 한 명씩 차례로 만났다. 주민 10명과 함께 추진준비위원회를 결성하게 됐다. 꾸준히 회의하며 창립 준비를 했고, 이러한 노력 덕분에 그해 12월 출자가 시작됐다.
조합원 100명, 출자금 500만원 만들어 공식 창립 위원들과 함께 조합원 100명, 출자금 500만원 이상 모였을 때 공식적으로 마을협동금고 창립총회를 하자고 목표를 세웠다. 대출도 공식적인 창립 뒤 시작하기로 했다. 이 목표는 조합원들 노력 덕분에 예상보다 이른 2017년 6월 달성했다. ‘가양오복마을주민회’를 비영리 임의단체로 등록하고, 그해 7월 창립총회를 준비하며 마을협동금고의 체계성을 갖추기 위해 정관·대출규정 작업, 이사회 임원 선출, 사업계획과 예산안 작성 등을 논의했다. 비영리단체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는 틀을 짰다. 대망의 7월5일 가양5종합사회복지관 3층 강당에서 100명가량의 조합원, 내빈들과 함께 마을협동금고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우리가 서로 협동하면 작은 힘이 모여 나와 이웃이 스스로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민이 주민을 돕는 5단지 마을협동금고는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사랑방처럼 여러분 곁의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어 시원한 샘물을 떠놓고 마실 수 있는 마을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혼자가 아닌 우리라면 가능합니다!”라는 안성원 초대 이사장의 개회사는 스스로 가양5단지의 희망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주민들 마음을 대변했다.
7월 가양5단지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한 동별 조합원 만나기 프로그램.
장터·축제 판매 행사 등으로 운영비 700만원 마련 2017년부터 마을협동금고 조합원들은 운영비를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에 참여했다. 대부분 고령인 조합원들이 어떻게 진행할지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에 나섰다. 단오, 허준 축제 기금 마련 행사, 공동경제사업, 절임배추 판매 행사, 까치공원 아나바다 장터 참여 등이 대표적이다. 가양오복마을주민회의 가치 중 하나인 ‘자립’을 위해선 경제적 안정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출발 때 한 푼도 없었던 운영비는 현재 700만원 정도 모였다. 마을협동금고는 이 가운데 일부를 조합원 경조사에 부조하거나 명절 때 따뜻한 정을 함께 느끼기 위해 작은 선물을 나누는 데 썼다. 비록 몸은 힘들고 지쳤지만, 함께 행사에 참여한 조합원들 사이 유대감이 형성됐고 ‘우리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마을협동금고 조합원이라는 소속감, 자긍심을 가질 기회였다.
‘혼자가 아닌 우리라 가능’ 경험치 쌓고 있어 4년째 꾸준히 달려온 마을협동금고는 어느덧 180명의 조합원과 약 5천만원의 기금이 있는 공동체가 됐다. 시작은 조합원들이 저축 습관을 길러 갑작스러운 어려움을 겪을 때 서로 돕자는 것이었지만, 마을협동금고는 단순히 돈과 관련한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조합원 간 결속을 다지고 서로를 알기 위해 ‘동별 조합원 만나기’ 같은 프로그램으로 넓혀갔다. 동마다 거주하는 조합원들을 초대해 만남의 시간을 가지며 사라져가는 ‘이웃사촌’의 의미를 일깨워주기 위해 애썼다. 특히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마음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데 가장 많이 신경을 썼다. 같은 동에 마음 맞는 사람을 알게 되어 가깝게 지낸다는 조합원이 하나둘씩 생겼다. 동별 조합원 만나기를 통해 마을협동금고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주민들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마을협동금고는 조합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교육을 해왔고, 앞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조합원들은 리더십, 회계 등 역량 강화 교육을 받았다. 더 많은 조합원 교육이 이뤄지고, 교육에서 배운 것이 자립에 큰 힘이 될 거라 기대한다. 주변에서 마을협동금고의 성과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마을협동금고는 주민들 간에 서로 신뢰가 쌓이는 것을 가장 큰 성과라고 말한다. 상환 기간(10개월) 내 대출 상환율은 90% 이상이고, 연장이나 분납 등을 포함하면 거의 100% 상환이 이뤄졌다. 주민들은 서로 믿고 돕는 경험치를 쌓고 있다. ‘혼자가 아닌 우리라 가능한’ 마을협동금고로 주민들은 스스로 비빌 언덕을 만들어간다.
2019년 10월 강서구 허준 축제에서 가양오복마을주민회 회원들이 운영비 마련을 위해 펼친 판매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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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가양5단지 가양오복마을주민회는 마을협동금고 운영으로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을 풀 수 있게 서로 돕고 있다. 2017년 7월 가양오복마을주민회 마을협동금고 조합원들이 모여 연 창립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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