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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늦어도 괜찮아” 궁궐 사진으로 배우는 코로나 마음 극복법
등록 : 2021-01-14 17:52 수정 : 2021-01-14 23:24
궁궐해설사로 구성된 궁궐사진반 지난 1년 활동 리뷰
코로나 상황 속 사진전 진행하며 ‘생활의 교훈’ 얻어
“모여서 함께 사진 못 찍었지만 개별 출사로 각자 개성 획득”
개인 생각 자유 촬영, 생산성 높아져
시간 흐름에 관심, 남들 못 본 곳 눈돌려
코로나 극복 애쓰는 시민 모습 겹쳐져
“궁궐 사진을 찍으면서 느낀 것은 1~2초 늦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회생활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해) 조금 늦어도 큰 문제는 없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됐습니다.” 새해 첫날인 지난 1월1일, 경복궁을 찾은 궁궐사진반 강정석 해설사의 말이다. 궁궐사진반은 자원봉사 궁궐 해설 단체인 ‘우리문화 숨결’(대표 강성모) 소속 사진반이다. 궁궐사진반원들은 모두 ‘우리문화 숨결’ 소속 궁궐해설사, 즉 ‘궁궐길라잡이’다. 궁궐길라잡이는 매주 일요일 경복궁·창덕궁·창경궁·경운궁(덕수궁)·경희궁의 5대 궁궐과 종묘를 찾은 관람객을 대상으로 해설을 진행한다. 이날 경복궁에는 강 해설사를 비롯해 8명의 궁궐사진반원과 이들을 지도하는 백승우 사진작가가 함께 모였다. 서울 하얏트호텔 상무이면서 프랑스에서 사진전을 연 사진가이기도 한 백 작가 또한 궁궐길라잡이다. 강 해설사를 비롯한 궁궐사진반원들은 2019년 12월 ‘궁궐사진반 4기’ 모집 때 합류해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 사진을 배우고, 궁궐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시각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22~27일 서울 충무로 비움갤러리에서 ‘궁궐, 사진을 보(步)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이날은 궁궐사진반원들이 전시회를 마친 뒤 만나 지난 1년의 활동을 되돌아보는 자리였다. 과연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어떻게 사진을 배우고 찍었고, 또 무엇을 느꼈을까? 사실 지난해 궁궐사진반 활동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코로나 때문이다. 백 작가는 “지난해 1월 첫째 주 사진 수업 때는 코로나라는 것은 남의 나라 얘기였다”며 “그러나 2월 말에는 코로나 때문에 사진 수업을 전혀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지난해 궁궐사진반은 이전에 늘 해오던 1박2일 일정 출사도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9명의 사진반원 전체가 모여 함께 사진을 찍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코로나도 이들의 사진에 대한 열정을 막지는 못했다. 사진반은 곧 비대면 온라인 교육을 진행하는 방법으로 사진 공부를 했다. 문제는 현장 촬영 실습이었다. 이전에는 사진반원 전원이 같은 장소에 모여 같은 주제를 가지고 사진 촬영 실습을 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에 그런 ‘코로나 이전의 실습 방식’은 더는 가능하지 않았다. 백 작가는 “그래서 지난해에는 촬영 실습도 따로따로 하고, 주제도 개인 주제로 바꿔 진행했다”고 한다. 백 작가는 “걱정이 많았지만 개별적으로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찍게 되니 결과적으로 코로나 이전보다 생산성이 높았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궁궐사진반원들이 지난 12월 전시에 내놓은 사진들은 개성과 주제 의식이 뚜렷했다. 경운궁을 해설하는 신해정 해설사는 출품작 ‘과거와 현재의 조우’에서 경복궁 근정전 동편 모습과 서울 시내 고층빌딩을 한 프레임에 담았다. 보통 관람객이 경복궁에 오면 근정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만, 신 해설사는 근정전을 등지고 사진을 찍어 다른 이미지를 만들었다.
경복궁을 해설하는 강정석 해설사도 경복궁 건청궁을 배경으로 한 작품 ‘모든 것은 변화하고 발전한다’에서 100여 년 차이가 나는 두 시간을 대비시켰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인 건청궁을 배경으로 한 100여 년 전 사진과 현재 사진을 잇달아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강 해설사는 이런 대비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종묘를 해설하는 이혁 해설사 또한 ‘그들의 시간’이라는 작품을 통해 을미사변을 조명한다. 하지만 카메라에 담은 것은 떨어진 꽃잎을 가득 담은 붉은 꽃신의 모습이다. 꽃신을 명성황후로 의인화함으로써 을미사변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역시 종묘를 해설하는 어성희 해설사는 하늘로 눈을 돌린다. 그는 ‘시간잡기: 쉼’이라는 작품에서 창덕궁 환경전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본 모습을 담았다. 누워서 찍지 않으면 포착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그의 작품은 그래서 “앞만 보고 가지 말고 잠깐 걸음을 멈춰 쉬어가자”는 속삭임으로 읽힌다.
경운궁을 해설하는 심원섭 해설사는 걸어가는 사람들 뒷모습에 주목했다. 그는 ‘궁궐의 길’이라는 작품에서 종묘 정전 앞을 걷는 사람의 뒷모습을 프레임에 넣었다. 그는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실존하는 삶을 가장 빛나게 상징하는 듯하다”고 설명한다.
남들이 보지 못한 곳을 사진기에 담은 이들도 있다. 종묘를 해설하는 한유나 해설사는 ‘시간과 감정’이라는 작품에서 전각에 있는 전통 창호를 들어 올릴 때 거치대로 사용하는 등자쇠(걸쇠)를 클로즈업해서 찍었다. 한 해설사는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자그마한 녹슨 걸쇠는 시간과 역사를 기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창덕궁을 해설하는 노혜선 해설사는 ‘동궐도 속의 궁’이라는 작품에서 창덕궁 옥당을 담았다. <동궐도>는 조선 후기 순조 임금 때 도화서 화원들이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그림이다. 노 해설사는 “200여 년 전에 그려진 궁궐 그림 속 공간들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을 찾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고 말한다.
경운궁을 해설하는 한숙은 해설사는 상상력을 통해 궁궐 안을 여성의 시선으로 돌아본다. 그의 출품작 ‘궁에서 여성의 흔적 느껴보기’는 손거울에 비친 옛날 자물쇠를 담은 작품이다. 한 해설사는 “일반적으로 남성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궁궐에서 여성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개개인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낸 작품을 보면서 궁궐사진반원들 사이에서 ‘싸부’로 통하는 백승우 작가는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제가 늘 강조했던 것이 예쁜 사진이 아니라 본인의 생각을 담은 사진을 찍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 작품들이 모두 각자의 시각으로 제대로 찍은 것 같아서 지도한 사람으로서 기쁩니다.”
본인 자신도 경웅궁을 해설하는 궁궐길라잡이인 백 작가는 2016년 처음 궁궐사진반을 모집할 때 이전과는 다른 궁궐 사진을 꿈꿨다. “궁궐 사진은 많지만 궁궐을 해설하는 궁궐길라잡이가 찍은 궁궐 사진은 보다 깊이가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1~3기 궁궐사진반원들도 이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상황인 2020년에 활동한 궁궐사진반도 그가 그렸던 미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궁궐사진반 4기 구성원들은 코로나 팬데믹의 열악한 상황을, 이전보다 궁궐을 더욱 날카롭게 바라보고 자신들의 삶도 깊이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은 듯하다.
무엇보다 반원들은 이제 한 장의 사진을 정지된 한순간의 모습으로만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사진을, ‘찍히기까지의 많은 시간과 그 사진이 찍힌 이후의 많은 시간을 응축한 표현체’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됐다.
한숙은 해설사는 “지난 1년간 궁궐 사진을 찍으면서 다양한 시선이 생겼다. 똑같은 장소에서 촬영하더라도 다양한 사진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에 따라 한 해설사는 “세상을 좀더 집중해서 자세히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한유나 해설사도 대상을 좀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힘이 생긴 듯하다고 말한다. 그는 걸쇠뿐 아니라 건물 창호를 장식하는 작은 문양 등 그저 스쳐 지나가기 쉬운 대상에 눈길을 주어 작품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그저 스쳐 지나가지만, 개개의 사물은 다 나름의 존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궁궐사진반원들이 궁궐에 걸맞은 좋은 사진을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를 사물들이다. 하지만 궁궐사진반원들은 코로나 상황에서 사진을 배우면서, 그 이전에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것들을 새롭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그래서일까? 궁궐사진반 4기의 전시회 사진들에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우리는 멈춰 서 있지 않았고, 2021년에도 우리는 정지해 있지 않을 것이다.’
사진들이 시민들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지난 1월1일 자원봉사 궁궐해설사인 ‘궁궐길라잡이’로 구성된 궁궐사진반원들이 경복궁 사정전 앞에 모였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개최한 사진전 ‘궁궐, 사진을 보(步)다’ 평가회를 겸해 지난해 궁궐사진반 활동을 돌아봤다. 사진 왼쪽부터 어성희·강정석·노혜선·이혁 해설사, 백승우 작가, 한숙은·심원섭·한유나·신해정 해설사.
“궁궐 사진을 찍으면서 느낀 것은 1~2초 늦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회생활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해) 조금 늦어도 큰 문제는 없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됐습니다.” 새해 첫날인 지난 1월1일, 경복궁을 찾은 궁궐사진반 강정석 해설사의 말이다. 궁궐사진반은 자원봉사 궁궐 해설 단체인 ‘우리문화 숨결’(대표 강성모) 소속 사진반이다. 궁궐사진반원들은 모두 ‘우리문화 숨결’ 소속 궁궐해설사, 즉 ‘궁궐길라잡이’다. 궁궐길라잡이는 매주 일요일 경복궁·창덕궁·창경궁·경운궁(덕수궁)·경희궁의 5대 궁궐과 종묘를 찾은 관람객을 대상으로 해설을 진행한다. 이날 경복궁에는 강 해설사를 비롯해 8명의 궁궐사진반원과 이들을 지도하는 백승우 사진작가가 함께 모였다. 서울 하얏트호텔 상무이면서 프랑스에서 사진전을 연 사진가이기도 한 백 작가 또한 궁궐길라잡이다. 강 해설사를 비롯한 궁궐사진반원들은 2019년 12월 ‘궁궐사진반 4기’ 모집 때 합류해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 사진을 배우고, 궁궐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시각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22~27일 서울 충무로 비움갤러리에서 ‘궁궐, 사진을 보(步)다’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이날은 궁궐사진반원들이 전시회를 마친 뒤 만나 지난 1년의 활동을 되돌아보는 자리였다. 과연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어떻게 사진을 배우고 찍었고, 또 무엇을 느꼈을까? 사실 지난해 궁궐사진반 활동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코로나 때문이다. 백 작가는 “지난해 1월 첫째 주 사진 수업 때는 코로나라는 것은 남의 나라 얘기였다”며 “그러나 2월 말에는 코로나 때문에 사진 수업을 전혀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지난해 궁궐사진반은 이전에 늘 해오던 1박2일 일정 출사도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9명의 사진반원 전체가 모여 함께 사진을 찍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코로나도 이들의 사진에 대한 열정을 막지는 못했다. 사진반은 곧 비대면 온라인 교육을 진행하는 방법으로 사진 공부를 했다. 문제는 현장 촬영 실습이었다. 이전에는 사진반원 전원이 같은 장소에 모여 같은 주제를 가지고 사진 촬영 실습을 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에 그런 ‘코로나 이전의 실습 방식’은 더는 가능하지 않았다. 백 작가는 “그래서 지난해에는 촬영 실습도 따로따로 하고, 주제도 개인 주제로 바꿔 진행했다”고 한다. 백 작가는 “걱정이 많았지만 개별적으로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찍게 되니 결과적으로 코로나 이전보다 생산성이 높았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궁궐사진반원들이 지난 12월 전시에 내놓은 사진들은 개성과 주제 의식이 뚜렷했다. 경운궁을 해설하는 신해정 해설사는 출품작 ‘과거와 현재의 조우’에서 경복궁 근정전 동편 모습과 서울 시내 고층빌딩을 한 프레임에 담았다. 보통 관람객이 경복궁에 오면 근정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만, 신 해설사는 근정전을 등지고 사진을 찍어 다른 이미지를 만들었다.
신해정 해설사의 ‘과거와 현재의 조우’,
강정석 궁궐길라잡이의 작품 ‘모든 것은 변화하고 발전한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인 건청궁을 배경으로 한 100여 년 전 사진과 현재 사진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혁 해설사의 ‘그들의 시간’,
어성희 해설사의 ‘시간잡기: 쉼’,
심원섭 해설사의 ‘궁궐의 길’,
한유나 해설사의 ‘시간과 감정’,
노혜선 해설사의 ‘동궐도 속의 궁’.
한숙은 해설사의 ‘궁에서 여성의 흔적 느껴보기’
문경희 해설사의 ‘궁궐 길라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