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볼만한 전시&공연

최초 여성 감독 박남옥, 6개월 된 딸 업고 ‘레디 액션’ 외친 아프레걸

명색이 아프레걸(~24일)

등록 : 2021-01-21 16:38

전국에 있는 영화인 중 여성 비중은 얼마나 될까.

여성 영화를 소개하는 ‘퍼플레이’에 따르면 국내 대학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여학생은 약 60%라고 한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영화 홍보마케팅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은 90%가 넘는다 했다. 영화감독 중 여성 감독 비율은 약 7%에 그치지만, 이 소식을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1923~2017)이 들었다면 조금은 반가워하지 않았을까.

국립극장은 24일까지 달오름극장에서 박남옥의 삶을 그린 기획공연 <명색이 아프레걸>을 무대에 올린다. ‘아프레걸’은 ‘전후파’라는 뜻의 프랑스어 아프레 게르(apres-guerre)에서 ‘게르’를 ‘걸’(girl)로 대체한 1950년대 등장한 신조어이다.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난 여대생, 직업을 가진 여성, 유한마담 등 새로운 ‘여성’을 일컫는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격동의 시절을 보낸 박남옥은 고교 시절엔 투포환 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화여대를 중퇴하고 기자를 하다 국방부 촬영대에서 전쟁뉴스를 촬영한 뒤 메가폰을 잡았다. 전통적 여성상에 도전장을 내민 ‘아프레걸’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 신여성인 셈이다.

그는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를 수습하기도 벅찬 1955년에 영화 <미망인>을 중앙극장에서 선보였다. 심지어 6개월 된 딸을 등에 업은 채 ‘레디-액션’을 외쳤으며, 언니에게 빌린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배우와 스태프의 점심까지 직접 차려가며 촬영했다.

이런 박남옥의 삶을 조명한 <명색이 아프레걸>은 시련에 도전하고 극복해나가는 한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 지난 20년간 20편이 넘는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고연옥 작가와 김광보 연출이 다시 손잡았다. 9년 만에 국립극장 전속단체인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모두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을 지냈으며, 소설 <세 여자>를 집필한 작가 조선희는 “이렇게 해서 우리는, 너무 일찍 영화계를 방문했고, 마치 ‘1인 군대’처럼 분투하다가 시대적 한계에 등 떠밀려 사라졌던 한 ‘신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대부분의 영화인이 전쟁으로 하던 작업도 내려놓는 시기에 전쟁 자체를 화두로 영화를 만든 박남옥을 다룬 이번 작품은 고단한 시대에 안간힘을 쓰며 나아가려는 현대인에게도 울림을 던진다.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시간: 금 오후 7시30분, 토·일 오후 3시 관람료: 좌석별 다름 문의: 02-2280-4114

김영민 서울문화재단 홍보아이티(IT)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