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우의 서울&

“골목을 뒹구는 동장을 꿈꿉니다”

황석연 독산4동장의 첫 민간인 동장 6개월 체험 토로

등록 : 2016-07-14 15:52 수정 : 2016-07-15 11:33
우리나라 첫 민간인 출신 동장으로 6개월 동안 일해 온 황석연 금천구 독산4동장이 동민들과 함께 밥도 지어 먹고 모임도 하는 주민센터 안 ‘너나들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서울 금천구 독산4동 동장 황석연(49) 씨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일반 시민 출신 동장이다. 지난 1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동장 공모에서 뽑혀 2년 임기 동장이 됐다. 동장 공모는 말단 주민 행정의 혁신을 바라는 박원순 시장의 바람에 따라 몇 개 구청에서 시도되었으나 서울시공무원노조의 반발로 대부분 무산되었고, 차성수 금천구청장의 의지로 독산4동에서 유일하게 성사됐다. 교사, 기자, 교육사업가, 혁신운동가 등 다양한 경력을 쌓은 자칭 타칭 ‘낙하산 동장’의 지난 6개월은 어땠을까?

 “주민들은 과거보다 동 행정이 부드러워졌다 하고, 공무원들은 여전히 우려와 기대로 바라 봅니다. 나는 정치를 하거나 누구의 자리를 뺏으러 온 사람이 아니라 실험실에 투입된 임상연구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주고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임기를 마칠 때는 공무원들에게도 성공 사례라는 평가를 받고 싶고요.”

ㅡ공공무원들 속에서 외로웠을 것 같은데, 지난 6개월을 자평해 본다면?

 “재미있었고 또 그만큼 힘들기도 했습니다. 동장을 공모한 취지는 주민행정의 혁신이고, 혁신 목표는 통치에서 협치로, 자치로 바꾸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혁신을 하려면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문제와 목표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요. 지난 6개월은 그런 과정이었습니다. 남은 임기 동안 여기서 얻은 확신을 다른 공무원들이, 다른 동 주민센터에서도 구현할 수 있는 모범 사례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ㅡ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이 있다면?


 “협치와 자치의 원리입니다. 주민들 스스로 지지와 격려를 나누면서 자기 주도하에 마을을 변화시키고 가꾸어가게끔 하는 것이지요. 지금은 ‘통치’가 통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박원순 시장도 동사무소를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로 바꾸고 기능도 복지 중심으로 바꾸지 않았습니까? 이제 동사무소는 관공서가 아니라 주민과 공무원이 ‘동거’하는 곳입니다. 지역의 생활과 문화의 흐름이 모이고 결정되는 복합복지문화센터여야 합니다.”

금천구는 지난해부터 동장실이 사라졌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취지는 동장이 동장실에만 앉아 있지 말라는 것이다. 황 동장은 동장실에 ‘협치 테이블’을 놓고 ‘뜬구름 다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렇게 동장실을 동장과 주민들이 함께 모여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 여기에 동네의 온갖 사안들을 가져오게 한다. 논의된 마을 의제는 마을계획단을 통해 주민동의를 구한 뒤 예산 확보를 거쳐 주민들 손으로 직접 사업이 집행되는 절차를 밟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 쓰레기 문제가 해결되고, 동사무소에 ‘가장 재밌는 영화관’이 만들어지고, 동네 꼬마들이 신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마을 물놀이터가 성당 주차장에 생긴다.

“고질적인 쓰레기 무단투기는 청소차를 늘이고 용역을 더 쓴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쓰레기를 치우는 재활용 환경자원사를 주민들 가운데 의욕 있는 사람들로 뽑아 ‘도시 광부’라 이름 짓고, 그들에게 자신의 일에 대한 자존감을 심는 일부터 열심히 했습니다. 가장 지저분한 무단투기 장소는 화단으로 바꾸었습니다. 주민들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지금 동네 골목을 가 보십시오. 완전히 바뀌었습니다(실제로 기자가 가 본 독산4동 골목 화단은 담배꽁초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제는 주민들이 알아서 화단을 가꾸고 쓰레기 투기를 감시할 정도로 아끼는 장소가 되었어요.”

황 동장이 생각하는 좋은 마을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주민들이 할 일이 있다. 복지 사각지대가 없다. 골목이 깨끗하다. 돈이 생기는 장터가 자주 선다. 건강 프로그램이 잘 돌아간다.”

ㅡ이 다섯 가지가 있으면 그 동네는 살기 좋은 동네가 된다?

 “이걸 잘 해내면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마을의 공간이 바뀝니다. 금천구 독산4동이 강남의 서초동이 될 수는 없지만, 서초동 사람들보다 행복한 마을이 될 수는 있다고 믿습니다.”

독산4동 동 주민센터에는 2014년 서울시 사업으로 동네 어린이들이 그린 ‘미래의 우리 동네 지도’가 걸려 있다. 그림 속에는 ‘가장 재밌는 영화관’이 있고 성당 옆에 수영장이 그려져 있었다. 황 동장은 그 그림 속 아이들의 꿈을 실제로 이뤄 주고 싶었다 한다.

“독립영화하는 분들이 영화를 상영하러 오는데, 그 장소를 ‘가장 재밌는 영화관’이라고 했습니다. 수영장이 그려진 곳을 가 봤더니 성당이 있어요. 신부님이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흔쾌히 주차장을 내주었고, 주민들의 요구에 서울시는 3000만 원의 예산을 내놓았습니다. 그렇게 뜻이 모여서 오는 19일부터 열흘간 독산4동 골목 안의 독산성당 주차장에 아이들의 물놀이터가 들어섭니다. 과거 같은 동사무소였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이 수영장 사건이야말로 주민자치가 이뤄낸 놀라운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님도 19일 개장식에 꼭 오셔서 이 기적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구가 줄어드는 마을에 아이가 태어나자 황 동장은 대문에 금줄을 쳐 주고 축가를 불러 주며 마을 잔치를 벌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황 동장의 이벤트에 지역 의원들은 출산장려 사업을 추진해 보겠다며 호응했다.

“남은 임기 동안에는 주민자치 역량을 강화하는 데 매진하고 싶습니다. 도시 광부나 성당의 신부님은 우리 마을의 ‘수퍼 히어로’들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마을을 위해 일하는 ‘수퍼 히어로’들을 많이 발굴해 마을을 이끄는 주역들이 되게 하고 싶습니다. 그게 주민자치의 밑거름이 됩니다.”

황 동장의 활약은 지방자치와 주민자치를 향해 정부 조직이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중요한 실험이다.

“전국에 3600명의 동장이 있다고 하는데, 그들이 하기에 따라 마을이 바뀌고, 마을이 바뀌면 정치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게 됩니다. 선진국은 다름 아니라 마을에서부터 옵니다. 제 역할은 2년 동안 실험을 열심히 해서 그 실험의 결과를 전국의 공무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학습능력이 탁월합니다. 저는 그들을 믿고 그들은 저를 훌륭한 사례로 믿고 지원해 주신다면 좋은 결과를 공무원들에게 넘겨줄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ㅡ임기를 마칠 즈음에는 대통령이나 서울시장에게 독산4동의 실험 결과를 자랑스럽게 ‘보고’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은 쓰려고 합니다. 이 중요한 민주주의 실험을 사장시키면 안 되지요. 제목도 정해 놨어요. 황 동장의 ‘뜬구름 다방’.”

이인우 <서울&> 콘텐츠 디렉터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