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지금 퇴근하니까 냉동실에 맥주 두 병만 넣어놔 줘!” 요즘처럼 후텁지근한 날씨에는 평소 전화 한 통 없던 남편의 애달픈 부탁 전화가 자주 온다. 살짝 얄밉기는 하지만, 물에 적신 키친타올까지 둘러 얌전히 냉동실에 맥주를 넣어 둔다. 실온에 있던 맥주가 마시기 좋은 온도가 되려면 약 1시간 정도 냉동실에 두어야 하는데, 남편의 도착 시간이 그보다 빠르니 숨겨진 ‘생활의 지혜’를 사용해 본 것이다.
시원한 맥주를 생각하며 막히는 퇴근길을 헤쳐 귀가하고 있을 남편을 위해 또 필요한 건 안주. 냉장고에서 비장의 무기 소시지를 꺼낸다. 허기진 배까지 채워 줄 맥주 안주를 만들어 볼 참이다. 유난히 소시지를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연애 시절부터 수없이 먹은 소시지채소볶음을 감히 맥주 안주의 최고봉으로 꼽아 본다. 예전에는 ‘소시지야채볶음’이라 일렀던 일명 ‘쏘야’를 신나게 볶아 볼까 한다.
시작은 칼집 내기이다. 소시지에 칼집을 내면 더 맛나게 보이기도 하지만 양념도 촉촉하게 잘 배어 맛이 훨씬 좋아진다. 칼집 낸 소시지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낸다. 소시지의 부드러운 식감을 살리기도 하지만 소시지에 들어 있는 첨가물 아질산나트륨을 제거하려는 목적이 크다. 좀 더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내려고 넣는 발색제인 아질산나트륨은 주로 육가공품에 많이 쓰이며, 방부제 구실도 하는 대표적인 식품첨가물 중 하나다. 요즈음 유해 가능성 때문에 꺼려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자 아질산나트륨을 뺀 흰 소시지가 많이 나오는 추세다. 소비자의 요구가 식품 트렌드를 바꾸게 된 것인데, 이런 변화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냉동실에 넣어 둔 맥주가 아찔하게 시원해질 무렵 달큰한 양파, 파프리카 등 다양한 채소들과 함께 간단하게 볶아 낸 소시지채소볶음이 남편을 맞이한다. 케첩 하나만으로도 양념이 너끈해 음식 솜씨가 부족해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여름밤 무더위를 잊게 해 주는 시원한 맥주와 함께 별미 안주이자 야식인 소시지채소볶음 하나로 소원했던 부부 간의 대화가 이어진다. 소시지 색이 예전과 다르게 희멀건함을 타박하는 것으로 시작해 맥주 한두 잔을 함께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연애 시절 가장 맛있었던 안줏집 이모님의 손맛을 곱씹게 되기도 한다.
밤 시간이라서 그런지 텔레비전에 맥주 광고가 자주 나온다. 송중기, 조인성, 차승원. 꽃미남 연예인이 멋지게 맥주를 마시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자꾸 광고를 힐끔거리게 된다. 빈잔을 채우느라 고개를 돌리자 아재 향기 그윽하게 풍기며 맥주를 벌컥거리던 남편이 씩 웃는다. 맥주의 쌉싸름한 맛이 더 깊게 느껴지는 여름밤이다.
소시지채소볶음 조리법
재료: 비엔나소시지 300g, 피망 1개, 양파 반 개, 마늘 2알, 케첩 4큰술, 굴소스 1/2큰술, 올리고당 1작은술, 소금 1~2꼬집, 통깨, 후추
만들기: (1) 비엔나소시지는 칼집을 내어 뜨거운 물에 데쳐 낸다. (2) 팬에 기름을 두르고 편으로 썬 마늘을 볶아 향을 내고 데친 비엔나소시지를 볶는다. (3)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양파, 피망을 넣고 소금 1~2꼬집, 케첩 4큰술, 굴소스 1/2큰술, 올리고당 1작은술로 양념한다. (4) 통깨와 후추로 마무리한다.
글·사진 이형주 협동으로 랄랄라 블로그 운영진(blog.naver.com/icoopkorea)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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