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값이 뚝 떨어졌다. 나는 딸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오늘 구매 목록에도 딸기는 없다. 그런데도 가게 앞을 한참 서성였던 까닭은 어릴 적 딸기에 대한 추억이 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쳐 갔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에게는 세 가지 딸기가 있었다. 해마다 처음 나오는 딸기는 알이 굵고 꼭지 부분은 하얀 것이 끝으로 갈수록 빨갛게 여물어 있었다. 위풍도 당당히 줄지어 앉아 있던 그 딸기가 어린 내 눈에는 참 맛있게 보였다. 하지만 엄마는 먹을 때가 아니라며 사 주지 않았다. 그런데 손님이 오시면 그 앞에는 어김없이 딸기가 포크와 함께 가지런히 놓이곤 했다. 그 유혹을 참지 못하고 정신없이 딸기를 주워 먹다가 엄마한테 한번 혼이 난 이후로, 두 번 다시 손님상에 있는 딸기에 손을 대지 않았다. 더 이상은 딸기가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내 생일이 돌아올 때쯤 되면 두 번째 딸기가 한창이었다. 포장 용기는 온데간데없고 서로 얼굴을 맞대고 수북이 쌓여 있다가 하나둘씩 데굴데굴 굴러떨어지기도 하는 두 번째 딸기는, 몸 전체가 빨간 대신 덩치는 첫 번째 딸기보다 훨씬 작았다. 내 생일이면 엄마는 내가 딸기를 좋아한다며 접시마다 딸기를 곁들여 생일상을 차려 주셨다. 실컷 먹으라며 내 앞으로 딸기 접시를 옮겨 주셨다.
시장에서 딸기가 거의 사라져갈 때쯤이면 아저씨들이 딸기 수레를 끌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두 번째 딸기보다도 훨씬 작은 크기에 부대낀 얼굴이 짓물러 터져 있던, 1000원만 내도 보따리 가득 주는데도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던 그 딸기를 이모는 항상 몇 보따리씩 사셨다. 그리고 깨끗이 씻어 며칠을 끓여서 딸기잼을 만들어 주셨다. 식빵 위에서 곱게도 빛나던 그 딸기잼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물론 더 맛있는 잼을 먹어 본 적도 없다.
베를린에는 지금 딸기 철 제2막이 올랐다. 한국은 어떨까? 그러고 보니 딸기야말로 어린 나에게 일찌감치 비논리를 보여 주며 논리를 가르쳐 준 고마운 스승이었다. 덕분에 납작한 복숭아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금’키위라는 것이 나왔을 때도 나는 하루빨리 그 맛을 보려는 사람들 틈에 끼어 고생하지 않고 얌전히 때를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가지고 있어 가지고 싶지 않고, 가질 수 없어 가지고 싶은 우리들의 마음은 업보일까?
스산한 독일 날씨에 불쌍히 떨고 있는 용과나 파파야 등의 열대 과일이나 새로운 농업기술 발전의 산물 앞에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을 볼 때면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아프리카에서 열리는 열매는 그냥 아프리카에서 먹으면 안 되나? 저 맛없는 파파야가 파파야나무 밑에서는 얼마나 귀하고도 맛난 열매일까? 욕심, 문득 이 단어가 떠오른다. 한곳에 앉아 온 세상을 만질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이 시대의 희망도 어쩌면 우리들의 허황된 욕심인지도 모른다.
어느새 저쪽에 마지막 가게가 보인다. 하얀 옥양목과 빨간 산딸기, 같이 있어 좋을 것 하나 없는 딱 두 가지를 파는 괴짜 아저씨가 주인이다. 저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나면 집으로 가는 길이 눈앞에 놓여 있다. 결국 사려던 오렌지와 망고는 포기해야겠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머나! 아저씨 오늘은 오렌지네요!”
글 사진 이재인 / 재독 프리랜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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