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기타 등 낡은 악기, ‘낙원’에서 날개 달고 취약계층 품으로

서울시 ‘악기 기증·나눔’ 캠페인, 지난해 코로나 상황에서 더욱 관심 받아

등록 : 2021-02-25 15:24
지난해 시민 악기 기증 26종 1113점

2019년보다 참여율 62% 정도 높아져

낙원악기상가 숙련 장인 손길 거친 뒤

노인 복지시설 등 89곳에 895점 전달


공유공간 ‘생활문화센터’ 재개관 준비

3월부터 녹음실, 공작소 등 이용 가능

개관특별전시 ‘서태지와 아이들’ 열고


‘생애 첫 음원 만들기’ 참여자 모집 예정

지난 23일 오후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 공작소에서 낙원악기상가에 있는 나승용 스위스악기사 대표가 시민들이 기증한 중고 기타를 손보고 있다.

“기타는 심장에 닿는 악기예요. 연주할 때 가슴에 꼭 붙어서 생명체처럼 굴어요. 삶이 외로운 아이들이나 청소년들 가슴을 뛰게하죠.”

지난 23일 오후 낙원악기상가 1층에 있는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 공작소에서 나승용(56) 스위스악기사 대표가 말했다. 나 대표가 아이들을 위해 중고 기타 수리를 시작한건 대략 1년 전이다. 서울시가 2019년부터 착수한 ‘악기 기증·나눔’ 캠페인에 ‘기타 수리 장인’으로 함께하고 있다. 나 대표는 일주일에 평균 5대, 지금까지 총 85대 중고 기타를 새것처럼 수리해 내보냈다.

나 대표가 기타 ‘바디’(몸체) 접착면 등을 확인한 뒤 사포로 ‘플랫’까지 깨끗이연마하는 시범을 보였다.

가게 운영 수익에 보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악기 한 대를 살리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동을 생각하면 만만찮은 일이다. 지난해엔 코로나19로 손님이 줄어 일이 더 고됐다. 낙원악기상가에 터 잡은 지 27년 차, 한자리에서 기타 수리를 해온 나 대표가 이 일에 정성을 쏟는 이유를 설명했다.

“부모가 사줘서 악기를 쉽게 갖는 아이들이 있지만, 한부모가정 아이들이나 가난한 가정 아이들은 악기를 갖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걸 잘 아니까요. 그 아이들에게 기타 한번 줘봐요. 온 마음을 쏟기 때문에 연주를 더 잘해요. 소리가 달라요.”

‘악기 기증·나눔’ 캠페인은 서울시가 ‘악기 나눔 공유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캠페인이다. 시민들의 악기를 기증받고 낙원상가 장인들의 수리·조율을 거친 뒤 악기가 필요한 곳에 재기증하는 사업이다. 올해 1월까지 악기 총 26종 1113점을 기증받아 사전 수요조사와 더불어 서울시교육청·아름다운가게와 ‘배분위원회’를 구성해 지역별 수혜처를 선정했다. 이 결과 악기 교육이 가능한 기초생활수급, 차상위, 한부모 등 사회적 취약계층 학생들을 비롯해 아동·어르신 이용 복지시설 등 89곳에 악기 총 895점을 전달했다.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 농아인들도 바이올린, 전자기타, 베이스기타 등 총 17대 악기를 기부받았다. 복지관 소속 농아인 밴드 부인 ‘농벤져스’도 지난 23일 새로 들어온 악기를 벗 삼아 새해 멤버 구성이 한창이었다.

농벤져스 매니저로서 팀을 지원하는 문유미 사회복지사는 “그동안 중고 악기를 구매해 운영해왔는데 작동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아 불안했다. 이번에 들어온 악기는 낙원상가 장인들 손을 거쳐 들어온 덕에 작동이 잘된다. 청각장애인분들의 참여도가 아 주 높다”고 설명했다.

“보통 청각장애인은 악기를 배우기 어려울 거로 생각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새로운 취미를 접하는 데 한계가 없어요. 보청기를 사용하거나 잔존 청력이 있는 분도 계시고, 전혀 소리를 듣지 못해도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 합주하는 과정에서 큰 기쁨을 느끼세요. 공연 의뢰도 제법 많이 들어옵니다.”

시는 2019년 캠페인 당시 685점을 기증받은 것과 비교해 지난해 428점을 더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시는 이렇게 시민 참여율이 62%가량 오른 점을 두고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나눔과 공유 가치로 희망을 이어가고자 한 시민의식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잠시 문을 닫았던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 역시 재개관 준비를 마치고 오는 3월 시민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은 시가 6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가진 악기종합상가인 ‘낙원악기상가’ 하부공간에 조성한 공유 공간이다. 낙후한 주차장 일부(전체 면적 580㎡)를 개조해 큐브 형태로 설계한 11개 생활문화활동 핵심공간을 집어넣었다. 이는 ‘창덕궁 앞 도성 한복판 도시재생활성화사업’ 계획의 하나다. 2018년부터 2020년 9월까지 공사를 거쳤으며, 주변 환경과 보행 여건 개선 목적 외에도 지역주민과 상인들, 문화단체, 문화예술 동아리 등이 편리하게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 공간이다.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 다목적홀에선 엘피(LP) 1천여 장을 보관하고 있다. 시민 누구나 라디오 방송 기기를 이용해 디제이(DJ)가 되어볼 수 있다.

‘낙원역사갤러리’에선 개관 기념 특별 전시로 ‘아이돌 특별전’을 열고있다. 1990년대 아이돌인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오늘날 방탄소년단(BTS)에 이르기까지 한국 아이돌 역사와 한정판 기념품 등을 전시한다. 이 밖에도 국내 108인의 악사 사진전,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까지 종로 일대에 나돌았던 희귀한 악기 전단, 국내 가요상 트로피와 메달 등도 선보인다.

‘수리수리공작소’에선 나만의 악기를 직접 만들 수 있다. 또한 ‘녹음 스튜디오’와 연습실은 악기 장비와 방음시설을 갖추고 있어 소음에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다. ‘다목적홀’에는 다양한 엘피(LP) 음반과 턴테이블이 구비돼 청음회 등 행사를 열 수 있고, 강의실과 회의실도 조성돼 지역주민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은 누리집(nakwoncommunityart.or.kr)에 공개한 절차에 따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대관이나 프로그램 참가 신청은 예약이 필요하다. 유튜브 채널에선 낭독회와 청음회 등 일부 온라인 콘텐츠를 미리 맛볼 수 있다.

올해는 ‘2021 생애 첫 음원 만들기’ 사업을 진행한다. 이는 프로 뮤지션을 꿈꾸는 일반 시민이 음원 제작을 해볼 수 있도록 제작부터 발매, 유통, 영상 제작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원 대상자는 △판매용 음반, 음원을 정식 발매한 적이 없고 △기획사 소속이 아니며 (단, 소규모 인디레이블 소속 뮤지션은 가능) △무대에서 3곡 이상 라이브가 가능한 듀엣, 밴드 또는 솔로 싱어송라이터 등이다.

모집은 2월, 5월, 7월, 9월에 하며 사업에 선발되면 ‘낙원의 아티스트’(락티스트)로서 공간 지원(연습실·녹음실), 온라인 공연 기회 제공 등 문화예술 활동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신청은 전자우편(nakwon2019@naver.com)이나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에 방문해 접수하면 된다.

‘서울생활문화센터 낙원’ 음악연습실

글·사진 전유안 기자 fingerwhal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