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70년대 문화 통해 2021년 코로나 시대 위로하다
등록 : 2021-03-04 16:17
문화비축기지 새해 첫 기획전 ‘내가 쏜 위성’
1970년대생 작가 4명, 서울 문화 기억 좇아
“공동체 위해 개인 희생했던 시절 짠했던 청춘들, 보듬고 위로받길”
석유파동 등 회화·영상·입체작품 표현
도서·기록·박물관 합친 ‘라키비움’ 도전
“그 시대의 순수·향수는 다시 봐도 특별”
마포 문화비축기지가 새해 첫 번째 기획전 ‘내가 쏜 위성’을 ‘쏘아’ 올렸다. 지난 2월18일 시작한 이번 전시는 오는 7월25일까지 6개월 동안 T5 이야기관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격동의 시대를 제각각 더듬어 풀어본” 1970년대생 작가 4명이 머리를 맞대고 시대 속 문화 기억을 더듬었다. 어느덧 ‘향수’로 치부하는 1970~80년대 기억과 해석의 범람 속에서, 기획전 ‘내가 쏜 위성’은 1973년과 1978년 연달아 터진 1·2차 석유파동 직후를 기점으로 삼았다. 1979년 석유비축기지가 마포구 매봉산 땅 밑으로 들어서고 ‘개발’이 곧 지상과제였던 시절이다. 등유 값 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석유를 구하려고 주유소 앞에 길게 줄을 서며 ‘에너지는 애국’이란 표어를 복창하던 시절. 전시는 ‘최선을 다했기에 짠했고, 어설펐기에 정겨웠던’ 감성을 하나씩 꺼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 시절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1979년 마포구 매봉산 일대에 ‘석유비축기지’가 들어섰다. 5개의 거대한 기름 탱크에 당시 서울시민이 한 달 정도 쓸 수 있는 6907만ℓ의 석유를 보관했다. 일반인 접근을 철저히 통제해 ‘산업화 시대 유산’으로 불리다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안전상 이유로 폐쇄했다. 2013년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거쳐 복합문화시설로 탈바꿈한 공간은 석유를 비워내고 ‘문화비축기지’란 새 이름을 달았다. 이후 시민소통 공간이자 생태문화 공간으로 변신을 꾀하며 문화 콘텐츠를 채워오고 있다. 문화비축기지 T5 이야기관에서 열린 이번 ‘내가 쏜 위성’ 전시는 국가 주도 경제개발과 가난 극복이 지상과제였던 격동의 1970~80년대를 문화사 관점에서 조명하고자 했다. “달려 달려 달려 멀리 달려라/ 날아라 날아 날아 멀리 날아라/ 내가 쏜 날아가는 위성아/ 쉬지 말고 우주를 날아라.” 9인조 빅밴드 ‘신중현과 뮤직파워’가 발표한 노래 ‘내가 쏜 위성’(1982)의 이처럼 당찬 가사에서 전시 제목을 따왔다. 노래가 발표된 해, 서울은 막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고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향한 전력질주를 시작한 때였다. 지난 2월28일 오후 문화비축기지에서 만난 최윤정 전시기획자는 “신중현 노래 안에 당시 시대상이 자연스레 스며들었다고 해석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듯 자신 있게 밀어붙인 개발 비전과 발전상, 그럼에도 막연했던 미래, 시대적 억압 속에서도 목소리를 높인 청춘들의 외침 등 그 시대만이 품은 다양한 색깔이 그 노래에 녹아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전시에 참여한 정재호 작가는 T5 미디어 영상관에서 ‘내가 쏜 위성’ 노래를 그대로 살렸다. 입체작품 <우주선> 외에 70년대 시대상을 담거나 당시 개봉한 7편의 고전영화와 3편의 만화영화를 편집해 띄웠다. 또한 ‘적군, 냉전시대’와 ‘청춘의 꿈과 시대적 좌절’을 주제로 작업한 <아카이브 회화연작>을 선보였다. 산업화 시기 생산된 영화·음반 등 대중문화에서 건져 올린 이미지를 엮어 작가 시선으로 이야기 맥락을 만들었다.
회화, 영상, 미디어아트 등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권민호, 권혜원, 양영신 작가도 당대 분위기와 시대적 도상을 창작 동기로 삼아 영상과 회화, 입체작품 등을 선보였다.
권민호 작가는 미디어작품 <이발소 간판+레미콘+석유시추기> <현대 아틀란틱 배런+아기돼지>에서 1970~80년대 시대상 일면을 해석했고, 권혜원 작가의 <어느 코미디언의 일생>은 과거 ‘원맨쇼’의 대가였던 코미디언 고남보원(1938~2020) 선생을 무대 주인공으로 불러 굵직한 현대사를 거친 본인의 일생을 15분가량의 원맨쇼로 풀어내도록 했다. 양영신 작가의 은 석유비축기지 시절 땅속에 묻혀 있던 녹슨 ‘배관’을 땅 위로 올려 빛을 쏘았다. 여기 1970년대부터 이어온 오래된 시간의 기억과 단서들을 미디어 매핑 작품으로 풀었다.
“낡은 배관이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었죠. 70년대(석유비축기지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도시와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을 중첩했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어머니가 택시 2대를 구매해 운영을 시작하려다 석유파동을 맞고 그냥 빚으로 남아버린 적이 있어요. 이 때문에 그 시대를 좀더 익숙한 감각으로 볼 수 있었죠.” 양영신 작가의 말이다.
전시는 “고단해도 열심히 살면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틴” 1970~80년대를 지나온 사람들의 감성을 부각한다. 최윤정 전시기획자는 “당시 석유비축기지로 출근했던 석유공사 직원의 오래된 월급봉투를 보면,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답답함 속에서 누군가는 희생해서 가족을 먹여 살렸던 얘기들이 떠오르죠. 시대적 억압을 겪었기에 다시 돌아가긴 싫지만, 그 시대만의 순수와 향수는 다시 봐도 특별합니다. 그런 자료들도 최대한 모아보고자 했습니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이를 위해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의 기능을 합친 공간을 일컫는 ‘라키비움’(Larchiveum) 조성에 도전했다. 전시에선 석유비축기지 시절의 유물자료 88점, 예술작품과 문화사 자료 등 총 134점의 다양한 자료를 볼 수 있다.
울산 한국석유공사 협력으로 계간지 <석유>(1979년 창간호부터 1985년까지 발행분)와 <석유방울 문진> 20여 종, 석유개발공사 관련 서류 등 총 88점의 유물을 모았으며, 대표 문학작품 등 도서들, 만화책들(SF물, 스포츠물, 성인물 등)을 전시장 한편에 마련한 라이브러리에서 직접 열람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 아키비스트와 미디어아티스트들이 협력해 문화비축기지가 보유한 600여 건의 자료를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 디지털 콘텐츠’도 구축했다. 궁금한 내용을 터치하면 석유비축기지 시절부터 변화한 문화비축기지의 시간을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전시는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지키며, 보다 안전한 관람을 위해 제한 운영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간별 20명 이내로 7번 입장할 수 있고, 방문 전에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사이트(yeyak.seoul.go.kr)에서 예약이 필요하다. 자세한 사항은 문화비축기지 블로그(blog.naver.com/culturetank)와 문화비축기지 관리사무소(02-376-8410)에서 안내한다.
남길순 서부공원녹지사업소장은 “이번 전시에선 석유비축기지 시절의 사회적 상황을 예술적 관점과 문화사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서 사회적 풍자와 희망을 엿볼 수 있다. 현재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게 위로와 희망을 선사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많은 시민이 관람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전유안 기자 fingerwhal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문화비축기지 T5 미디어영상관에선 정재호 작가가 360도 화면으로 제작한 영상물을 상영 중이다. 신중현과 뮤직파워가 부른 ‘내가 쏜 위성’(1982)을 배경으로, <삼포가는 길>(1975), <영자의 전성시대>(1975) 등 당대 정서가 담긴 1970~80년대 고전영화와 SF 만화영화를 선별해 애틋함과 조악함 속 유머를 연출했다.
디지털아카이빙 체험 공간
마포 문화비축기지가 새해 첫 번째 기획전 ‘내가 쏜 위성’을 ‘쏘아’ 올렸다. 지난 2월18일 시작한 이번 전시는 오는 7월25일까지 6개월 동안 T5 이야기관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격동의 시대를 제각각 더듬어 풀어본” 1970년대생 작가 4명이 머리를 맞대고 시대 속 문화 기억을 더듬었다. 어느덧 ‘향수’로 치부하는 1970~80년대 기억과 해석의 범람 속에서, 기획전 ‘내가 쏜 위성’은 1973년과 1978년 연달아 터진 1·2차 석유파동 직후를 기점으로 삼았다. 1979년 석유비축기지가 마포구 매봉산 땅 밑으로 들어서고 ‘개발’이 곧 지상과제였던 시절이다. 등유 값 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석유를 구하려고 주유소 앞에 길게 줄을 서며 ‘에너지는 애국’이란 표어를 복창하던 시절. 전시는 ‘최선을 다했기에 짠했고, 어설펐기에 정겨웠던’ 감성을 하나씩 꺼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 시절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1979년 마포구 매봉산 일대에 ‘석유비축기지’가 들어섰다. 5개의 거대한 기름 탱크에 당시 서울시민이 한 달 정도 쓸 수 있는 6907만ℓ의 석유를 보관했다. 일반인 접근을 철저히 통제해 ‘산업화 시대 유산’으로 불리다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안전상 이유로 폐쇄했다. 2013년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거쳐 복합문화시설로 탈바꿈한 공간은 석유를 비워내고 ‘문화비축기지’란 새 이름을 달았다. 이후 시민소통 공간이자 생태문화 공간으로 변신을 꾀하며 문화 콘텐츠를 채워오고 있다. 문화비축기지 T5 이야기관에서 열린 이번 ‘내가 쏜 위성’ 전시는 국가 주도 경제개발과 가난 극복이 지상과제였던 격동의 1970~80년대를 문화사 관점에서 조명하고자 했다. “달려 달려 달려 멀리 달려라/ 날아라 날아 날아 멀리 날아라/ 내가 쏜 날아가는 위성아/ 쉬지 말고 우주를 날아라.” 9인조 빅밴드 ‘신중현과 뮤직파워’가 발표한 노래 ‘내가 쏜 위성’(1982)의 이처럼 당찬 가사에서 전시 제목을 따왔다. 노래가 발표된 해, 서울은 막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고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향한 전력질주를 시작한 때였다. 지난 2월28일 오후 문화비축기지에서 만난 최윤정 전시기획자는 “신중현 노래 안에 당시 시대상이 자연스레 스며들었다고 해석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듯 자신 있게 밀어붙인 개발 비전과 발전상, 그럼에도 막연했던 미래, 시대적 억압 속에서도 목소리를 높인 청춘들의 외침 등 그 시대만이 품은 다양한 색깔이 그 노래에 녹아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전시에 참여한 정재호 작가는 T5 미디어 영상관에서 ‘내가 쏜 위성’ 노래를 그대로 살렸다. 입체작품 <우주선> 외에 70년대 시대상을 담거나 당시 개봉한 7편의 고전영화와 3편의 만화영화를 편집해 띄웠다. 또한 ‘적군, 냉전시대’와 ‘청춘의 꿈과 시대적 좌절’을 주제로 작업한 <아카이브 회화연작>을 선보였다. 산업화 시기 생산된 영화·음반 등 대중문화에서 건져 올린 이미지를 엮어 작가 시선으로 이야기 맥락을 만들었다.
1973년 데뷔한 가수 김정호, 장발 단속, 대연각호텔 화재 등 1970~80년대 기억 가운데 인상적인 장면을 뽑아 맥락을 만든 정재호 작가의 <아카이브 회화연작> .
석유비축기지 시절 땅속에서 발굴한 낡은 배관 위에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미디어 매핑 기법으로 풀어낸 장영신 작가의 (앞쪽), 권혜원 작가의 <어느 코미디언의 일생>에선 고 남보원 선생이 구성진 입담으로 굵직한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자신의 일생을 얘기한다.
전시장 내 ‘라이브러리’에선 공동체적 가치에 희생된 개인의 실존 문제 등을 다룬 문학작품과 만화책을 열람할 수 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의 디자인·사상 등을 엿볼 수 있는 ‘철도의 날’ ‘발명의 날’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