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작은 개나리 꽃잎들, 겨울 바위 뒤덮어 봄을 만든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㉒ 서울시 성동구 뚝섬에서 두뭇개 나루터까지

등록 : 2021-04-08 15:43
하얀 벚꽃·산복숭아, 함께 겨울 지우고

땅에 닿을 듯 가지 늘어뜨린 수양버들

새잎 내어놓아 연둣빛의 숲을 이루자

‘꽃사태 응봉산’, 울긋불긋 얼굴 붉힌다

용비교에서 본 풍경. 응봉산 아래로 경의중앙선 전철이 달린다. 사진 오른쪽 물길은 중랑천이다.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성당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성덕정길은 옛 읍 소재지 분위기가 남아 있다. 수백 년 된 나무들이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그 길을 돌아보고 서울숲을 지나 용비교를 건넌다. 응봉산, 대현산, 금호산,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숲길은 남산으로 이어진다. 뚝섬에서 매봉산까지 걸었던 하루 나들이를 매봉산 아래 두뭇개 나루터에서 끝냈다. 나루가 있던 조선시대에는 그 앞 한강을 ‘동호’라고 했다.

서울시 성수1가 1동에 있는 300년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 성수동 성당 마당에 있다.

뚝섬 느티나무의 추억


뚝섬 한강 백사장은 놀이터였다. 현재 영동대교 북단 언저리에 공식적인 뚝섬유원지가 있었지만, 백사장이 있는 곳은 어디나 강마을 사람의 쉼터였다.

성동구 성수1가 1동 주민에 따르면 한강이 개발되기 전에는 동네 앞 한강에 돌밭과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어린 시절 마을 아이들은 한강에서 수영을 배웠고, 그 또한 그랬다. 그 윗세대에는 한강 빨래터에서 빨래도 했다고 하니, 한강은 강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자 놀이터였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활 공간이기도 했다.

강 마을의 추억은 300년 넘은 느티나무로 이어진다. 한강공원 성덕정 나들목에서 북쪽으로 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성수동 성당이 있다. 성당으로 가는 길, 멀리서 봐도 범상치 않은 커다란 나무가 두 그루 보인다. 전에는 한 그루 더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성당 앞 도로를 넓히는 과정에서 잘릴 뻔한 고목 한 그루를 한양대학교에 옮겨 심었다.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가 지키고 있는 성당 마당은 예전에는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 면사무소 자리였다. 조선시대에는 그 자리에 성덕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성덕정은 조선시대에 임금이 군사들이 훈련하는 것을 지켜보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느티나무 고목은 마을 사람을 지켜주기도 했다.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가 일어났던 1925년에 이 마을도 물난리를 겪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 고목 아래로 피해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성수동 성당 동쪽 현대마트를 기준으로 윗말과 아랫말이 나뉘었다. 현대마트 동쪽은 지대가 높아 윗말, 서쪽은 지대가 낮아 아랫말로 불렀다. 한강에 홍수가 나면 지대가 낮은 아랫말부터 물이 찼다. 그래서 생긴 말이 ‘송파는 온순하고 성수동은 드세다’였다. 한강 물결이 순류하는 송파는 온순하고, 한강 물결이 역류해서 넘치는 성수동은 드세다는 뜻이란다.

성덕정길을 따라 동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성수1가 1동 208 조용한 주택가 작은 쉼터에 300년 넘은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주택가에는 500년 넘은 회화나무가 있다.

서울숲 습지생태원.

서울숲의 봄

회화나무 고목을 보고, 왔던 길을 되짚어 걸었다. 좁은 2차선 도로와 주변 건물들이 옛 읍 소재지 같은 분위기다. 느티나무 호프라는 간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성수동 성당을 지나 왕십리로를 건너 수도박물관으로 들어선다.

성동구에는 예로부터 맑은 물로 유명한 동네가 두 곳 있었다. 옥정수(玉井水)라는 맑은 물이 나는 마을을 옥정숫골이라 했고, 훗날 옥수동이 됐다. 성수동은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할 정도로 맑은 물이 흘렀다고 해서 성수(聖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곳에 1908년 뚝도수원지가 생겼다. 뚝도수원지 수도박물관 한쪽에 3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고목에 비하면 한참 어린, 이제 막 숲을 이룬 서울숲으로 걸었다. 갤러리 정원, 거울 연못, 메타세쿼이아길, 가족마당 등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곳을 지나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습지생태원에서 오붓하게 쉬었다. 온갖 꽃이 만발한 바깥 풍경과 달리 수양버들 연둣빛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서울숲의 가을 풍경은 은행나무 숲이 책임지고, 봄 풍경은 꽃사슴 방사장 위 보행육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책임진다.

서울숲 바람의 언덕 서걱거리는 마른 풀 사이로 오솔길이 났다. 오솔길 저편에서 무리지어 피어난 벚꽃이 하얗게 빛난다. 꽃사슴 방사장 위 보행육교로 곧장 가는 길도 있었지만 오솔길로 걸어서 돌아갔다.

보행육교 초입, 육교 아래 양옆으로 벚꽃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는 풍경의 백미는 벚꽃길이 아니라 육교 중간에 서서 응봉산 쪽을 바라보는 풍경이다. 다만 보행육교는 현재 임시로 통행을 제한하고 있어 보기 어렵다.

습지 연못 둘레를 감싼 수양버들 신록이 연둣빛 숲을 이루었다. 수양버들 가지가 땅에 닿을 것 같다. 그 뒤로 노랗게 물든 응봉산이 보인다.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응봉산을 뒤덮은 건 작고 여린 노란 개나리 꽃잎들이다.

서울숲 꽃사슴 방사장 위 보행육교에서 본 풍경. 수양버들 뒤로 개나리꽃으로 덮인 응봉산이 보인다.

뚝섬에서 남산 사이 응봉산, 대현산, 금호산, 매봉산 숲길을 걷다

성수대교 북단 교차로에서 용비교 쪽으로 걷는다. 서울숲·남산길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른다. 중랑천에 노랗게 물든 응봉산이 비친다. 산 아래 경의중앙선 철길로 전철이 지나간다. 용비교를 건너며 잠시 멈춰 그 모습을 바라본다.

용비교에서 응봉산으로 올라가는 계단 주변 절벽에 산복숭아꽃, 벚꽃, 개나리꽃이 어울려 피었다. 정돈되지 않은 풍경이 ‘꽃사태’ 같다. 개나리꽃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응봉산 정상에 올랐다. 동쪽에서 흘러오는 한강이 서울숲 옆 중랑천과 만나 서쪽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산비탈을 뒤덮은 개나리꽃과 함께 한눈에 넣는다.

응봉산, 대현산, 금호산,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숲길을 걸었다.(도로를 걸어야 하는 구간도 있다.) 응봉산 화장실 앞을 지나 시멘트 길로 내려가다 보면 대현산으로 넘어가는 구름다리가 보인다. 길은 대현산 독서당 공원으로 이어진다. 산이 낮아 동네 뒷동산 같다. 이리저리 난 길을 따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산책을 즐긴다. 논골사거리 쪽으로 내려서서 대현산 배수지공원으로 올라간다. 이곳도 벚꽃이 피어 화사하다. 성동05번 마을버스 종점 금호산 정류장(응봉근린공원 정류장) 부근에서 길은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노란 꽃, 하얀 꽃, 푸른 잎이 어울려 핀 금호산 산길을 걷다보면 전망 좋은 곳이 나온다. 남산, 인왕산, 백악산(북악산), 북한산, 도봉산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산비탈은 온통 개나리꽃이다.

매봉산으로 접어들면서 푸른 솔숲을 배경으로 화사하게 피어난 살구꽃을 보았다. 남산이 더 가까워졌다. 남산으로 가는 길과 매봉산 정상 팔각정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팔각정으로 향했다. 팔각정도 전망 좋은 곳이다.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비고> 등에 나오는 풍경을 굽어본다. 그 내용에 따르면 중랑천이 한강과 만나 흐르다 두뭇개 마을 앞 저자도(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부근에서 물살이 잔잔해진다. 두뭇개는 도성 동남쪽 10리에 있는데 동호라고 한다. 저자도는 언덕, 밭, 백사장으로 이루어진 섬이었고, 강 건너편에는 압구정 정자가 있었다. 한강과 중랑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었던 입석포는 낚시터로 유명했다고 하니, 조선시대 동호와 그 주변 풍경을 상상해볼 뿐이다.

팔각정에서 옥수역 쪽으로 내려선다.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온 숲길이 보인다. 옥수역 못미처 미타사에 있는 200년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를 보고 두뭇개 마을 나루가 있던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옛날 누군가도 해 지는 두뭇개 나루에서 지나온 길을 생각했을 것 같았다.

매봉산 팔각정.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