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10월, 옛 잠실 시영아파트 단지의 모습.
1980년대, 유년 시절을 강남권에서 보낸 사람들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누군가는 ‘아파트’라고 대답할 것이다. 주공·시영·시범 아파트 등 도시계획으로 만들어진 아파트 단지에는 희망을 품고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파트가 고향이라던 잠실동의 전승진(36) 씨도 그 시절 서울에서 가장 컸던, 그러나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잠실 시영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살았다. 가끔 물이 새던 천장, 단지 내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날, 동과 동 사이를 지날 때마다 하나둘씩 늘어나던 등굣길 친구, 엄마 손 잡고 건너던 아파트 앞 육교, 퇴근하던 아버지를 마중 나갔던 성내역 등…. 2008년 재건축이 되어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흔적 없이 사라진 옛 아파트를 생각하면 같은 자리도 늘 새롭고 낯설다는 그. 이제는 추억 속의 육교도 사라지고 성내역도 초등학교도 새롭게 바뀌었지만, 아직도 창을 열면 세월에 삭은 고동색 알루미늄 창틀이 동네가 떠나갈 듯한 굉음을 내고, 손바닥 가득 쇠 냄새가 배던 그네와 칠이 벗겨진 뺑뺑이, 어딘가 구부정한 미끄럼틀이 있던 놀이터가 아른거린다고 한다. 재개발로 없어지는 아파트의 아이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사라진 고향을 지어가며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까.
박소진 기억발전소 기획팀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2016년 7월, 초고층 아파트 ‘파크리오’로 변한 옛 잠실 시영아파트 단지. 단지 내 잠실초등학교는 새로 지어졌으며 건너편 진주아파트 길가로 연결되던 육교는 사라졌다. 장미아파트와 잠실 시영아파트 사이에 있던 성내역은 잠실나루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서울시, 기억발전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