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향 기자가 다니는 집

프랑스 치즈와 대파의 풍미가 끄는 맛

피자피케이션

등록 : 2016-07-21 16:19 수정 : 2016-07-22 17:47
맛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평가의 대상이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답도 아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식당 평가서인 <미쉐린 가이드>(미슐랭 가이드)나 이탈리아의 식당과 와인 평가서인 <감베로 로소>와 한국에도 한때 진출했던 뉴욕의 식당평가서인 <저갯 서베이> 등은 여전히 베스트셀러다. 맛이 아예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 어려운 일이다. 맛은 어떻게 평가할까? 평가하는 이들은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까?  

평가자는 식재료의 신선도를 예민한 혀로 감지하고, 요리사의 조리 기술 숙련도를 알아채고, 그가 접시에 담아낸 예술적 감수성의 수준을 가늠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한눈에 알아봐야 한다. 한 접시에는 심오한 우주가 담겨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이 분야에는 스테디셀러라 할 만한 교과서도 없다. 전문적으로 다루는 대학도 없다. 요리학교에서 한 학기 교양과목으로 다루는 정도다.  

그렇다면 맛 평가를 직업으로 하는 이들은 실력을 어떻게 키울까? 국내 특급호텔의 한 소믈리에는 일주일에 한 번 희한한 코 청소를 한다고 했다. 소금물을 마시지 않고 코로 뱉는 것이다. 소금물이 코 전체를 관통해서 나오는 식이다.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그는 맛 평가 능력의 중요한 요소인 후각을 섬세한 상태로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맛을 감별하는 능력에는 혀보다 후각이 더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어떤 음식평론가는 ‘1만 시간의 법칙’(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재능보다 1만 시간 동안 노력이 필요하다는 법칙)이 맛 평가 세계에도 작동한다고 말한다. 꾸준히 긴 세월, 비만과 얇아지는 통장과 싸우면서 음식 세계에 빠져온 이들은 심봉사가 눈을 뜨는 것처럼 어느 날 접시 위에 모든 것들이 확연히 파악되는 순간을 맞이한다고 말한다.  

최근 꽤 긴 시간인 ‘1만 시간’을 단박에 잡아 보겠다고 나서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방법은 수백만 원에 이르는 최고의 와인과 <미쉐린 가이드> 별 3개의 최고급 식당을 빠른 시간에 섭렵하는 것이다.  

맛 평가는 음식기자가 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2000년 음식 관련 연재물을 통해 음식 세계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어온 나 역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으나 출중한지는 모르겠다. “단골집이 어디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황한다. 질문한 이들의 속내는 “그렇게 많이 먹으러 다녔는데, 그래서 진짜 당신의 단골집은 어디냐?”란 소리다. “음…단골집이라!” 끝내 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핑계지만 새로 문 여는 레스토랑을 다니는 데만도 시간이 부족하다. 지난주만 해도 일식집과 중국집 포함해 총 6군데를 다녔다. 연 지 2주가 안 되었거나 세상에 아직 소문이 안 난 곳들이었다. 이렇다 보니 단골집은 꿈도 못 꾼다.  

하지만 한두 번씩, 스쳐 지나가듯 ‘그 식당의 그 음식’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결심을 한다. 그 식당이 있는 동네에 가면 만사 제쳐두고 가 보리라! 종로구 자하문로7길의 ‘피자피케이션’이 그런 곳이다. 한옥이 여행객의 발걸음을 붙잡는 그곳은 피자와 파스타를 판다. 30대 청년 최현민, 서기원 씨가 힘을 합쳐 만든 곳이다. 비교적 재료가 좋고, 다른 파스타 식당에서 보기 어려운 메뉴들이 있다. ‘에푸아스’(사진)는 프랑스 치즈 에푸아스가 덩이째 올라가고 대파까지 맛을 더해 독특한 풍미를 자랑한다. 한국식으로 국물이 넉넉한 파스타는 없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7길/02-737-1355)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음식·요리 담당 기자 mh@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