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배낭 멘 사람 소란스럽지만, 느티나무 고목 한가롭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㉔ 서초구의 숲과 나무를 찾아서 1
등록 : 2021-05-06 15:50 수정 : 2021-05-07 17:36
몇백년 오랜 세월, 이 땅 역사 흘러가면
누가 진짜 주인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
헌인릉의 주인은 애초 태종이었지만 오늘 주인공은 푸른 오리나무 숲이다 양재 시민의 숲 입구 넓은 그루터기는 부재 속에서 존재감 더 크게 드러낸다
900년 가까이 살고 있는 향나무가 서초동 반포대로 가운데 우뚝 서 있다. 대법원, 대검찰청 등 법원과 검찰청 등이 있는 그곳을 지키는 900살을 바라보는 향나무의 꼿꼿한 기상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염곡동 조용한 주택가 600년 넘은 나무가 편안하다. 그 나무 그늘에서 떠나기 싫었다. ‘숲’ 개념의 첫 공원, 양재 시민의 숲을 해질녘까지 걸었다. 오래 묵을수록 좋은 게 몇 가지 있는데, 그 목록에 나무와 숲을 넣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마뉘꿀 고개를 이야기하는 향나무 고목 마뉘꿀 고개를 걷는다. 서초역과 반포동 조달청 구간 반포대로 고갯길을 옛날에는 마뉘꿀 고개라고 했다. 조달청 부근에 옛날에 마뉘골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계곡이 있었고 호랑이가 출몰할 정도로 숲이 깊었다고 한다. 고갯마루 서쪽은 몽마르뜨공원이고 동쪽은 서리풀공원이다. 반포대로가 생기면서 끊어진 산길을 누에다리가 잇는다. 아카시아가 우거진 야산에 몽마르뜨공원을 만들었다. 주변 서래마을에 프랑스 사람이 많이 살아서 몽마르뜨라고 이름을 지었다. 푸른 풀밭 한쪽에 이팝나무 꽃이 하얗게 피었다. 꽃그늘 아래 아이들이 모여 논다. 하얀 구름이 떠 있어 더 파란 하늘 아래 외국인들이 누워 햇볕을 쬔다. 누에다리를 건너 서리풀공원으로 향했다. 누에다리 아래 반포대로가 시원하게 뚫렸다. 북쪽으로 남산이 보이고 남쪽에는 우면산이 있다. 서리풀공원 숲길도 편안했다. 어른들에게는 쉼터지만 아이들에게는 놀이터다. 참나무 쉼터에 세워진 이정표는 초록 숲과 붉은 꽃을 가리킨다. 이정표는 그 숲길 830m를 가면 고속버스터미널이 나온다고 알려준다. 발길을 돌려 다시 마뉘꿀 고갯마루로 온 건 900년 가까이 살고 있는 향나무 한 그루 때문이었다.
고갯마루에서 서초역 쪽으로 걷는다. 멀리 도로 가운데 우뚝 선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가지가 잘려 나간 흔적이 어렴풋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꼿꼿한 자태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향나무는 마뉘꿀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을 900년 가까이 보았겠지. 향나무가 본 사람 중에는 정곡마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정곡마을은 1458년 과천현 백석동(현재 서초동) 뒷산에 조선 개국공신이자 의정부 좌찬성, 집현전 대제학 등을 지낸 정역의 묘가 조성됨에 따라 자손들이 모여 살면서 생긴 마을이다. 마을 이름을 정곡이라 불렀다. 1709년에 정역의 9대손이 돌에 정곡(鄭谷)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법원과 검찰청사가 들어서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정역 신도비, 정곡 푯돌 두 개는 마뉘꿀 고갯길 동쪽, 현재 정곡빌딩 주변에 있다.
원터골과 신원동 고목을 보고 헌인릉 오리나무 숲을 걷다
청계산 입구 청계산·원터골 버스정류장 부근, 청계산 입구 교차로 가운데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나무 그늘 정자는 동네 할아버지들 쉼터다. 등산복을 입고 배낭을 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데, 가지를 넓게 퍼뜨린 느티나무 고목은 한가롭게 푸르다. 이 동네는 신원동이다. 느티나무 앞길 건너편 마을에 조선시대에 원이 있었다. 원이 있던 마을이라 지금도 원터골이라 부른다. 그 아래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새원’마을이라고 하다가 신원동이 됐다.
느티나무 길 건너편 청계산으로 가는 초입에 원지동 미륵당이 보인다. 미륵당 안에 있는 미륵불의 공식 이름은 원지동 석불입상이다. 사람들은 미륵당 미륵불이라 부른다. 이 미륵불은 원터골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옛날부터 마을 제사를 지냈다.
원터골에는 270년 넘은 굴참나무가 있다. 그 주변에 산신제를 지내던 도당이 있었다. 한 번 제사를 지내면 2~3일 동안 이어지는 큰 제사였다고 한다. 지금은 그 맥이 끊어졌다.
내곡동 홍씨 집성촌 놀이터 이름이 홍씨마을어린이공원이다. 조선시대부터 홍씨 집성촌이었다. 지금도 홍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남아 있단다. 홍씨마을어린이공원 바로 옆에 느티나무 고목이 있다. 330년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어느 집 담장 안에서 자란다. 나뭇가지를 해치지 않고 담장에 구멍을 내고 홈을 파서 담장을 세웠다. 옛것과 현재가 어울린 풍경 옆 놀이터에서 아빠와 농구 하는 아이의 숨소리가 거칠다. 엄마와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어린 딸은 연신 그네를 구른다.
마을 어귀에서 서초09 마을버스를 타고 헌인릉 정류장에서 내렸다. 헌인릉을 찾은 이유는 오리나무 숲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태종 임금과 원경왕후 민씨의 능인 헌릉과 순조 임금과 순원왕후의 김씨의 능인 인릉이 헌인릉의 주인이지만, 이날은 오리나무 숲이 주인공이었다.
인릉 홍살문 옆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리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숲에 데크길을 놓았다. 270m 정도 되는 탐방로를 따라 오리나무 숲속을 거닐었다. 짧지만 싱그러운 오리나무 숲길이 끝났다. 돌아올 때는 숲 밖에서 숲을 보며 걸었다.
거대한 줄기가 인상적인 염곡동 느티나무 두 그루 헌인릉에서 나와 염곡동 느티나무 고목이 있는 마을로 가는 길 중간에 잠시 들른 곳은 300년 넘은 음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300년이 넘은 염곡동 음나무가 헌릉로 옆 언덕에 서서 바라보는 곳은 구룡산 기슭 염통골 마을이다. 구룡산은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인데, 소의 심장(염통)에 해당하는 자리에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염통골이라 했다고 전한다. 지금은 염곡동이 됐다. 약 400년 전부터 전주 이씨, 창녕 조씨 등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염통골 조용한 주택가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600년을 훌쩍 넘겨 산다. 완강한 뿌리와 거대한 줄기가 말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가 있는 곳의 이름은 느티나무 소공원이다. 작은 공원의 거대한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 누군가 그 그늘에 앉아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차분한 목소리에 정이 담겼다. 오래 묵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느티나무 고목을 닮았다. 오래 머물고 싶었으나 해가 기운다. 아쉬운 마음을 다독여줄 이날의 마지막 숲으로 양재 시민의 숲을 골랐다. 양재 시민의 숲 여의교를 건너며 길게 뻗은 양재천을 바라본다. 해질녘 공기가 선선하다. 양재 시민의 숲으로 들어간다. 1986년 생긴 양재 시민의 숲은 느티나무, 단풍나무, 감나무, 모과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과 꽃들이 어우러진 ‘숲’ 개념의 공원이다.
봄에도 붉은 잎 단풍나무와 연둣빛 신록에서 초록으로 색을 바꿔가는 나뭇잎들이 어울려 맑은 풍경을 만든다. 그 아래를 걷는 발걸음이 상쾌하다.
뿌리가 드러난 나무 뒤 긴 의자는 비어 있어서 더 휴식 같다. 의자 옆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소나무 군락지와 몇 그루의 줄기 굵은 침엽수를 지나 해질녘 풍성한 햇볕이 걸러드는 숲길로 접어든다. 먼저 숲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숲에 머문다. 숲에서 나오는 길, 풀밭에서 그루터기를 보았다. 부재가 존재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헌인릉의 주인은 애초 태종이었지만 오늘 주인공은 푸른 오리나무 숲이다 양재 시민의 숲 입구 넓은 그루터기는 부재 속에서 존재감 더 크게 드러낸다
신원동 느티나무.
900년 가까이 살고 있는 향나무가 서초동 반포대로 가운데 우뚝 서 있다. 대법원, 대검찰청 등 법원과 검찰청 등이 있는 그곳을 지키는 900살을 바라보는 향나무의 꼿꼿한 기상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염곡동 조용한 주택가 600년 넘은 나무가 편안하다. 그 나무 그늘에서 떠나기 싫었다. ‘숲’ 개념의 첫 공원, 양재 시민의 숲을 해질녘까지 걸었다. 오래 묵을수록 좋은 게 몇 가지 있는데, 그 목록에 나무와 숲을 넣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마뉘꿀 고개를 이야기하는 향나무 고목 마뉘꿀 고개를 걷는다. 서초역과 반포동 조달청 구간 반포대로 고갯길을 옛날에는 마뉘꿀 고개라고 했다. 조달청 부근에 옛날에 마뉘골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계곡이 있었고 호랑이가 출몰할 정도로 숲이 깊었다고 한다. 고갯마루 서쪽은 몽마르뜨공원이고 동쪽은 서리풀공원이다. 반포대로가 생기면서 끊어진 산길을 누에다리가 잇는다. 아카시아가 우거진 야산에 몽마르뜨공원을 만들었다. 주변 서래마을에 프랑스 사람이 많이 살아서 몽마르뜨라고 이름을 지었다. 푸른 풀밭 한쪽에 이팝나무 꽃이 하얗게 피었다. 꽃그늘 아래 아이들이 모여 논다. 하얀 구름이 떠 있어 더 파란 하늘 아래 외국인들이 누워 햇볕을 쬔다. 누에다리를 건너 서리풀공원으로 향했다. 누에다리 아래 반포대로가 시원하게 뚫렸다. 북쪽으로 남산이 보이고 남쪽에는 우면산이 있다. 서리풀공원 숲길도 편안했다. 어른들에게는 쉼터지만 아이들에게는 놀이터다. 참나무 쉼터에 세워진 이정표는 초록 숲과 붉은 꽃을 가리킨다. 이정표는 그 숲길 830m를 가면 고속버스터미널이 나온다고 알려준다. 발길을 돌려 다시 마뉘꿀 고갯마루로 온 건 900년 가까이 살고 있는 향나무 한 그루 때문이었다.
서초역 주변, 900년 가까이 살고 있는 향나무.
헌인릉 오리나무 숲.
내곡동 느티나무 두 그루. 나무를 해치지 않기 위해 구멍을 만들고 홈을 파서 담장을 세웠다.
거대한 줄기가 인상적인 염곡동 느티나무 두 그루 헌인릉에서 나와 염곡동 느티나무 고목이 있는 마을로 가는 길 중간에 잠시 들른 곳은 300년 넘은 음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300년이 넘은 염곡동 음나무가 헌릉로 옆 언덕에 서서 바라보는 곳은 구룡산 기슭 염통골 마을이다. 구룡산은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인데, 소의 심장(염통)에 해당하는 자리에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염통골이라 했다고 전한다. 지금은 염곡동이 됐다. 약 400년 전부터 전주 이씨, 창녕 조씨 등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염통골 조용한 주택가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600년을 훌쩍 넘겨 산다. 완강한 뿌리와 거대한 줄기가 말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가 있는 곳의 이름은 느티나무 소공원이다. 작은 공원의 거대한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 누군가 그 그늘에 앉아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차분한 목소리에 정이 담겼다. 오래 묵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느티나무 고목을 닮았다. 오래 머물고 싶었으나 해가 기운다. 아쉬운 마음을 다독여줄 이날의 마지막 숲으로 양재 시민의 숲을 골랐다. 양재 시민의 숲 여의교를 건너며 길게 뻗은 양재천을 바라본다. 해질녘 공기가 선선하다. 양재 시민의 숲으로 들어간다. 1986년 생긴 양재 시민의 숲은 느티나무, 단풍나무, 감나무, 모과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과 꽃들이 어우러진 ‘숲’ 개념의 공원이다.
양재 시민의 숲 그루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