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쏙 과학

숲에서 베어지는 50살 아까시나무를 위한 변명

서울 쏙 과학 ⑦ 숲의 과학원리

등록 : 2021-05-13 15:28 수정 : 2021-05-13 15:31
정부, ‘산림 부문 탄소 중립 추진안’ 따라

31~50살 나무 잘라내는 계획 추진 중

전문가, “온실가스 흡수율 높이려면

나무 나이 대신 부피 중심 정책 펴야”

뽑히지 않은 아까시나무들은 꽃을 흐드러지게 피웠다.

“산림청은 우리 산림의 65%를 차지하는 31~50살 나무들을 탄소 흡수력이 떨어진다며 베어내고 묘목을 심겠다고 발표했다. 사람으로 치면 한창 초등학교에 다닐 어린나무를 호흡이 가빠지는 중늙은이 취급하며 개벌하고 대신 갓난아기들을 잔뜩 세워놓겠다는 발상이다.”(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탄소는 흡수보다 축적이 중요하다. 200년, 300년 된 나무도 계속 축적한다. 오랫동안 놔두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저장을 해야 탄소 중립이 되는 것이다. 탄소 흡수를 많이 한들 소비를 많이 하면 전혀 소용이 없는거 아닌가.”(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전문가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30살 이상 나무를 뽑아내고 탄소 흡수를 잘하는 어린나무 30억 그루를 심겠다는 계획이 포함된 ‘2050년 산림 부문 탄소 중립 추진 전략안’이 나온 뒤 일이다.


30살 이상 나무를 한꺼번에 베어내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기에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걱정하는 걸까. 비영리단체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 대표 최진우 박사(조경학)가 알려준 마포구 성미산 현장으로 갔다.

성미산(성산)근린공원 입구에 나무 제거 작업을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기이했다. 하나의 산책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은 고요했다. 흔한 참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오른편은 달랐다. 온갖 새소리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부산스럽게 들려왔다. 성미산 자연환경 보호활동 단체 ‘산다움’의 박종혁 부회장이 길 오른쪽에 높게 솟은 나무의 꼭대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건 청딱따구리예요. 저어기. 나무 꼭대기 근처에 앉아 있는 거 보이세요?”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찍어달라고 부탁한 순간, 무언가 푸드덕 하고 날아갔다. 새가 날아간 빈자리에서 무성한 잎새들만 흔들렸다.

“새들이 곁을 잘 안 줘요. 좀 친해져야 찍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청딱따구리는 앉아서 나무를 쪼거나 울 때 찍을 수 있는데, 솔부엉이는 낮에 잘 때 아니면 촬영하기 힘들어요. 파랑새, 새홀리기 같은 포식자들은 성미산의 제왕이기 때문에 앉아 있을 땐 찍기 쉬운 편이죠.”

노령수를 제거하지 않은 숲 쪽에서만 새소리가 들렸다.

새홀리기? 처음 듣는 새 이름이었다. 무식함을 들킬까봐 얼른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다. 새호리기라고도 불리는 맹금류 철새였다. 게다가 무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귀한 몸이었다. 그런 새가 높이 66m짜리 야트막한 동네 뒷산에 살다니. 그것도 2만8천여 가구가 빼곡하게 들어찬 성산동 주거지 한가운데에.

“숨을 데가 많으니 작은 새들이 많고, 그걸 잡으려 맹금류도 많아졌죠. 까치집은 파랑새나 솔부엉이가 뺏어서 살곤 하는데, 큰 나무 아래로 덤불이 우거져 새끼 낳아 날게해주기 좋아요. 그런데 주변 나무들을 베어버린 저런 둥지엔 살기 어렵죠. 천적한테 노출되니까요.”

그가 가리킨 나무는 산책로 왼편에 있었다. 지난 3월 말 마포구청이 아까시나무들을 삽차로 밀어낸 자리였다. 날씬하게 위로 솟은 아까시나무 꼭대기에 둥지가 보였다. 그 아래엔 고만고만한 키의 묘목이 부목들에 기대어 띄엄띄엄 서 있었다. 그쪽은 신축 아파트 화단처럼 조용했다. 그 흔한 참새 떼도 보이지 않았다.

“쓰러질 우려가 있는 나무, 위험한 나무 몇 베어내고 토종 몇 그루 심는 줄 알았지요. 저렇게 포클레인으로 밀어낼 줄 알았나요. 노거수 위험성 진단도 없었어요. 아까시나무면 다 밀어냈더라고요. 저게 이 구역에 남은 하나네요.”

늙은 나무를 한꺼번에 뽑으면 어린나무들이 클 때까지 숲의 회복이 늦어진다.

숲속의 큰 나무들은 날짐승만 품어주는게 아니다. 작은 나무들도 도와준다. 다 자란 나무는 물 대부분을 땅속으로 곧은 뿌리를 깊게 뻗어 끌어올린다. 땅 표면 가까이 뻗은 뿌리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버텨주고 주변 흙을 촉촉하게 한다. 이때 근처 작은 나무들까지 물을 얻는다. 아직 어린나무들은 부족한 물을 큰 나무들에게 얻어먹으며 곧고 깊은 뿌리를 키울 때까지 버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민둥산에도 큰 나무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빨리 자라기로 유명한 아까시나무가 대거 투입됐다. 숲을 이루자 날짐승이 날아들고 씨앗이 싹을 틔웠다. 꿀이 많은 꽃을 보고 사람들은 벌을 키웠다. 지금도 국내에서 난 벌꿀의 70%가 ‘아카시아꿀’ 그러니까 아까시꽃 꿀이다. 한국인으로 귀화한 외국 출신 기업가가 국내 시장에 이 정도 생태계를 만들어냈다면 표창장을 받았을 일이다.

아까시나무뿐 아니라 큰 나무들은 생태계에서 많은 일을 한다. 그중에서도 기후위기에 가장 주목받는 기능은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능력일 것이다. 2014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놀라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큰 나무는 작은 나무보다 빠르게 체적을 늘리면서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몸 안에 잡아두고 있었다! 지름이 100㎝인 나무의 생체 증가량은 지름이 50㎝인 나무의 3배까지 높았다. 미국, 중국 등 16개국 연구자 38명이 6개 대륙의 나무 403종, 67만3046그루를 연구한 결과였다.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몸에 품는 과정을 보자. 작은 단풍나무에 달린 이파리는 대략 15㎏이다. 이 모든 걸 나무는 광합성으로 만들어낸다. 땅과 공기에서 이산화탄소와 물을 빨아들이면 이파리의 엽록소는 햇빛을 받아 그것을 포도당(글루코스)으로 바꾸어 몸체를 키운다. 즉 나무가 몸체를 키울수록 땅과 공기의 이산화탄소가 줄어든다. 산소는 늘어난다.

그래서 최진우 대표는 한국 숲의 온실가스 흡수율을 높이고 싶다면 나무의 수명 대신 부피를 중심으로 정책을 짜라고 조언한다. 선진국에서는 ‘수목의 수관층 면적 및 부피의 총량 지표’를 사용한단다. 영국 런던은 이 지표를 21.9%에서 30%로 높이는 게 도시숲 정책 목표다. 잎을 단 나무의 총량을 늘리기 위함이다.

산림청은 추진전략(안)을 관계부처 협의, 지자체 등 현장과 소통,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9월까지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직은 나무들에게 시간이 있다. 다행이다.

40~50년 된 아까시나무 100여 그루를 뽑아낸 자리에 어린나무가 심겨 있지만 숨을 곳이 없어 새나 짐승이 깃들 곳은 없었다.

글·사진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그래픽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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