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도심 푸른 숲길은 도시 사람 마음 적시는 샘물이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㉕ 서초구의 숲과 나무를 찾아서 2
등록 : 2021-05-20 15:41
서리풀공원은 산속의 푸른 ‘숲터널’
반포천 산책길은 냇가 푸른 ‘숲터널’
모두 다 높은 빌딩숲에 싸여 있지만
찔레꽃이 얘기한다, ‘갇힌 것 아니다’
서초구 방배동 300년 넘은 느티나무 고목 여섯 그루의 내력이 궁금했으나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그 나무들이 만든 그늘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즐겼다. 지하철 방배역에서 고속터미널역을 지나 동작역까지 도심 숲길을 걸었다. 빌딩에 둘러싸인 도심의 오아시스였다.
서리풀공원 숲길은 산속의 푸른 ‘숲터널’이다. 그 길 초입에 찔레꽃이 피었다.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 부근에서 시작하는 반포천 산책길은 냇가의 푸른 ‘숲터널’이다. 그 길에도 찔레꽃이 피었다. 산속 숲길에 이어 냇가 숲길을 걸었던 하루, 찔레꽃이 마중하고 배웅한 셈이다. 이날 하루 발길을 조선시대 초기에 심었다던 잠원동 잠실 뽕나무 앞에서 멈췄다.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이 만들어낸 한가로움을 맛보다 300년 넘은 느티나무 여섯 그루가 모여 있는 곳은 서초구 방배동 방배1파출소 주변이다. 효령로33길, 언덕길 양쪽에 느티나무 고목과 소나무 등이 작은 숲을 이루었다. 오르막길 오른쪽에 느티나무 고목 한 그루, 왼쪽에 네 그루, 파출소 건물 바로 옆에 한 그루가 있다. 파출소 건물 옆 느티나무가 가장 오래됐다.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이 모인 기운이 평범하지 않아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해서 여러모로 알아봐도 별 소득이 없었다. 다만 예전에 이 주변에 마을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오래된 나무는 예로부터 마을의 평안을 위해 제사를 지낸 이야기를 간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나무들은 그런 소문도 없다. 이곳 동쪽에는 현재 서리풀공원으로 불리는 낮은 산이 있고, 남쪽에는 청권사라 불리는, 조선시대 세종 임금의 형 효령대군의 묘역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두 곳 모두 느티나무 고목 여섯 그루가 간직하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찾을 실마리가 되지는 못했다. 오래된 느티나무가 만든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며 주변을 살핀다. 숲 그늘 아래 작은 건물에 새로 페인트칠하는 아줌마의 일손이 여유롭다. 아이들이 고목 앞 내리막을 달려간다. 양산을 쓴 아줌마가 햇볕 속을 걷다가 나무 그늘로 들어와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평일 오전의 한가함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한가로움을 벗어나 발길을 멈춘 곳은 청권사였다. 조선시대 태종 임금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과 그 부인 해주 정씨의 묘역이다. 청권사는 두 사람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잘 가꾸어진 경내를 걷는 발길은 자연스레 효령대군과 부인의 묘 앞으로 이어진다. 시야가 열리는 그곳에 서서 무덤의 주인공을 생각했다.(이곳은 코로나19로 출입이 통제되기도 한다.) 효령대군의 부인은 좌찬성 정역의 딸이다. 옛 과천현 백석동 뒷산에 정역의 무덤이 조성된 이후 그 자손들이 모여 살면서 이룬 마을이 정곡마을이다. 효령대군과 부인이 묻힌 곳에서 멀지 않은, 현재 지하철 서초역 동쪽 정곡빌딩 주변에 정곡마을을 알리는 비석이 남아 있다.
찔레꽃이 반기는 서리풀공원 숲길을 걷다
효령대군 묘역 정문 서쪽 효령로 33길을 걷다가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간다. 서리풀공원 숲길로 이어지는 길이다. 찔레꽃 핀 길모퉁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걸음을 멈췄다. 하얀 꽃잎에 노란 꽃술이 매혹적이다.
숲에는 아카시아꽃 향기가 가득했다. 얽히고설키며 자라는 나무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양으로 숲을 만들었다. 그 숲에 절정을 지난 아카시아꽃이 마지막 향기를 내뿜는다. 꽃향기가 흐르는 숲길을 따라 걷는다. 청권사 쉼터를 지나 누에다리 방향으로 간다. 숲이 만든 초록 ‘숲터널’ 아래 잘 다져진 흙길은 수려한 경치도 전망도 없는, 너무 평범해서 익숙한 길이다.
서리풀공원 숲은 주변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에 사는 사람들의 뒷동산이기도 하다. 평일 한낮인데도 물 한 병 손에 들고 숲길을 오가는 사람이 많다. 곱슬곱슬한 파마를 한 아줌마들은 너무 익숙해서 편안한 자세로 숲속 쉼터에 앉아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낡은 배낭을 멘 할아버지와 그 옆을 지키며 함께 걷는 할머니의 느리디느린 걸음이 백년해로다. 그 길가에 핀 찔레꽃이 반갑다.
햇볕도 걸러 드는 숲길은 때 이른 30도 더위에도 시원하다. 숲길을 끊는 시멘트 도로를 건너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서리풀공원 숲길과 주변 지역 약도가 그려진 안내판에서 할아버지쉼터 방향으로 간다. 고갯길 정상에 전망 좋은 곳이 나온다. 멀리 남한산부터 대모산, 구룡산, 우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그 품에 안긴 도심 풍경을 보고 이어지는 숲길로 들어간다. 누에다리가 812m 남았다는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몽마르뜨공원을 지나면 누에다리다.
효령대군 묘역에서 누에다리까지 2.6㎞ 정도 된다. 대부분 싱그러운 숲길이다. 찔레꽃이 반가운 숲길이었다.
반포천 산책길을 걷고 옛 잠실리 뽕나무를 보다
누에다리에서 북쪽으로 약 600~700m 거리에 반포천 산책길 입구가 있다. 지하철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 부근에서 시작하는 반포천 산책길도 휴식 같은 ‘숲터널’ 길이다. 서리풀공원 숲길은 산속의 숲길이었고, 이곳은 시냇가 숲길인 셈이다.
반포천을 따라 동작역까지 이어지는 이 길에 피천득 산책로와 허밍웨이길 등의 이름이 붙었는데, 그 이름이 실제 이 길에서 이는 서정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반포천으로 떨어지는 폭포 같은 물줄기에서 인 바람이 푸른 ‘숲터널’을 이룬 반포천 산책길로 불어온다. 길이 소실점을 만든다. 사람들이 그 끝에서 걸어 나오거나 그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도로 때문에 ‘숲터널’이 끊어지는 곳도 있지만 이내 이어진다.
산책길 나뭇가지 사이로 반포천 건너편 아카시아 숲이 보인다. 그 향기가 반포천을 건너 이곳까지 퍼진다. 반포천에 놓인 돌다리도 정겹다. 반포천 냇물과 냇물 양쪽 옆 푸른 숲을 에워싼 건 도심의 빌딩숲이다. 반포천과 둔치 숲, 반포천 산책길은 도심의 오아시스다. 아카시아 아래에는 아카시아 꽃잎이 지천이다. 마른 꽃잎이 사람들 발길에 부스러진다. 분분했던 한때의 봄도 그렇게 스러지는가 싶었는데, 찔레꽃을 보았다. 서리풀공원 숲길 초입 길모퉁이에서 봤던 찔레꽃이 생각나 다시 반가웠다. 피천득 산책로는 그렇게 끝나고 신반포로를 건너면 허밍웨이길이다.
반포천이 한강과 만나는 부근에서 허밍웨이길도 끝난다. 길이 끝나는 곳에 지하철 동작역 1번 출구가 있다. 지하철 역사에서 한강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곳에 동재기 나루터(동작나루)를 알리는 푯돌이 있다. 수원, 과천 등지에서 남태령을 넘어 한양 도성을 오가던 사람들이 이용하던 나루터라고 한다.
동작역에서 동쪽으로 한강을 거슬러 3㎞ 정도 거리, 잠원동 신반포 16차 아파트 120동 앞에 서울시 기념물 제1호 잠실 뽕나무가 있다. 조선 초기에 심어진 것으로 추측한다. 이곳에 조선시대 왕실에서 관리하던 잠소(蠶所)가 있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잠실리였다고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잠실리 뽕나무라는 이름이 전해졌다.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잠실리에서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이 됐다. 잠실리 뽕나무는 2008년에 잠실 뽕나무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선시대 초기에 심었던 뽕나무는 현재 고사목이 됐다. 그 주변에 대한잠사회에서 뽕나무를 심어 조선시대 심은 뽕나무의 내력을 기리고 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서리풀공원 숲길. 푸르게 빛나는 ‘숲터널’.
쇠파이프 지지대로 받친 나무가 조선시대 초기에 심었다고 알려진 잠실 뽕나무다.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이 만들어낸 한가로움을 맛보다 300년 넘은 느티나무 여섯 그루가 모여 있는 곳은 서초구 방배동 방배1파출소 주변이다. 효령로33길, 언덕길 양쪽에 느티나무 고목과 소나무 등이 작은 숲을 이루었다. 오르막길 오른쪽에 느티나무 고목 한 그루, 왼쪽에 네 그루, 파출소 건물 바로 옆에 한 그루가 있다. 파출소 건물 옆 느티나무가 가장 오래됐다.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이 모인 기운이 평범하지 않아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해서 여러모로 알아봐도 별 소득이 없었다. 다만 예전에 이 주변에 마을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오래된 나무는 예로부터 마을의 평안을 위해 제사를 지낸 이야기를 간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나무들은 그런 소문도 없다. 이곳 동쪽에는 현재 서리풀공원으로 불리는 낮은 산이 있고, 남쪽에는 청권사라 불리는, 조선시대 세종 임금의 형 효령대군의 묘역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두 곳 모두 느티나무 고목 여섯 그루가 간직하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찾을 실마리가 되지는 못했다. 오래된 느티나무가 만든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며 주변을 살핀다. 숲 그늘 아래 작은 건물에 새로 페인트칠하는 아줌마의 일손이 여유롭다. 아이들이 고목 앞 내리막을 달려간다. 양산을 쓴 아줌마가 햇볕 속을 걷다가 나무 그늘로 들어와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평일 오전의 한가함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한가로움을 벗어나 발길을 멈춘 곳은 청권사였다. 조선시대 태종 임금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과 그 부인 해주 정씨의 묘역이다. 청권사는 두 사람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잘 가꾸어진 경내를 걷는 발길은 자연스레 효령대군과 부인의 묘 앞으로 이어진다. 시야가 열리는 그곳에 서서 무덤의 주인공을 생각했다.(이곳은 코로나19로 출입이 통제되기도 한다.) 효령대군의 부인은 좌찬성 정역의 딸이다. 옛 과천현 백석동 뒷산에 정역의 무덤이 조성된 이후 그 자손들이 모여 살면서 이룬 마을이 정곡마을이다. 효령대군과 부인이 묻힌 곳에서 멀지 않은, 현재 지하철 서초역 동쪽 정곡빌딩 주변에 정곡마을을 알리는 비석이 남아 있다.
여섯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이 푸른 그늘을 만들었다.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 부근 반포천 산책길 시작 지점.
서리풀공원 숲길 초입에 피어난 찔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