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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100년 뒤 다른 미래 서울’ 여는 열쇠입니다”
등록 : 2021-05-27 15:49 수정 : 2021-05-27 22:27
지난 20일 끝난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의미를 되돌아 본다
김인호 조직위원장과 이애란 조직위원…“녹색 서울 길잡이 될 것”
“‘자동차 중심 도시→사람 중심 도시’ 바뀔 때 정원 역할 중요”
정원도시, ‘배산임수 한양 정신’ 잇는 것
함께 정원 가꿀 때 주민 공동체성 회복
“코로나 위기 속 다른 미래 꿈꾸게 해”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다른 미래의 서울’을 여는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4~20일 진행된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마지막날. 중구 저동에 있는 남대문문화공원에서 만난 김인호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장(신구대 환경조경학과 교수)과 이애란 조직위원(청주대 환경조경학과 교수)이 나눈 대화의 핵심이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서울시가 2015년부터 이어온 정원 축제다. 손기정체육공원, 만리동광장, 남대문문화공원, 중림동 일대 등에서 분산 개최된 이번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국내외 조경과 정원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여한 58개 정원을 선보였다. 애초 지난해 10월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한 차례 연기된 끝에 온·오프라인 행사를 병행해 이번에 열렸다.
두 교수가 만난 남대문문화공원에는 ‘덩굴의 그물망’(The Vine’s Web)이라는 작품이 설치돼 있었다. 이번 박람회 초청 작가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정원 전문가 앤드루 그랜트의 작품이다. 작가가 균류 네트워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이 자홍색 작품은 작은 공원과 잘 어울렸다. 독특한 구성과 색감을 가진 이 작품은 박람회가 끝난 뒤에도 철거되지 않고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앞으로도 남대문 일대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시는 박람회 때 전시된 58개 정원 중 약 절반인 27개 정원을 박람회가 끝난 이후에도 철거하지 않고 지역 주민 쉼터로 유지할 예정이다.
‘정원을 연결하다, 일상을 생각하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정원박람회는 ‘일상’과 ‘연결’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일상 속 작은 정원들을 연결하는 방식에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전체 작품 중 46개인 시민 참여 정원은 중림동 골목골목에 숨어 있는 빈 공간을 이용해서 주민들이 직접 만들고 가꾼 곳이 대부분이다.
이는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초기에 월드컵공원(2015~2016년), 여의도공원(2017~2018년) 등 대형 공간에서 진행됐던 서울정원박람회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2019년 박람회 때 해방촌에서 마을정원 조성 사업을 선보인 뒤, 이번 박람회에서 마을정원 사업을 더욱 강화했다. 김 조직위원장은 이에 대해 “정원이 마을과 골목 속으로 들어간 것은 정원박람회 역사에서 의미있는 변화”라고 평가했다.
“사실 정원이 마을로 들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버려진 빈 땅을 찾는 절차가 복잡하고, 주민들이 참여해 힘을 모으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정원들은 앞으로 주민들에게 녹색 치유의 공간으로 역할을 할 것입니다.”
김 위원장이 이렇게 마을로 들어간 정원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것이 ‘서울의 다른 미래’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의 다른 미래와 관련해서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 중 하나가 안 이달고 프랑스 파리 시장이 2020년 6월 재선에 성공하면서 공약으로 내건 ‘15분 도시’ 정책이라고 봅니다.”
이달고 시장의 ‘15분 도시’ 공약은 파리의 어느 곳에 살든, 주민들이 각종 생활편의시설을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안에 접근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동차 없는 생활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때 정원은 주민들이 안락한 지역 생활을 누리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생활편의시설이다.
김 위원장은 “녹색 서울로 상징될 수 있는 서울의 다른 미래도 자동차 중심 도시에서 사람 중심 도시로 바뀌는 게 기본이 될 것”이라며 “이때 삶의 터전인 마을 곳곳에 정원이 자리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애란 조직위원은 생활 속에 정원이 들어오는 것은 ‘배산임수 한양의 정신’을 잇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조직위원은 “한양은 원래 자연에 순응하고 상생하는, 산과 바람과 물이 풍부한 터였다”며 “앞으로 서울의 방향성도 고정된 회색 덩어리들의 확장이 아니라 비움과 조화를 강조하는 자연미의 창의도시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이때 정원도시가 그 가능성의 바탕이 될 것”이라며 “환경의 순환 속에서 인간은 힐링을 통해 자아를 회복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건강한 사회, 안정된 도시를 가꿔나갈 수 있는 주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조직위원장은 정원이 시민들을 삶의 주체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정원이 가진 공동체성’에서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에 정원 문화가 확산하면 공동체성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정원에 대해서는 ‘햇빛과 물과 땅이 만들어낸 타이밍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민들이 동네 정원의 그 타이밍을 매개로 함께 나와 일하면서, 정원을 함께 가꾸는 데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나누며 자발적인 작은 공동체로 발전해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21세기의 계와 두레·품앗이는 정원을 매개로 이루어질 수 있다”며 “그런 자발적 작은 공동체는 고독사를 막고 자살률을 낮추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업무를 담당했던 조진성 푸른도시국 조경과 정원정책팀 주무관은 “서울시에서도 지금까지 537명의 시민정원사를 양성하고 있으며, 정원박람회가 그런 활동을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이애란 조직위원은 “지금까지 서울의 이미지는 앞으로만 달려가는 도시, 그리고 하늘 높이 쌓아가기 바쁜 도시였다”며 “이번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코로나19 위기 속에 진행되면서 오히려 ‘정원 도시 서울’이라는 비전을 더욱더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이에 “정원박람회가 서울을 더욱 걷고 싶고 자랑할 만한 도시가 되도록 가치와 수준을 높여가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이렇게 정원을 통해 서울의 가치와 수준을 높여갈 때 서울은 더욱 품위있는 관광자산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은 전후 70년 만에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며 “하지만 이제는 더욱 품격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가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또 “정원은 산업으로서의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인구 구성이 고령화하면서 산업화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 정원이기 때문”이라며 “그것은 정원이 인간이 근원적으로 추구하는 이상향을 물리적 공간으로 만든 개념이기 때문일 것”이라며 말했다.
이 위원은 “온·오프라인을 병행한 이번 정원박람회는 전세계가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속도감 있는 혁명시대에 대응하는 박람회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국내 최초 정원산업계 트렌드를 한자리에 담은 ‘온라인 정원산업전’은 앞으로 우리나라 정원산업이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이는 세계적인 스마트 강국인 우리나라의 메리트를 활용해 최대 효과를 얻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정원산업전이 정원·조경·화훼·원예 관련 기업과 신제품·신기술·신품종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플랫폼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기대인 셈이다.
사실 애초 개인 재산으로 간주되던 정원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공원으로 발전한 것은 18세기 산업혁명이 가져온 ‘위기’와 관련이 있다. 당시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의 삶의 질이 매우 나빠짐에 따라 이 시기 영국 의회에서 상하수도와 공공 공원 조성에 세금 이용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버컨헤드공원(1843년)이 귀족 중심의 소유형 정원에서 시민을 위한 공공의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19세기 센트럴파크를 통해 확산된 미국 공공 공원 조성도 도시에서 생존에 필요한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됐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는 ‘도시 속의 정원’을 넘어 ‘정원 속의 도시’라는 개념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녹색 서울로 나아가는 데 계속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시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김인호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장(오른쪽)과 이애란 조직위원(왼쪽)이 조진성 서울시 조경과 정원정책팀 주무관(가운데)과 함께 지난 20일 남대문문화공원에서 만나 ‘서울국제정원박람회’를 돌아보는 대담을 나눴다. 세 사람 뒤로 이번 박람회 초청 작가인 영국 정원 전문가 앤드루 그랜트의 작품 ‘덩굴의 그물망’이 보인다.
지난 14~20일 진행된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마지막날. 중구 저동에 있는 남대문문화공원에서 만난 김인호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장(신구대 환경조경학과 교수)과 이애란 조직위원(청주대 환경조경학과 교수)이 나눈 대화의 핵심이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서울시가 2015년부터 이어온 정원 축제다. 손기정체육공원, 만리동광장, 남대문문화공원, 중림동 일대 등에서 분산 개최된 이번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국내외 조경과 정원 전문가와 시민들이 참여한 58개 정원을 선보였다. 애초 지난해 10월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한 차례 연기된 끝에 온·오프라인 행사를 병행해 이번에 열렸다.
‘덩굴의 그물망’ 설치 이전의 남대문문화공원
학생정원 출품작 ‘아이 캔 두 잇’.
작가정원 출품작 ‘더 핑크 아일랜드’.
동네정원 출품작 ‘리피리피’.
지난 20일 남대문문화공원 입구에 ‘서울국제정원박람회’ 행사 관람 방법 등을 써놓은 입간판이 서 있다. 오른쪽이 초청 작가 작품 ‘덩굴의 그물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