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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디자인? ‘사람 중심 서울’ 만드는 새로운 시각입니다”
등록 : 2021-06-03 16:23
서울시, 지난해 전국 최초 유니버설디자인센터 만들어
‘생활 속 약자’ 시각으로 ‘불편한 서울’ 개선작업 나서
시민참여단, 장애인·고령자 참여로 생활 현장 불편 사항 점검
신축 공공건축물 컨설팅 사업 벌이고
동 주민센터 화장실에 적용, 편리성 높여
올해 첫 ‘유니버설 디자인 대상’도 준비
“장애인용 비상도움벨이 너무 높네요.” 5월26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지하 ‘충무공이야기 전시실’ 앞. 휠체어에 앉은 시민 전인선씨가 장애인 화장실을 둘러보고 조용히 얘기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비상도움벨이 바닥면에서 50㎝ 이상 되는 ‘높은 곳’에 설치돼 있었다. “도움벨이 저렇게 높은 데 있으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넘어졌을 때 벨을 눌러 도움을 청할 수 없어요.” 전씨는 이날 서울시유니버설디자인센터(센터장 최령)가 운영하는 시민참여단 단원으로서 세종대로 일대를 ‘유니버설 디자인 관점’으로 살펴보는 중이었다. 전씨를 비롯해 시민참여단 단원 20여 명은 이날 오전 9시30분 시청역 근처에 있는 도시건축전시관을 출발해 중구 성프란치스코회 교육회관까지 3개 조로 나누어 이동했다. 참여단원들은 휠체어를 탄 사람과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 초등학생을 둔 엄마, 외국인 유학생, 고령자 등 모두 대도시 서울에서 ‘보행 약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날 단원들의 임무는 ‘보행 약자의 눈으로 서울의 도로와 시설에서 불편한 것을 찾는 것’이었다. 시민참여단 단원 중 관광학과에 다니는 대학생 황유정씨는 길을 가다가 툭 튀어나온 하수구 맨홀 뚜껑 앞에 멈춰선 뒤 여러 차례 발을 가져다 대봤다. 통역사 출신 60대 차정희씨는 중간에서 끊어진 점자블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모두 시각장애인이 길을 걷다 큰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또 다른 단원은 신호등이 켜진 횡단보도를 천천히 걸어 지나가기도 했다. 어린아이나 장애인이 보도를 건너갈 때 초록불 신호 시간이 충분한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대학생 황씨는 1시간가량 보행 약자의 시각으로 서울 거리를 걸어본 뒤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관광 약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많이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거리에 있는 여러 걸림돌을 새롭게 발견하고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전씨와 황씨를 비롯해 시민참여단이 이날 찾아낸 서울시 도로의 불편 사항은 서울시유니버설디자인센터(이하 유디센터)에서 모은 뒤 서울을 ‘유니버설 디자인 도시’로 개선하는 밑자료로 활용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나이·성별·국적과 장애 유무 등 관계없이 모든 시민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을 가리킨다.
장애인도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디자인이라는 측면에서 ‘배리어프리 디자인’과 통하지만, 사실 그보다 넓은 개념이다. 배리어프리 디자인에서는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어린이, 고령자, 육아기 아이를 둔 부모, 외국인 등 생활 속 약자들까지 고려한 디자인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유디센터는 이런 유니버설 디자인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해 6월 서울시가 설립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유니버설 디자인 관련 단체를 만든 것은 서울시가 처음이다.
센터의 탄생은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서울시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의 결과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앞서 2016년 5월 ‘서울시 유니버설 디자인 도시 조성 기본조례’를 제정해 유니버설 디자인 정책 추진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어 2017년에는 ‘유니버설 디자인 통합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민간 부문 등에서 건물 설계 등을 할 때 참고하도록 했고, 2018년에는 서울시 유니버설 디자인 ‘기본계획’을, 2020년에는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전국 최초로 유니버설 디자인 도시를 향한 종합 설계도를 갖춘 것이다. 서울시는 또 지난해 12월15일에는 ‘모두가 존중받는 사람 중심 도시’를 지향해나갈 것을 천명한 ‘서울시 유니버설 디자인 도시 선언’을 발표했고, 올해부터는 신축·개보수하는 모든 공공건물과 시설물에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유디센터를 설립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유니버설 디자인 전문가인 최령 센터장을 유디센터장으로 위촉하고 유디센터가 서울시의 이런 선도적인 유니버설 디자인 정책을 앞장서서 실행하도록 했다. 최령 초대 센터장은 연세대 주생활학과를 졸업한 뒤 1990년대 초 일본 나라여자대학에서 노인 주거와 아동공동주택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유니버설 디자인에 접하게 됐다고 한다.
최 센터장은 이후 국내에 귀국해 연세대와 유니버설 디자인 확산을 위한 시민단체인 생활환경디자인연구소에서 20여 년 동안 유니버설 디자인 연구와 학술활동을 해왔다. 최 센터장은 또 서울시와 경기도의 유니버설 디자인 조례 제정 작업에 참여한 데 이어 2018년에는 행정안전부가 해마다 선정하는 국민행복민원실 선정 기준에 유니버설 디자인 항목을 추가하는 정책의 정착 과정에도 관여했다. 최 센터장은 서울시의 유니버설 디자인 정책에 대해 “서울을 사람 중심 도시로 만들어나가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서울은 현재 빠르게 변화해가는 중이다. 2026년이 되면 65살 이상 시민이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저출산 문제도 심각하고 외국인 거주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서울시 자체가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면서, 모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도시로 변화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약자 시각에서 본 도시, 즉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유디센터는 지난해 설립한 뒤 ‘약자의 시각’ 혹은 ‘시민의 시각’을 담아내는 일에서부터 출발했다. 시민참여단 운영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제1기 시민참여단은 돈의문박물관마을, 문화비축기지, 서울역사박물관 등 8곳의 서울시 공공시설을 대상으로 시민의 시각으로 불편한 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발견해낸 사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블로그 등에 올려 시민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지난해 추진한 ‘시민 편의공간 유니버설 디자인 개선사업’ 또한 이용자인 시민의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면서, 시민 생활과 밀접한 공간을 개선하고자 한 사업이다. 지난해에는 개선 대상 시민 편의공간으로 ‘동 주민센터 화장실’이 선정됐다. 최 센터장은 이에 대해 “동 주민센터 화장실은 고령자, 어린이, 육아기 부모, 외국인 등 다양한 이용자가 쓰는 곳”이라며 “해당 동 주민센터 방문자, 개방 화장실 이용 시민의 사용성 등을 고려해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구로2동 주민센터 화장실은 출입구에 저시력자나 외국인도 알기 쉬운 안내표지판을 적용했으며, 신정3동 주민센터 화장실의 경우 남자 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고,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벽-바닥-시설물을 구별하기 쉽도록 다른 색깔을 적용하기도 했다.
유디센터는 올해도 시민참여단 활동과 시민 편의공간 개선사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최령 센터장은 “올해는 시민참여단 같은 활동이 구 단위에서 정착될 수 있도록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유디센터의 활동이 시민참여단 활동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최 센터장은 “올해는 센터가 유니버설 디자인 확산을 위해 시민참여단 이외에도 더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해나가고 있다”며 “무엇보다 힘을 쏟는 건 신축되는 공공건축물에 유니버설 디자인이 제대로 적용되도록 컨설팅하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최 센터장은 “지난해 1기 시민참여단이 세종문화회관 모니터링 결과, 대극장 2층 맨 뒤에 마련한 장애인 좌석이 바로 앞 좌석이 높기 때문에 시야가 가린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유디센터에서는 새로 짓는 건물에 대해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해 컨설팅함으로써 이런 불편함을 미리 막으려 한다”고 했다. 최 센터장은 현재 컨설팅이 진행되는 신축 공공건물로 서서울미술관, 창작연극지원시설 등을 꼽았다.
최 센터장은 올해는 또 서울을 넘어 유니버설 디자인의 전국적 확산을 위한 제도 개선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유디센터는 우선 오는 12월 시상식을 할 제1회 서울 유니버설 디자인 대상을 준비중이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유디센터가 주관하는 서울 유니버설 디자인 대상은 ‘유니버설 디자인 도시 서울’의 위상을 높이고, 유니버설 디자인 관련 우수 사업과 정책을 발굴해 시상함으로써 유니버설 디자인의 저변을 넓히는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디 환경 조성 분야’(유니버설 디자인 적용 시설물 및 공간 대상)와 ‘서비스 및 정책 분야’(사용자 서비스 사례, 정책 아이디어 제안) 등 두 공모 분야로 진행되며, 지자체부터 기업·기관, 그리고 팀이나 개인 자격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오는 7~8월에 접수한 뒤 9~10월 심사를 거칠 계획이다.
서울시와 유디센터는 이와 함께 유니버설 디자인 관련 상위법 제정 활동도 올해 지속해나갈 중요한 활동으로 꼽는다. 유니버설 디자인과 관련해서는 서울시를 비롯해 상당수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한 상태지만, 아직 입법화가 안 돼 있다. 유디센터는 유니버설 디자인 관련 입법화가 관련 저변 확산에 중요하다고 보고, 이미 지난 5월7일 ‘유니버설 디자인 조성과 확산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국회의원 박주민 의원실, 최혜영 의원실, 장경태 의원실(이상 더불어민주당), 이종성 의원실(국민의힘)이 주최하고, 유디센터가 주관했다. 최령 센터장은 앞으로도 유디센터에서는 법 제정과 관련해 더욱 많은 목소리를 담아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와 유디센터가 앞으로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어떻게 확산시켜나갈지 기대된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지난 5월26일 서울시유니버설디자인센터 시민참여단이 광화문 일대를 움직이며 ‘보행 약자의 시각’으로 서울시 시설물의 불편함을 찾고 있다. 시민참여단은 지체장애인을 비롯해 청각장애인, 고령자, 육아기 학부모, 외국인, 청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장애인용 비상도움벨이 너무 높네요.” 5월26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지하 ‘충무공이야기 전시실’ 앞. 휠체어에 앉은 시민 전인선씨가 장애인 화장실을 둘러보고 조용히 얘기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비상도움벨이 바닥면에서 50㎝ 이상 되는 ‘높은 곳’에 설치돼 있었다. “도움벨이 저렇게 높은 데 있으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넘어졌을 때 벨을 눌러 도움을 청할 수 없어요.” 전씨는 이날 서울시유니버설디자인센터(센터장 최령)가 운영하는 시민참여단 단원으로서 세종대로 일대를 ‘유니버설 디자인 관점’으로 살펴보는 중이었다. 전씨를 비롯해 시민참여단 단원 20여 명은 이날 오전 9시30분 시청역 근처에 있는 도시건축전시관을 출발해 중구 성프란치스코회 교육회관까지 3개 조로 나누어 이동했다. 참여단원들은 휠체어를 탄 사람과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 초등학생을 둔 엄마, 외국인 유학생, 고령자 등 모두 대도시 서울에서 ‘보행 약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날 단원들의 임무는 ‘보행 약자의 눈으로 서울의 도로와 시설에서 불편한 것을 찾는 것’이었다. 시민참여단 단원 중 관광학과에 다니는 대학생 황유정씨는 길을 가다가 툭 튀어나온 하수구 맨홀 뚜껑 앞에 멈춰선 뒤 여러 차례 발을 가져다 대봤다. 통역사 출신 60대 차정희씨는 중간에서 끊어진 점자블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모두 시각장애인이 길을 걷다 큰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또 다른 단원은 신호등이 켜진 횡단보도를 천천히 걸어 지나가기도 했다. 어린아이나 장애인이 보도를 건너갈 때 초록불 신호 시간이 충분한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대학생 황씨는 1시간가량 보행 약자의 시각으로 서울 거리를 걸어본 뒤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관광 약자를 위한 봉사활동을 많이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거리에 있는 여러 걸림돌을 새롭게 발견하고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센터의 시민참여단이 광화문 일대를 둘러보고 느낀 불편 사항을 포스트잇으로 지도에 빼곡히 붙여놓았다.
지난해 12월15일 서울시유니버설디자인센터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둥지를 틀었다. 같은 해 6월 설립된 지 6개월 만이다.
지난해 서울시유니버설디자인센터는 ‘시민 편의공간 유니버설 디자인 개선사업’을 진행하면서, ‘동 주민센터 화장실’을 첫 번째 대상으로 선정했다. 사진은 신정3동 주민센터 화장실의 변화된 모습.
유니버설디자인센터가 지난 5월7일 주관한 ‘유니버설 디자인 조성과 확산을 위한 정책 토론회’ 모습. 센터는 앞으로도 유니버설 디자인 관련 법 제정과 관련해 더욱 많은 목소리를 담아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