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열섬 현상 ‘날씨’가 주요 변수
햇볕 쨍쨍하면 도심 속 습도 낮아지며
온도는 크게 높아지는 현상 나타나
자연은 빗물 품고 ‘증발’로 온도 낮춰
도심은 물이 빨리 말라 온도 높아져
화단 등 ‘빗물저금통’↑면 ‘도시 온도’↓
옥상을 녹화하면 물과 나무가 증발산을 일으켜 열섬 현상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서울대 35동 옥상텃밭 건너편으로 옥상정원을 설치한 34동 옥상이 내다보인다.
서울엔 보이지 않는 섬이 있다. 햇빛이 강렬한 날, 그 섬은 도심에서 투명한 불꽃처럼 아른거리며 나타난다. 비가 오면 사라진다. 아지랑이 같다. 잡을 수 없다. 그 섬을 우리는 ‘열섬’(Heat Island)이라 부른다. 도시 기온이 교외보다 높아지는 현상이다.
열섬을 비롯한 다양한 도시 현상을 서울시는 사물인터넷(IoT) 복합센서 ‘에스닷’(S-DoT, Smart Seoul Data of Things)으로 분석한다. 주거·상업·공원·산지 등 1100군데에 설치한 이 센서는 온도·습도·초미세먼지·소음 등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17가지를 2분마다 수집한다.
서울대 35동 옥상텃밭은 교수, 교직원, 주민, 환경미화원, 동네 주민 등 분양받은 참여자가 함께 관리한다. 우연히 텃밭 운영자를 만난 한무영 서울대 교수(왼쪽)가 환담을 나누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열섬 데이터를 분석하던 이상범 서울시 스마트도시인프라팀 주무관의 눈에 묘한 현상이 포착됐다. 평균적으로 도심 기온은 산지보다 여름엔 2.32도, 겨울엔 2.16도 높았다. 어떤 날엔 최대 7도까지 더 높았다. 여기까진 열섬 현상에 대한 일반 이론과 비슷했다. 하지만 습도를 분석하다 그는 ‘조금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열섬 현상 이론에선 ‘열섬의 강도는 보통 낮보다는 밤에, 여름보다는 겨울에 크게 나타난다’는 언급이 종종 나옵니다. 날씨는 고려하지 않아요. 그런데 분석해보니 이론과 차이가 있었어요. 일별, 계절별, 시간별 차이보다는 날씨 차이가 컸습니다. 특히 습도 차가 커지면 낮은 습도를 가진 곳이 높은 습도를 가진 곳보다 높은 온도를 나타냈습니다. 습도와 온도가 음의 상관관계를 보인 것이죠.”
서울대 35동 공동텃밭에서 한무영 교수가 직접 캐낸 감자를 들어보이고 있다
그는 수락산 주변과 그 근처의 공릉역을 예로 들었다. 지난해 8월11일, 밤부터 내린 비가 오전 내내 이어졌던 날이었다. 두 지역 습도는 95%로 비슷했고, 기온 차이는 1도 안팎이었다. 비가 그친 뒤 양상이 달라졌다. 공릉역의 습도는 71%까지 급락했다. 반대로 기온은 29.4도까지 4도가 치솟았다. 그러나 수락산 주변은 기온 26도대, 습도 90%대를 유지했다. 두 지역의 기온 차는 3도 이상 벌어졌다.
“비가 온 다음 태양이 나왔나 보네요.”
이 데이터를 본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가 말했다. ‘빗물박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는 SCI(Science Citation Index, 과학인용색인) 논문만 100여 편을 썼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모모모 물관리> 등 관련 책 26권을 쓰고 번역하고 감수했다. ‘모모모’란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모든 물의 관리’라는 뜻이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산은 빗물을 많이 머금고 있어요. 물기를 머금은 산에선 태양에너지가 잠열로 바뀌고 현열은 작아집니다. 그래서 온도가 많이 올라가지 않아요. 하지만 도시에선 태양에너지가 대부분 현열로 바뀌어요. 비가 그치고 해가 뜨면 곧장 더워지지요. 빗물이 다 하수도로 버려지기 때문이죠.”
여기서 잠깐. ‘잠열’은 뭐고 ‘현열’은 뭘까. 잠열(潛熱, Latent Heat)은 물질의 모습(像)을 바꾸는 열이다. 물을 끓이거나 얼릴 때 쉽게 볼 수 있다. 냄비에 물을 담고 아무리 끓여도 온도는 100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얼음을 가열해도 마찬가지다. 다 녹기 전까지는 0도 이상으로 뜨거워지지 않는다. 이때 열에너지는 물의 모습을 바꾸는 데에만 쓰인다.
물이 다 수증기로 날아가면, 혹은 얼음이 죄다 물로 녹아버리면 그제야 냄비 온도가 높아진다. 열에너지가 물질의 온도를 높이는 데 쓰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물질의 온도를 변화시키는 열을 현열(顯熱, Sensible Heat)이라고 한다.
산지나 강가에선 물에 잠열이 축적된다. 그래서 ‘증발산’ 작용이 일어난다. 증발산은 증발과 증산을 합친 말이다. 수증기가 지면과 수면에서 올라가면 ‘증발’(蒸發), 식물체로부터 올라가면 ‘증산’(蒸散)이다. 물이 수증기가 되는 것, 즉 기화 현상이다. 기화는 열을 흡수하면서 일어난다. 물방울이 대기로부터 열을 빼앗으면 공기는 시원해진다.
“물 1t이 기화할 때 흡수하는 에너지는 700㎾h(킬로와트시)입니다. 1㎾짜리 다리미를 700시간 동안 켠 것과 같은 에너지죠. 이것이 강변이 시원한 이유이고, 열이 날 때 물 묻힌 수건을 대면 열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나무는 광합성 과정에서 물을 흡수했다가 내뿜으면서 증산 작용으로 스스로 습도를 조절합니다. 그런데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심은 어떨까요? 물과 나무가 없으니 증발산이 일어나지 않겠죠? 그래서 사막화되는 겁니다.”
문득 기상청 전망이 떠올랐다. 올해 8월엔 극한 폭염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한 교수는 “빗물을 심자”고 제안했다. 과학 원리를 몰랐어도 옛사람들은 빗물을 심었다. 빗물을 받아 쓰는 제주의 ‘촘항(항아리)’, 무더운 날 모두 함께 거리에 물을 뿌리는 일본의 ‘우치미즈’ 전통이 그런 예다. 다세대 주택가 곳곳에 놓인 대야 화분, 스티로폼 화단도 ‘빗물 저금통’이다.
연구실이 있는 서울대 35동 옥상으로 한 교수가 올라갔다. 텃밭과 연못이 있었다. 대학 직원들과 동네 주민들이 9년째 가꾸고 있다. 텃밭에선 감자·상추·옥수수·고추 따위 먹을 수 있는 온갖 것이 자랐다. 만든 지 6년 됐다는 연못에선 어디선가 날아들어 싹튼 버드나무와 갈대가 우거져 있었다. 옥상 한편, 스무 채 남짓한 벌집에선 벌떼가 웅웅거렸다. 초원 같았다.
“6~8월 옥상 표면 온도는 30~50도까지 올라갑니다. 태양열이 건물에 비축돼서 그래요. 이런 게 촘촘히 들어서 있으니 도심에서 열섬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우리 35동은 옥상녹화를 했더니 26도쯤으로 낮아졌어요. 모든 건물을 이렇게 바꾼다고 상상해보세요. 도심 전체가 시원해지겠지요?”
열섬과 기후위기에 대비하려면 나무 심기뿐 아니라 물 심기도 생각하라고 한 교수는 덧붙였다. 다른 대도시들은 그렇게 한다. 미국 휴스턴시는 ‘친환경 빗물 기반시설(Green Stormwater Infrastructure)’로 선정된 민간개발사업자에게 10년간 재산세를 감면해준다. 도심에서 물을 땅으로 침투(Greened Acres)시키는 면적을 늘리기 위해 뉴욕시는 2027년까지 14억2천만달러를, 필라델피아시는 2034년까지 24억달러의 예산을 집행하기로 했다. 도시화 이전의 자연 상태와 같은 물순환, ‘오래된 미래’를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글·사진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그래픽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참고 자료: <화학용어사전>, <기상백과>, ‘미국 물순환 정책 현황과 동부지역 도시 사례’(도시물순환센터), ‘세계 도시 동향’(서울연구원)
자문: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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