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정동길 오랜 나무들, ‘유관순·김소월 기억’ 전하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㉘ 서울시 중구2

등록 : 2021-07-01 14:17
캐나다 대사관 앞 560년 된 회화나무

이화학당 다니던 유관순과 함께 하고

배재학당 한켠에 선 570년 된 향나무

시 읽는 김소월의 모습 지켜봤으리라


덕수궁 석어당 추녀 앞의 살구나무가

살구 하나 떨궈 ‘알고 있느냐’ 말을 건다

정동 정동길에 있는 회화나무 고목. 560년이 넘었다.


덕수궁의 오전은 석어당 추녀와 그 앞 살구나무, 나무 아래 떨어진 살구 한 알이 만들어낸 풍경 덕에 청명했다. 궁궐 안 작은 숲길에서 만난 고목 몇 그루가 숲의 역사를 말해준다. 560년 넘은 정동길 회화나무와 570년 넘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앞 향나무를 보며 일제강점기에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관순 열사와 지금도 사람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김소월 시인의 시를 생각해본다. 손기정 체육공원은 이런 하루를 마감하기에 좋은 곳이다.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면서 받은 대왕참나무가 그곳에서 자라고 있다.


덕수궁의 고목들

덕수궁의 이른 오전이 청명했던 건 석어당 앞마당에 떨어진 살구 한 알 때문이었다. 말소리, 발소리 하나 없는, 오전 9시를 갓 넘긴 석어당 앞마당은 고즈넉했다. 살구 한 알 떨군 살구나무는 석어당 처마 앞으로 푸른잎 무성한 가지를 드리웠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렸고 사뿐히 치켜올린 추녀가 가벼웠다.

살구나무의 수령을 두고 누구는 한 100년 정도, 누구는 한 300년 정도로 추정한다고 했다. 여러 대답 중 가장 정확한 것은 “나무 나이는 나이테를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였다. 굵은 줄기와 넓게 퍼진 가지로 나무의 나이를 가늠하면서 발길을 옮겼다.

덕수궁 석어당 앞 살구나무 고목.

석어당 뒤로 걸었다. 정관헌으로 들어가는 문 앞 화장실 뒤 커다란 회화나무는 조금 전 덕홍전 앞마당에서 담장 넘어 봤던 그 나무였다. 이 나무 수령 또한 300~400년 정도로 추정할 뿐이었다. 커다란 회화나무 서쪽은 작은 숲이다. 즉조당, 준명당, 석조전의 뒤뜰이기도 한 작은 숲에 난 길을 걷다가 굵은 줄기만 남은 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고사목인 줄 알았는데 푸른 잎을 피웠다. 꽤 오래 살고 있는 나무 같았다.

이 작은 숲은 여러 장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04년 경운궁(덕수궁) 화재 전에 촬영한 사진에 중층으로 지은 중화전 뒤로 커다란 나무들이 보인다. 또 1920년대에 촬영한 석조전 사진 한쪽에 석조전 꼭대기보다 높게 자란 나무들이 보인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적어도 100년은 넘은 작은 숲이다. 덕수궁 100년 숲길 끝에서 만난 가시칠엽수의 수령도 1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마로니에라고 알려진 나무다.

이 나무 앞 돈덕전 재건 공사장에도 회화나무 고목이 있는데, 공사 중이라 접근할 수 없었다. 어수선한 공사 현장에서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회화나무 고목이 힘겨워 보인다. 공사 안내문에 2022년 8월까지 공사를 마친다고 했으니, 그때는 재건된 돈덕전 앞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줄 회화나무 고목의 너른 품을 느껴볼 수 있겠다.

석조전 앞 분수대가 쨍쨍한 햇볕 아래 물줄기를 내뿜는다. 향나무, 배롱나무 등이 어우러졌다. 분수대 뒤로 등나무가 보인다. 등나무 뒤에는 주목 두 그루가 은행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서 있다. 등나무와 주목은 1920~1930년 사이에 심은 것으로 추정한다. 구불거리며 기둥을 휘감고 오르는 등나무 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덕수궁 석어당 앞 살구나무 고목에서 떨어진 살구.

김소월 시인의 학창시절을 함께한 향나무 고목

정오로 향하는 시간, 날선 햇볕을 맞으며 덕수궁을 나섰다. 덕수궁 담장 따라 이어지는 덕수궁길을 걷는다. 정동제일교회 앞 정동길 초입에 작곡가 이영훈을 기리는 조형물이 있다. 이 길에 접어들면 언제나 이영훈이 짓고 가수 이문세가 노래한 여러 노래가 생각난다. ‘언덕 밑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정동길을 걷는다.

줄지어선 은행나무 사이에서 만난 회화나무는 수령이 560년 넘었다. 2003년 캐나다 대사관을 지을 때 이 나무가 건강하게 더 오래 살 수 있도록 뿌리 위치까지 고려해서 건축 디자인을 변경했다. 그래서 이 나무 주변 인도 폭이 넓고 건물은 그만큼 뒤로 밀려나 있다.

회화나무 고목 길 건너편에 이화여고가 있다. 1886년 한옥 건물로 시작한 이화학당이 이화여고의 시작이다. 당시 건물 중 1915년에 지은 심슨기념관만 남아 있다. 현재는 이화박물관이다. 일제강점기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관순 열사가 1916년 이화학당에 입학했다. 한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던 학생 유관순의 모습을 정동길 회화나무는 보았을 것이다.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다시 걷는다. 정동제일교회 앞에서 서소문로11길로 접어든다. 붉은 벽돌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916년 지어진 배재학당 동관이다. 지금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이다. 건물 한쪽 모서리 부근에 건물 지붕보다 더 높게 자란 나무가 한 그루 보인다. 570년 넘은 향나무다.

1922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한 김소월은 이미 시인이었다. 1920년 ‘낭인의 봄’ ‘그리워’ 등을 <창조>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으로 시작하는 노랫말도 이 무렵 발표한 김소월의 시다. 학생 시인 김소월의 푸르른 시절을 함께한 향나무 고목은 김소월의 시처럼 지금도 푸르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건물 앞에 있는 향나무 고목. 570년이 넘었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기념으로 받은 대왕참나무를 보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주변에는 두 그루의 고목이 더 있다. 박물관 건물 바로 아래 인도에 150년 정도 된 회화나무가 있다. 잎이 거의 나지 않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땅 위로 드러난 뿌리 부분의 색이 탈색된 것처럼 허옇다. 또 한 그루의 고목은 주한러시아대사관 안에 있다. 870년 넘은 회화나무다.

1883년 정동에 미국공사관이 들어서면서부터 영국공사관, 러시아공사관, 프랑스 공사관, 벨기에영사관 등이 자리 잡았고, 지금의 정동길은 이른바 ‘서양인촌’으로 불렸다. 배재고등학교 자리와 그 일대를 수렛골(차동)이라고 불렀다. 관청을 드나드는 사람을 태운 수레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다.

서소문로11길을 나와 서소문로 건너 경찰청 앞 교차로 쪽으로 걷는다. 중앙일보 사옥을 지나 주차장 시설 모퉁이에 소의문터를 알리는 푯돌이 있다. 현재 창덕여중, 이화여고, 주한러시아대사관 뒤쪽을 지나온 한양도성 성곽의 서소문(西小門)이 그 부근에 있었다. 돈의문(서대문)과 숭례문(남대문) 사이의 문이 서소문이었다.

경찰청 앞 교차로 횡단보도를 건너면 경의중앙선 철도 건널목이 나온다. 기차가 오갈 때면 차단기가 내려가고 사람과 차는 기다린다. 도심 한복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차단기가 올라가고 철로를 건너 도착한 곳은 서소문 역사공원이다. 조선시대 한양도성 서소문 밖인 이곳은 사형 터였다. 조선 후기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기도 했다. 장미꽃 피어난 공원을 지나 염천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손기정 체육공원 입구 정류장에서 내렸다.

손기정 체육공원은 손기정 선수가 다녔던 양정고등학교 자리에 만든 공원이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를 기념하기 위해 공원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당시 손기정 선수가 부상으로 받은 대왕참나무가 자라고있다.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수상자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데, 이 당시에는 미국이 원산지인 대왕참나무 잎이 달린 가지로 만든 관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상으로 대왕참나무 묘목을 받은 손기정 선수가 모교에 그 나무를 심은 것이다.

중구 만리동2가 손기정 체육공원에 있는 손기정상과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대왕참나무, 사진 오른쪽).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