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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원 가꾸기로 이웃 간 소통 ‘활짝’

10번째 정릉 마을정원축제 연 김경숙 정릉마실 대표

등록 : 2021-07-01 14:57
17년 전 개인 정원 조성…마을에 확산

재건축 반대 위해 2014년에 축제 시작

올해 정원 10곳 대문 열어 방문객 맞아

“꽃·정원 가꾸는 공개 프로그램 열 계획”

김경숙 정릉마실 대표가 6월9일 성북구 정릉동 교수단지에 있는 자신의 집 정원 벤치에서 직접 만든 목련차를 따르고 있다. 그는 정원을 가꾸며 재건축을 막기 위한 ‘정릉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중심적인 구실을 해왔고, 마을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 정릉마실을 꾸려왔다. 주민들 정원을 개방하는 정릉 마을정원축제를 올해 10회째 이어오고 있다.

성북구 ‘세계문화유산 정릉’ 마을버스 정류장에 내려 언덕길을 100m 정도 올라가다 왼쪽 ‘북악산 5길’로 접어들면 오밀조밀 모인 단독주택 단지를 만난다. 첫 번째 집 담장 경계석 화단부터 꽃길이 이어진다. 노란 양귀비가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린다. 좁은 언덕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이 예쁜 꽃들을 보며 절로 가벼워진다.

정릉 교수단지로 불리는 이곳은 1965년 서울대 교직원들이 땅을 사서 만들기 시작해, 현재의 모습은 1980년대 후반에 갖춰졌다. 이제는 서울 도심에 남은 몇 안 되는 100여 가구의 단독주택 마을이다. 저층 빌라 단지 300여 가구도 인근에 들어서 있다. 2008년 이후 재건축 바람이 몰아치며 여러 차례 언론에 소개됐지만 지난 3월, 13년 동안 끌어왔던 재건축 논란이 마침내 매듭을 지었다. 서울시가 정비구역 지정을 공식 해제했다.

6월9일 마을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 ‘정릉마실’의 김경숙(61) 대표 집을 찾았다. 그는 재건축을 막기 위한 ‘정릉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정사모)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대문엔 ‘도도화’라는 예쁜 나무 팻말이 붙어 있다. 대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150여 종 색색의 꽃들이 반갑게 맞는다. 20여 평 작은 정원엔 앙증맞은 도자기 소품들이 꽃들 사이 군데군데 놓여 있다. 목련 나무 아래엔 벤치가 있고, 옆 자그마한 옹달샘엔 물이 졸졸 흘렀다.


그는 17년 전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가까운 곳을 찾다가 우연히 이곳을 알게 돼 이사 왔다. 마당의 시멘트 콘크리트를 깨고 꽃과 나무를 심어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방에서 보이는 대문 위 공간에도 꽃을 심었다. 담장 경계석엔 작은 화단을 가꿨다. “처음엔 유별나게 보이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관심을 보이는 주민이 늘어나 다행이었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정릉 교수단지에서는 2014년부터 마을정원축제를 열고 있다.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이 있는 지역이고, 굳이 재건축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 만한 예쁜 동네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처음 2년은 마을만들기 지원사업으로 했다. 동네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꽃비빔밥, 차 등도 만들어 저렴하게 제공했다. 김 대표는 “첫해 반응이 너무 좋아 다음해엔 봄가을 두 번 열었는데 너무 힘들었다”며 “이후 봄 한 차례만 하면서 음악회, 전시회 등도 곁들여 풍성하게 진행해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정원축제를 열지 못했고, 올해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참여할 주민이 있을까 걱정도 됐다. 김 대표는 봄이 되자 조심스레 이웃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10가구가 흔쾌히 참여하겠다고 답신을 보냈다. 아프거나 이사한다는 등 참여하지 못하는 가구는 사정을 알려왔다. “꽃을 키우고 정원을 가꾸면서 서로 신뢰가 많이 쌓인 것 같다”고 김 대표가 말했다.

10번째 정원축제가 지난 5월14~15일 이틀 동안 열렸다. 개인정원 10곳(쌈지정원, 한평정원, 돌멩이들의 수다, 선이 머무는 집, 도도화, 하모니정원, 행복한 뜰, 매화향기, 목화향기, 금낭화뜰)이 대문을 활짝 열었다. 홍보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도, 방문객 200여 명이 방역수칙을 지켜가며 조심스레 둘러보고 갔다. 김 대표는 “재건축의 불안에서 벗어났고, 부대 행사 없이 정원 개방만 해 올해 축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열었다”고 했다.

처음에 집 개방을 걱정했던 주민들은 대문을 활짝 열면서 스스로 변해갔다. 한 주민은 40여 년간 살아온 집의 대문 양쪽을 처음 열고, 밖에서 본 자신의 집 정원을 보면서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축제를 보러 온 방문객들을 보면서 동네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지인들의 부러움도 많이 받았다. 김 대표는 “작은 정원 가꾸기를 함께 했더니 이웃 간 대화의 장이 열리고 힐링의 공간이 만들어졌다”며 “이게 바로 꽃의 힘”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더 많은 주민이 정원 가꾸기에 참여하고, 마을정원축제도 꾸준히 이어지길 바란다. 얼마 전엔 그의 아들 등 동네 주민 자녀들끼리 만나는 자리도 만들었다. 주민 평균 나이가 70대라 자녀들도 중장년이 많다. “젊은 세대가 동네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면, 우리는 뒤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동네에서 꽃을 키우고 정원을 가꾸는 공개 프로그램을 열어볼 계획이다. “예쁜 꽃도 시들면 다른 꽃에 자리를 내주는 자연의 순리를 접하면서 마음이 평안해지고 욕심도 덜어진다”며 “더 많은 이웃이 꽃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