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오아시스_넌지시 말 건네는 숟가락 이야기

레스토랑 오늘, 숟가락전

등록 : 2016-07-28 14:30
조성준, 심현석 작가가 옛 숟가락을 재현해 만든 작품.
어느 한식당에 들어서다 한쪽에 뭔가 진열해 둔 공간을 보았다. 소반 위에 참하게 올려 둔 숟가락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다. 공예품을 파는가 했더니 전시다. 갖가지 모양의 놋숟가락, 은숟가락이 즐비하고 모시를 편지 봉투처럼 접은 차분한 수저집도 있다. 설명을 읽고 이야기를 들을수록 흥미롭다.

올해 3월에 식당을 운영하는 재단에서 우리 음식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면면을 보여 주려고 한옥 방 한 칸 크기의 아담한 공간을 마련했다. 전시 기간이나 횟수, 작가군도 정해 놓지 않고, 우리 음식 문화와 관련된 수집품을 가지고 있거나 그와 관련된 작업을 하는 분들이 놀이하듯 참여하며 계절의 흐름에 따라 놓고 거둘 예정이다.

첫 전시에서는 패브릭 디자이너 장응복의 식사와 다과를 위한 병풍과 화첩을 선보였고, 이번 숟가락 전시는 문화기획자 최지은이 수집한 숟가락과 옛것을 참고해 작가들이 재현한 숟가락과 수저집, 그에 어우러지는 소반과 백자 그릇을 함께 놓았다. 숟가락은 납작한 놋수저부터 연봉, 버선, 매듭 등 장식이 달린 것, 머리가 네모진 것, 옻칠한 것 등 구색이 화려하다. 숟가락 끝에 찰랑거리는 귀고리 같은 링이 달린 것은 말차 탈 때 쓰고, 버섯 장식을 달아 멋을 낸 숟가락은 머리가 작다 싶었더니 차를 더는 용도다. 고려와 조선 초까지는 썼던 연봉 모양의 청동 숟가락도 있다.

숟가락을 구경하며 우리 집 것보다 납작하다 싶었는데, 이렇게 얕은 것이 본래 우리 식이라고 한다. 숟가락 바닥이 얕으면 한 번에 국물을 많이 뜰 수가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입에 닿는 감촉도 편하고 음식의 온도도 빨리 전해지며 그릇에 남은 국물을 남김없이 뜰 수 있다.

숟가락 활용기도 재밌다. 오래 써서 못 쓰게 된 숟가락은 사방을 갈아서 찻숟가락으로 쓰고, 끝이 닳고 얇아진 숟가락을 박 속을 파거나 감자나 생강 껍질을 벗길 때 썼다고 한다. 껍질을 벗길 때는 필러요, 된장 뚝배기에 감자 툭툭 삐져 넣을 때는 칼이요, 솥바닥 누룽지를 긁을 때는 스크래퍼다. 북어 보푸라기를 긁을 때도 길이 잘 든 헌 숟가락이 제격이라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들의 부뚜막에 오래된 숟가락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맞다. 옛날 살림은 지금처럼 요란하게 갖추지 않고도 잘도 흘러갔다.

전시는 숟가락 이야기를 ‘재다, 긁다, 비비다, 부치다, 뜨다’의 다섯 가지로 들려준다. 식당을 오가는 손님들에게 숟가락의 의미를 전하고픈 바람으로 기획했다는 전시는 적중한 듯하다.

그런데 이 흥미로운 전시를 떠들썩하게 알리지 않는다. 공간을 기획한 김선경 이사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손님들이 느끼면 감사할 따름이라고 한다. 마치 집으로 가는 골목에서 어느 집의 잘 가꾼 화초를 보는 일상의 풍요처럼, 요즘은 어느 카페에서 물건을, 김밥집에서 사진을, 어느 소품가게에서 꽃을 전시하곤 한다는데 이렇게 넌지시 다가오는 전시들은 말없이 속정 깊은 사람처럼 매력 있다. 글 사진 이나래

장소: 서빙고동 레스토랑 오늘 1층, 기간: 8월 25일까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