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쏙 과학

기후위기 시대 인사말 “포스, 아니 ‘광자’가 함께하길”

서울 과학 ⑭ 태양광 실증단지에서 배우는 아인슈타인 광자 가설

등록 : 2021-08-05 14:47
하늘에서 쏟아지는 에너지 알갱이를

효율적으로 그릇에 담아낼 수 있다면

땅속 석유·석탄 끌어낼 필요 없을 것


아인슈타인, 1905년 ‘광자 가설’ 제시

빛에너지→전기에너지 전환 기초 세워

광전자 잘 내놓는 실리콘 이용 ‘발전’



서울에너지공사, 태양광 제품 실증 중

무료 태양광 충전기, 충전되는 벤치 등

“12월까지 전력량, 효율 등 평가 계획”

태양광 신기술 실증단지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에너지공사의 발전동 전경.

하늘에서 에너지 알갱이가 밀가루처럼 쏟아진다면? 그걸 받아낼 그릇이 있다면? 굳이 땅속에 묻힌 에너지, 그러니까 석유나 석탄을 끌어낼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그런 ‘그릇’이 서울 공공시설 519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중 한 곳, 서울에너지공사로 이치를 배우러 갔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안겨준 광자(光子) 가설의 현장이 거기 있었다.

흐린 날이었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다. 오후 3시인데도 햇볕이 강하지 않았다. 모을 수 있는 태양광이 많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서울에너지공사의 친환경충전소, ‘솔라스테이션’에 있는 태양광 연계 완속 충전기엔 자리가 없었다. 이미 어떤 승용차가 충전 중이었다. 김철 서울에너지공사 에너지연구소장이 흰 컨테이너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저게 에너지저장장치예요. 덕분에 햇빛이 없어도, 미리 저장한 에너지로 밤에도 전기를 충전할 수 있어요. 태양광 충전기는 완속이라, 승용차 한 대를 완전히 충전하는 데에 8~9시간 걸립니다. 한전 전력을 쓰는 급속 충전기는 30~40분이면 충전을 끝내죠.”

태양광 전광판.

급속 충전기보다 충전시간이 16배 이상 길지만, 이곳의 태양광 충전기 앞은 비어 있는 날이 없다고 한다. 근처 주민들 수요만으로도 밤에도, 낮에도 늘 자리가 찬다. 한전충전기는 급속이지만 유료이고, 태양광 충전기는 완속이지만 무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곳에서 태양광 제품을 체험하기엔 전기차 ‘무료 충전’보다는 실증단지 ‘무료 견학’이 유용할 것이다. 견학은 서울에너지공사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태양광 실증단지엔 온갖 태양광 신제품들이 있었다. 솔라스테이션 뒤로는 알록달록한 태양광 패널 조각들을 입체적으로 두른 열병합발전소 건물이 보였다. 서울시가 설치비를 최대 80%까지 제공한다던 ‘건물 일체형 태양광 발전’, 즉 BIPV(Building Integrated Photovoltaic)일까? 김 소장은 고개를 저었다.

“헷갈리실 수 있어요. 저건 BAPV(Building Attached Photovoltaic)라고, 건물 부착형 태양광 발전 시설이에요. 건물 겉에 붙이는 것이라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어요. BIPV는 우리 공사 본관 건물에 설치한 것이에요. 대리석 외벽 대신 붙이는 것이라 쉽게 떼어내기 어려워요. 그래서 ‘일체형’이라고 불리죠.”

그는 단지에 설치된 다양한 제품을 소개했다. 태양광 패널로 만든 루버(창 가리개), 낮 동안 전기를 모아 저녁부터 불을 켜는 LED 전광판, 지붕 대신 태양광 패널을 얹은 정자와 주차장, 안팎으로 태양광 패널을 단 담장 등. 그중에서도 다채로운 색을 입은 태양광 방음벽은 투명 방음벽의 조류충돌 사고 문제를 해결할 친환경적 해법으로 보였다.

두세 명이 앉을 만한 벤치로 다가가서 김소장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올렸다. 액정화면 속 배터리 표시에 충전 중을 나타내는 번개 모양이 떴다. 태양광 패널로 만든 벤치였다. 벤치 다른 쪽 끝엔 노트북 충전기도 달려 있었다. 길가나 공원에 이런 벤치들이 놓여 있다면 배터리가 떨어져 급한 전화를 걸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겠다.

“올해 5월부터 여러 태양광 제품을 실증하고 있어요. 12월까지 전력량, 효율, 적용성, 심미성 등 다양한 요소를 평가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미관과 편의성을 중요하게 보고 있어요. 태양전지 기술이 도시, 특히 건축물과 어우러져야 넓게 보급될 수 있거든요. 불편하거나 보기 싫으면 시민들이 설치를 꺼리게 되니까요.”

제품들에 적용된 과학원리를 물었다. 김소장은 “태양광 발전은 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를 전환하는 과정”이라며 “그 전환은 광전(光電) 효과에 의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광전효과란, 일정 진동수 이상의 빛을 비추면 금속 등 물질의 표면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전자가 방출되면 전류를 일으킨다. 전기를 만들어낸다. 이 효과 덕분에 태양 빛이 실리콘 같은 물질을 만나면 전기로 전환되는 것이다.

서울에너지공사 솔라스테이션의 태양광 충전기(녹색)는 에너지저장장치(흰 컨테이너)에 태양광 에너지를 모아서 쓴다. 반원형으로 보이는 부분은 태양광 패널이다.

광전효과의 원리가 처음 밝혀진 건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논문에서였다. 무려 116년 전 일이다. 광전효과로 물질 속 전자를 튕겨내는 힘을 아인슈타인은 ‘에너지 양자’라고 표현했다. 양자(量子)란, 전기량 같은 물리량의 최소 단위다. 즉, 공처럼 에너지가 뭉쳐 있는 것, 그게 광자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광자를 우박에 비유한다. “빛은 마치 부드럽게 내리는 우박처럼 표면에 쏟아져 내리고 있는 것”이라며.

당구공으로 가득 찬 당구대를 떠올려보자. ‘로벨리의 우박’, 즉 광자들이 그 위로 쏟아진다. 큰 우박에 맞은 당구공들은 당구대 바깥으로 튀어나갈 것이다. 작은 우박은 당구공들 사이로 떨어질 것이다. 이때 큰 우박은 진동수가 큰 광자다. 무지갯빛 스펙트럼으로 치면 파란색, 보라색 계열의 빛이다. 당구공은 전자다. 광자에 맞아 당구대, 즉 물질 바깥으로 튕겨 나간 전자는 광전자(光電子)다.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났다고 ‘자유전자’라고도 불린다.

광자와 부딪혔을 때 광전자를 잘 내놓는 물질이 있다면? 당연히 그 물질은 태양광 전기를 더 쉽게 만들어낼 것이다. 실리콘, 즉 규소가 그런 물질이다. 규산염 등 암석 형태로 지각에 존재하는데 그 양이 산소 다음으로 많다. 김 소장은 “실리콘은 빛에너지가 낮더라도 쉽게 전자를 방출해 태양전지에 많이 쓰인다”며 “실증단지에 적용된 태양전지도 대부분 실리콘계”라고 설명했다. 실리콘계 일반 태양전지는 건물 옥상에서 20~25%의 효율을 낸다.

태양전지의 광전효과는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일까? 전력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오후 3시였던 7월 전력수요 최고점 시간대는 최근 오후 5시로 두 시간 늦춰졌다. 한창 냉방 전력이 많이 쓰일 시간에 다른 무언가가 전력수요를 해소했다는 뜻이다. 전력거래소 측은 자가태양광 등 실시간으로 계량되지 않는 발전량이 수요를 감축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광자의 영어, ‘포톤(photon)’의 어원은 그리스어 ‘포스(φῶς)’다. 빛이란 뜻이다. 기후위기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류라면 영화 ‘스타워즈’의 제다이처럼 인사를 나누자. ‘포스, 아니 광자가 항상 함께하길.’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참고자료: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초등과학백과>, <두산백과>

자문: 김철 서울에너지공사 에너지연구소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