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의 맛을 알면서 어른이 됐다
김작가의 해먹거나 사먹거나 타이식 돼지고기 요리
등록 : 2016-03-31 11:09
타이식 돼지고기 요리
이미 고수에 맛들인 형들과 쌀국숫집에 갔다. 형들은 따로 고수를 청해 넣으면서 나를 비웃듯 바라봤다. 넌 어른이 아니란 듯이. 사내들이란 때때로 이럴 때 승부욕을 부리곤 한다. 난 형들보다 정확하게 두 배 더 많은 고수를 쌀국수에 투하했다. 머리 감을 때 눈에 들어간 샴푸를 억지로 씻어내듯 육수와 숙주의 향을 압도하는 고수 냄새를 견디고 먹어치워 버렸다. 그 형들과 만나서 쌀국수를 먹을 때마다 반복했다. 나도 버젓한 어른이라는 듯이. 향이 강한 음식들의 공통점이 있다. 처음엔 곤혹스럽다가도 어느 순간 인이 박인다. 홍어 마니아들이 ‘ㅎ’ 자만 들어도 침을 흘리듯 고수에 인이 박이고 나니 그 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맛이 감돌게 됐다. 쌀국숫집, 정통 중국요릿집을 갈 때마다 산더미처럼 고수를 쌓아올린 후 일행들의 경외스러워하는 눈빛을 즐기게 된 것이다. “이래야 음식 맛이 확 살아”라는 멘트를 날리며. 얼마 전 방콕을 다녀왔다. 꼭 10년 만의 방문이었다. 어쩌다가 한국 관광객들이 주로 다니는 식당에 갔다. 팟타이에도, c얌꿍에도 고수가 없었다. 방콕까지 와서 이렇게 밍밍한 타이 음식을 먹게 되다니, 실망스러웠다. 이 식당 주인은 하도 한국 관광객들의 “마이 사이 팍치” “노 팍치”에 시달려 아예 레시피에서 고수를 빼버렸으리라. 어쩌면 그래서 한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식당이 되었으리라. 그렇게 짐작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짜오프라야 강변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돼지고기 요리(사진)였다. 저온 조리한 삼겹 부위를 튀겨 낸 후 으깬 호박과 레몬그라스, 그리고 고수와 함께 먹었다.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러웠다. 석양이 아름다웠다. 강 건너 왓 아룬의 황금빛 조명이 고수의 향과 어우러졌다. 고수의 맛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타이를 온전히 즐기게 된 기분이었다. 글 사진 김작가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