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처럼 시공간을 초월한다면? 단번에 50년을 거슬러 과거의 서울을 여행할 수 있다면?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서울 중구에선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1970~1980년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거리, 을지로가 있기 때문이다.
을지로는 서울 시청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까지 직선으로 뻗어 나간 길이다.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건 1만 개의 제조업체. 600㎡ 남짓한 면적에 공구·조명·타일도기·인쇄 가게가 빼곡히 들어서있다. 1960~1970년대 도시개발 붐과 함께 성장해 그 자릴 지켜왔다. 시멘트벽을 마주댄 키 작은 가게들, 슬레이트 지붕과 철제 미닫이문, 비좁은 골목을 오가는 삼발이 지게차까지….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이처럼 ‘오래된 거리’ 을지로에 ‘힙지로’의 바람을 일으킨 건 다름 아닌 청년들이다. 저렴한 임대료, 높은 접근성, 풍족한 공실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을지로는 젊은이들을 끌어당겼고, 이들은 을지로 곳곳에 전시·예술·와인과 같은 젊은 취향의 문화를 심었다.
이 중에서도 청년 예술가는 ‘힙지로’를 개척한 선봉장이다. 재료를 구매하거나 기술적 도움을 받고자 을지로를 즐겨 찾던 예술가들이 아예 작업공간까지 마련하면서 힙지로가 시작됐다. 구청에서도 이들의 정착을 도왔다. 지역 예술가를 위한 전시·유통채널을 직접 마련한 것이다.
대표 사례가 매년 10월마다 을지트윈타워에서 열리는 을지아트페어다. 신진작가를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전시하고 대중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출품된 모든 작품은 한 점당 10만원에 판매한다. 미술작품의 구매 장벽을 낮춘다는 취지인데 호응이 좋아 첫해에는 출품작의 80% 이상이 팔렸다.
상설전시공간 을지예술센터도 있다. 지난해 9월 중구청과 중구문화재단이 힘을 합쳐 문을 열었다. 공장 건물을 지역예술가의 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곳에선 ‘을지드라마’ ‘을지산수’ 등 다양한 무료전시를 수시로 개최한다.
때론 을지로 전체를 전시공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을지공공예술제를 통해서다. 해마다 10~11월에 산림동 일대 전체를 도화지 삼아 진행되는 전시다. 지난해에는 을지로의 낮과 밤을 주제로 ‘을지판타지아전’을 열었다. 을지로 거리와 건물 외벽 등 곳곳에서 설치·시각예술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10월까지 기다리기 어렵다면 ‘을지로 셔터갤러리’를 찾으면 된다. 매일 저녁 6시, 을지로 상점이 셔터를 내리면 펼쳐지는 거리 위 미술관이다. 지난해 여름 구청과 신한카드가 작가 5명과 상점 24곳을 섭외했고, 작가들은 가게 주인이 내준 셔터 43칸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다. 분홍, 노랑, 파랑 등 선명한 색상의 페인트를 활용해 감각적으로 그려낸 을지로의 이야기가 셔터 위에 담겨 있다.
을지로 소공인과 디자이너의 협업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곳도 있다. 을지로 예술공장이다. 대림상가 3층 동쪽 데크에 자리한 을지로 예술공장은 2019년 구청이 도심제조업체와 지역예술가의 협업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25.6㎡의 작은 공간이지만 현재 42점의 작품이 전시돼 각자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방문하면 조명, 회화 등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다. 을지로 예술공장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운영되며 평일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 토요일은 저녁 6시까지 문을 연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고 싶다면 을지로를 방문해 예술의 바다에 빠져보길 추천한다.
박혜정 중구 홍보전산과 언론팀 주무관, 사진 중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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