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엄마의 베를린살이
장마를 잊으니 여름도 잊혔다
등록 : 2016-08-04 14:08 수정 : 2016-08-05 10:15
여름 바닷가에서 물놀이에 열중한 쌍둥이 아들.
시간은 쏜살같다. 그로부터 20년, 막내는 정말 커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고, 비록 수영장은 만들지 못했지만 이제는 엄마도 동생들도 장맛비에 밤을 지새우지는 않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는 이곳 독일에서 오랜 시간 장마를 잊고 살고 있다. 가족 중에서도 유별나게 여름을 싫어했던 나는 소원대로 한여름에도 스웨터와 목도리를 옷장에 넣어 두지 못하고 20년을 살았다.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장마를 잊고 살다 보니 여름을 잊고 살았다. 장맛비가 걷히면 우렁찬 매미 소리에 아버지의 서재가 말라갔다. 그 소리를 들으며 먹던 수박이며 참외는 꿀맛이었다. 작은 게들과 조개들이 놀던 해변이며 포근한 바다, 할머니 댁 평상 위 선풍기와 낮잠, 그리고 잠자리 또 방아깨비…. 내가 여름이라 일렀던 그 모든 것들이 장마와 무더위를 견뎌내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와 날씨 변화가 심해지고 있는 요즘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20년이 흐른 뒤에 우리는 무엇을 추억하게 될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그리워하게 될 그 무엇인가는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이라는 사실이다. 옷걸이에 걸린 스웨터가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이제 창문을 닫아야겠다. 글ㆍ사진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