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에 시작해 애초 2월에 끝나려던 전시가 5월까지 연장되었다. 안규철 작가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전. 이미 에스엔에스(SNS) 등에서 화제가 된 안규철 작가의 작품 ‘1000명의 책’이 궁금하던 어느 휴일, 나들이 겸 미술관에 들렀다. 굳이 나들이라고 할 만한 것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카페나 공원처럼 들러 놀 수 있는 장소다. 담도 없고, 주 출입구로 내세운 문도 없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고, 무엇보다 뒷마당, 앞마당, 지층의 중정 등 마당이 여러 개 있어 마음이 느긋해진다.
전시는 ‘아홉 마리 금붕어’라는 둥근 연못으로 시작된다. 동심원으로 담을 쌓은 연못의 금붕어들은 열심히 헤엄쳐도 다른 물고기들과 마주치지 못한다. 고립, 고독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지만 생활자의 눈에는 연못의 푸른 물빛과 금붕어의 활기찬 주황빛이 먼저 다가온다. 계단을 오르니 ‘1000명의 책’이 진행되는 필사의 방이 보인다. ‘1000명의 책’은 사전에 신청한 천여명의 관객들이 연이어서 국내외 문학작품을 필사하는 프로젝트이다. 책상과 걸상, 탁상 램프가 놓인 단출한 공간이 고요를 전한다. ‘식물의 시간 Ⅱ’는 수평과 수직의 움직임에 관한 작품으로 천장에 주렁주렁 달린 화분들이 요즘 유행하는 인테리어의 모습이다. 봄이 한창인 때, 집에 꽃송이 흐드러지는 화분을 매달아볼까 싶다. 그 앞으로 벽면 가득 메모지가 붙어 있다. 이 ‘기억의 벽’이라는 작품에는 ‘엄마’, ‘20대’, ‘진심’, ‘2층 침대’ 등 무슨 의미일까 싶은 단어들이 적혀 있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관객들이 적은 답이라고 한다. 나도 모르게 작가의 질문을 되뇌어본다. 무엇이 가장 그리운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전시실 밖 복도에서 작가의 인터뷰 영상을 보며 비로소 작품 속 ‘손글씨 쓰기’에 대한 가닥이 잡힌다. 그는 아침마다 무슨 일이 되었든 노트에 기록하는데 그때야말로 아티스트로서 깨어 있는 시간이며, 어떤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풀어내는 과정이 중요한 작업의 출발점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손글씨 쓰기’라는 행위가 관객들에게 특별한 체험이 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맞다! 글씨를 쓰는 것은 산책이나 바느질과 비슷하다. 있었던 일, 할 일, 감정 등 내 속의 것을 적어 내려가며 어느새 고요해지지 않았던가. 심지어 장 볼 목록을 적는 행위만으로 분주한 일상이 한풀 정리된다. 소설을 펼치고 1시간씩 쓰다 보면 세상의 소음과 내 안의 소란이 잠재워질 것이다. ‘1000명의 책’ 4월의 참여는 매진되었고, 5월 필사는 4월1일부터 신청을 받는다고 한다. 전시를 보고 벤치에 앉아 그리운 것에 대해 끄적거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5월22일까지.
이나래 생활칼럼니스트, 사진 현대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