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짐은 숲 가꾸기 같은 가벼운 활동으로 몸과 정신 건강을 돌보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생명의숲은 2017년 영국 자원봉사연합의 라이선스를 도입해 남산 등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올해는 성미산에서 녹색서울실천 공모사업으로 10월 말까지 운영한다. 그린짐 리더 윤수연씨가 참여자들에게 교란종 ‘서양등골나물’ 뽑는 방법을 알려준다
㈔생명의숲, 주민참여 도시숲 가꾸기 프로그램 ‘그린짐’ 운영
나뭇가지와 손도구 등 활용, 숲 새롭게 경험하는 기회 제공
‘쓱싹쓱싹, 뚝딱뚝딱, 땅땅.’
10월7일 오후 마포구 성미산에서 톱질 소리, 망치질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하하호호’ 웃음소리도 떠다닌다. 주민 참여 도시숲 가꾸기 프로그램 ‘그린짐’ 참여자들이다. 초록색 조끼를 입은 10여 명이 두세 명씩 짝지어 차폐식물 사이에 난 샛길 세 곳에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리더 이화연씨가 울타리 시안을 보여주며 만드는 법을 설명한다.
그린짐은 1997년 영국 자원봉사연합(TCV)이 고안한 숲 가꾸기 체험 프로그램이다. 숲 가꾸기 같은 가벼운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 완화, 비만 같은 성인병 개선, 우울 증상 완화 등의 건강을 돌보게 하자는 취지다.
사단법인 생명의숲은 2017년 그린짐 라이선스를 도입해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올해는 녹색서울시민위원회의 녹색서울실천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성미산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날의 도시숲 가꾸기 프로그램 진행은 그린짐 리더 두 명과 스태프 한 명(윤수연, 이화연, 이정현)이 맡았다. 참여자는 청년예술인 네 명과 생명의숲 활동가 네 명이다. 연극하는 강다형씨, 그림을 그리는 황진주씨, 마술하는 최효원씨,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박혜린씨는 모두 그린짐에 처음 참여했다. 강씨는 “연극 세트 만들 때 톱질해봐서 그런지 별로 어렵지 않고 숲속에서 활동하니 기분이 좋다”고 했다. 황씨는 “숲에서 머리를 비우고 몸을 쓰면서 활동하는 게 참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생명의숲 활동가 김현정·박승혜씨, 시민활동가 유진우·조은지씨는 “직접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밌다”고 입모아 말했다.
박혜린씨가 샛길을 막는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
참여자들은 오후 2시 성산동 성산근린공원 입구에 모여 초록 조끼를 입고 이름표를 달았다. 리더 윤수연씨가 그린짐 프로그램을 소개한 뒤 참여자들은 사전 조사지 3장을 작성했다. 신체활동 준비상태 질문지, 긍정적·부정적 정서 척도(파나스, PANAS) 검사지, 회복환경 지각척도(피아르에스, PRS) 검사지다. 파나스는 긍정적·부정적 마음 상태를 파악하는 심리검사지고, 피아르에스는 얼마큼 스트레스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묻는 검사지다.
두 검사는 그린짐 활동을 한 뒤 참여자들의 정서적 변화를 보기 위한 것이다.
활동 공간으로 이동하기 전 작업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전반부엔 울타리를 설치한다. 윤씨는 “사람들이 오가면 땅이 딱딱해져 나중에 식물을 심어도 잘 자라지 않는다”며 “다니면 안 되는 길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울타리를 친다”고 설명했다. 이정현씨가 “샛길이 많아지면 녹지 공간은 흩어지고 쪼개진다”고 덧붙였다.
유진우·조은지씨가 나무 막대를 자르기 위해 톱질하고 있다.
성미산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리더들이 나무 막대 등으로 울타리 만드는 방법을 보여줬다. 장비를 안전하게 쓰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리더 이화연씨는 “천천히 즐기며 나의 건강을 생각하고 숲의 건강을 되살리는 활동이다”라며 “힘들지 않게 다치지 않게 하고, 하다가 언제든 쉬어도 된다”고 말했다.
참여자들은 산에 돌아다니는 나무 막대를 모아 톱과 전지가위로 잘랐다. 구멍 낸 땅에 길이를 맞춘 막대 3개를 망치로 박아 지지대로 만든 다음, 지지대 사이에 나뭇가지를 채워 넣었다. 30분 만에 제법 그럴싸한 울타리 모양이 나왔다.
휴식 시간엔 공원 입구로 와서 냉녹차를 마셨다. 앙증맞은 작은 나무잔에 녹차의 향긋한 향이 가득했다. 서로 다른 팀의 울타리에 칭찬을 곁들였다. “예술인이 만든 거라 울타리가 멋져요.” “활동가들이라 그런지 손이 빠른 것 같아요.” “생각보다 더 잘 만들었어요.”
황진주씨가 활동 뒤 정서적인 변화를 보기 위한 검사지를 작성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쉽게 계획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활동 지향”
울타리 치기, 교란종 뽑기, 꽃 심기 등
녹지 공간에서 야외 신체 활동 더해
스트레스 완화, 건강 개선 효과 기대
리더들이 후반부 작업을 안내했다. 탁자에 놓인 순백색의 꽃을 들어 설명했다. 서양등 골나물인데 환경부 지정 유해종이란다. 번식력이 강해 숲 안 깊숙이 침입해 자생식물의 고유한 생태계를 위협한다. 서양등골나물의 흰색 꽃은 가을이면 도시 숲과 공터를 채운다. 성미산 곳곳에서 눈에 띄었는데 군락을 이룬 곳도 보였다. 윤수연씨는 “예쁘지만 뽑아줘야 한다”며 “호미를 써 뿌리를 살살 흔들어 뽑고 흙은 털어주며, 뽑은 건 쓰레기 봉지에 모아 버린다”고 알려줬다. 참여자들은 경사진 곳을 오가며 뽑은 서양등골나물 다발을 접어 쓰레기 봉지에 넣었다. 20여 분 만에 50L 봉지가 가득 찼다.
150분의 활동을 모두 마무리하고 참여자들은 다시 공원 입구에 모였다. 사후 검사지 2장(긍정·부정 정서척도, 회복환경 지각척도)을 작성하고 마무리 운동을 5분 정도 했다.
빙 둘러서 활동 소감도 나눴다. 박혜린씨는 “벌레를 무서워해 걱정했는데 다행히 지렁이 한 마리만 봤다(웃음)”며 “손으로 만드는 활동을 좋아해 재미있었다”고 했다. 최효원씨는 “흙냄새, 풀 냄새를 맡으며 활동해 좋았다”며 “쉬엄쉬엄하라고 해 더 좋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리더인 윤수연씨는 “첫 리더 활동이라 긴장했는데 여러분이 알아서 잘해줘 고맙고,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성미산 지도 펼침막을 보여주며 작업 위치, 활동 내용을 정리했다. “재밌게 참여하고 자발적으로 목표보다 더 많이 해줘 칭찬해주고 싶다”며 “동네 산과 숲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존 숲가꾸기 활동이 대개 목표량에 맞춰 진행되지만 그린짐은 참여자들이 하고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편하게 즐기면서한다. 이날 활동에서도 리더들은 “여러분 힘들게 하지 마시고 중간중간 (허리를 펴) 하늘을 봐주세요”라고 자주 말했다. 강다형씨는 “열심히 하면 혼나는 건가요(웃음)”라고 농담 섞인 말을 던지기도 했다.
그린짐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에게 신체적,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이날 참여자들의 긍정적 정서는 그린짐 활동 시작 때보다 평균값이 0.48점 증가했고, 회복환경지각 평균값은 0.57점 높아졌다.
성미산 공모사업 운영자인 이정현씨는 “평가 대상자 수가 적어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연구에서 이미 신체적,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했다. “앞으로 그린짐 활동에서 신체적 변화, 자존감 향상 정도 등도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린짐 활동에서 사용할 준비물인 조끼, 옷 보호용 토시, 장갑, 전지가위, 망치, 호미, 손톱. 정용일 선임기자
10월 말로 마무리하는 성미산 공모사업은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7차례 열어 물길내기, 교란종 제거, 울타리 치기, 쓰레기 줍기, 우리 꽃 심기, 계곡 만들기 등의 활동을 펼쳤다. 그동안 그린짐 리더로 주민 5명을 포함해 40여 명을 양성했다.
생명의숲은 지역 주민들이 리더 교육을 받아 그린짐 프로그램을 주민 활동으로 퍼뜨려가길 기대했다. 이정현씨는 “리더들이 동네 산과 숲, 나아가 지역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데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했다. 성미산이야기로 두 권의 책을 쓰고 그린짐 활동 자문을 맡은 이민형 채비움 서당 훈장은 “그린짐이 도심의 작은 산을 살리는 시민 참여 모델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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