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6일 광진구 광장동 환경 북카페 ‘책방열음’에서 황승용 와이퍼스 대표가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에 실린 와이퍼스 활동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와이퍼스는 쓰레기를 주우며 조깅하는 ‘플로깅’ 실천 시민모임이다. 황대표는 지난 9월 지속가능발전대상 우수사례 시민부문에서 환경부장관상을 받았다.
9년차 직장인, 플로깅 모임 꾸려 실천
1년여 만에 회원 500명, 60여 회 활동
쓰레기 줍기에서 줄이기·없애기로 넓혀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돕는 앱 개발 중”
“간절하게 받고 싶었던 상이라 더 기뻤어요.”
올해 환경부가 주최하는 지속가능발전대상 우수사례 시민부문에서 황승용(35) 와이퍼스 대표는 1등 상을 받았다. 와이퍼스는 쓰레기를 주우며 조깅을 하는 ‘플로깅’ 실천 시민모임이다. 자동차 유리를 닦는 와이퍼처럼 지구를 닦겠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회원들은 서로를 ‘닦원’, 대표는 ‘닦장’이라 부른다.
와이퍼스는 전국의 10대부터 60대까지 하는 일도 다양한 평범한 시민들이 모여 일상 속에서 쓰레기 줍기 등의 환경 정화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해 3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4명이 모여 시작했다. 현재는 참여자가 500여 명에 이른다. 1년6개월 동안 약 60회 활동했다. 플로깅을 40여 회 하고, 나무 심기 등을 했다. ‘꽁초어택’ 등 캠페인도 하고 제로웨이스트, 비건 지향 등 한 걸음 더 나아간 활동으로 이어왔다. 티브이, 라디오, 신문 등에 40여 회 소개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0월6일 광진구 광장동 환경 북카페 ‘책방열음’에서 황 대표를 만났다. 그는 9월30일 시상식에서 받은 상장을 보여주며 ‘왜 간절했는지’에 대해 말했다. 먼저 보상을 바라지 않는 선하고 순수한 에너지로 함께해준 닦원들에게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황승용 와이퍼스 대표가 환경부장관상 상장을 들고 있는 모습.
와이퍼스에는 재능기부, 물품 후원 등도 있지만, 연간 400만~500만원 정도는 대표의 사비가 지출된다. 주로 회원들을 위한 리워드(보상) 물품 구매와 택배, 교통비 등에 쓰인다. 상금을 활용하려 지난해 10여 차례 공모전에 지원했는데 거의 다 떨어졌다. ‘활동 방향이 잘못된 건가’ 하는 불안감도 들어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단다.
다행히 올해는 공모전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받았다. 서울시엔피오(NPO)지원센터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사업에도 선정됐다. 지속가능발전대상 상금까지 해서 거의 1천만원의 활동비를 마련했다.
우수사례 시민부문 1등인 환경부장관상을 꼭 받고 싶었던 데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담배꽁초에 대한 환경부의 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와이퍼스 회원들의 손편지를 장관에게 직접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지난 9월15일부터 보름 동안 5살 아이부터 60대 어르신 약 180명이 캠페인에 참여했다. 시상식 한 주 전 열린 환경부와 강북구의 ‘담배꽁초 회수·재활용 시범사업’ 업무 협약식에 초대돼 손편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황 대표 집에는 지금도 전국에서 보내온 상자 12개가 쌓여 있다. 상자 속엔 3만여 개의 담배꽁초가 담겼다. 그간 여러 방법으로 케이티앤지에 연락해봤지만, 성의 없는 답만 들었다. 담배협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엔 ‘마음을 담은 꽁초 선물’이란 이름으로 케이티앤지에 보내려 한다. “올해 목표 가운데 남은 하나는 담배회사의 사과를 받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현재 중견기업의 경영지원 부서에서 일하는 9년차 직장인이다. 2019년 티브이 방송의 환경다큐멘터리에서 본 코에 빨대가 꽂힌 거북이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8살짜리 아이가 리사이클센터를 만들어 활동하는 모습은 서른이 넘은 그를 부끄럽게 했다. ‘이대로 그냥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주변 쓰레기 줍기에 나섰다. 플로깅이라는 말도 몰랐던 때였고, 그냥 쓰레기를 주우며 하는 마라톤 대회를 나가보고, 그런 활동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관심 보이는 사람들과 와이퍼스를 만들었다.
황 대표는 와이퍼스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친환경 활동을 이어왔다. 회사 안에서 일회용품을 줄이자고 게시판, 정수기에도 안내문을 붙여놨다. 자신도 사무실에 붙여놨다고 응원하는 동료들도 생겼다. 팀원들과 머그잔을 사용하고, 음식을 배달하더라도 개인 식기를 쓴다. “주위에 선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회사 사보에도 2번이나 그의 친환경 활동이 소개됐다. 이번 수상 내용도 실리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그의 친환경 활동을 담은 책이 연말이나 내년 초쯤 나올 예정이다. <황대리의 좌충우돌 지구닦기>(가제)에 그는 와이퍼스 회원들과 ‘호구와트’를 만들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와이퍼스가 거절 못 하고 손해 보는 ‘호구’지만 서로 양보하며 선한 영향력을 퍼뜨려 함께 살아가는 닦원들에게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의 마법학교 호그와트처럼 재밌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현재 황 대표의 머릿속에 중요하게 자리 잡은 세 가지가 있다. 누구든 손쉽게 환경활동을 시작해 지속해갈 수 있게 돕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운영하는 게 그중 하나다. 와이퍼스가 공신력을 갖게 사단법인으로 만들어가기와 착한 가게들과 연계해 활동을 이어가기가 나머지 것들이다.
와이퍼스의 가장 중요한 콘셉트는 ‘환경을 위한 활동은 어렵지 않고 누구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 대표는 “와이퍼스가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주고, 이들이 잘 어우러져 부담 없이 즐겁게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돕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글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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