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시니어 일자리 월급 모아 여행 갈래요”
구로시니어클럽 운영 ‘피자스쿨’ 구로항동점에서 근무하는 민점옥·장정오씨
등록 : 2021-10-21 14:57
장정오(왼쪽)씨와 민점옥씨가 14일 피자스쿨 구로항동점에서 자신들이 직접 만든 피자를 포장해 들어 보이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처음에는 긴장을 많이 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만들었죠. 한 달 정도 지나니 알 것 같더라구요.” 일한 지 한 달 반가량 된 민씨는 이제 웬만한 피자는 모두 만들 수 있다. 민씨는 “메뉴가 다양해서 헷갈리기도 하고 주문받으면 긴장되지만, 만드는 순서가 정해져 있고 매뉴얼을 보면서 만들기 때문에 큰 걱정이 없다”고 했다. “첫날 와서 한 판 만들었어요. 오늘이 두 번째 출근이죠.” 민씨와 달리 장씨는 이제 피자 만드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이날 민씨와 함께 피자를 만드는 중에도 홍서웅 매니저(구로시니어클럽 사회복지사)가 장씨에게 피자 만드는 단계마다 상세한 요령을 설명했다. 민씨는 9월 초, 장씨는 10월부터 ‘피자스쿨’에서 일한다. 민씨는 7년 전까지 신림동에서 분식과 족발 가게를 운영했고, 장씨는 틈틈이 아르바이트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전업주부로 지냈다. “일하다가 그만두고 난 뒤 너무 놀아도 되나 싶었죠. 일을 찾으러 다니다 집과 가까워서 오게 됐어요.” 두 사람 모두 집에만 있다가 구로시니어클럽을 통해 일자리를 얻었다. 민씨는 “너무 노는 것 아닌가 싶어서 일자리를 찾았는데, 마침 피자 가게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얼른 신청했다”고 했다. 장씨도 집에만 있는 게 너무 무료해 일자리를 찾았다. 장씨는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밖에 잘 나가지도 못하고 힘들었는데 이런 일자리가 생겨 너무 좋다”고 했다. 민씨와 장씨는 가족 모두 피자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응원한다고 했다. 장씨는 “남편이 처음에는 할 수 있겠냐며 염려했지만, 이제는 잘한 것 같다고 한다”고 했다. 민씨도 “응원해주는 아들에게 피자 한 판을 사줬다”며 “엄마가 만든 피자라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고 웃었다. “젊었을 때보다 더 보람 있죠. 장사할 때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지만 느낌도 다르고 더 소중해요.” 민씨는 7년 만에 월급을 받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는 “첫 월급을 받고 너무 기분이 좋았다”며 “여행을 가거나 필요할 때 보태 쓰려고 월급을 쓰지 않고 꼬박꼬박 모으고 있다”고 했다. 구로구는 60살 이상 고령자들을 위한 일자리를 확장해 ‘인생 2막’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구로시니어클럽을 통해 공익활동형, 사회서비스형, 취업알선형, 시장형 등 4개 분야에서 다양한 일자리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피자스쿨은 시장형 일자리로, 수익금으로 급여 등을 지급한다. 구로구 시니어 일자리는 고령자들에게 경제적 자립뿐만 아니라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가리봉동 ‘윙윙센터 어르신 작업장’에는 드림나눔 공동작업장과 ‘인(IN) 담아드림’ 사업장이 있다. 드림나눔 공동작업장에서는 쇼핑백을 제작하고, 인 담아드림에서는 10명의 주민이 다과와 샐러드 도시락을 만들어 판매한다. 오류동에서는 꽃송이버섯도 재배하며 편의점 두 곳 근무자도 모두 60살 이상 고령자다. 구로구는 앞으로 시니어 일자리를 더욱 확장해갈 계획이다. 민씨와 장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 계속 일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젊었을 때는 밖으로 나와 사람들도 자주 만나 심심하지 않았지만, 나이 들면서 집에만 있다보니 너무 무료하고 힘들어서다. 하지만 피자 가게를 다니면서 친구도 사귀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얘기도 나눌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두 사람은 “오늘 서로 처음 만났지만 처지도 비슷해 앞으로 친하게 지내면서 무료함도 달래겠다”고 했다. 장씨는 앞으로 시니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주기를 바랐다. “집에만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서 일하면 좋잖아요. 하지만 일자리가 부족한 게 문제죠.” 장씨는 “여기저기서 시니어 일자리를 만들고 있지만 일하려는 사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경쟁이 치열하다”며 “좀더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