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동네 건달’ 입방아 딛고 ‘동네활동가’로 성큼
‘서울시 우리동네 행복한 골목만들기 사업’ 추진 김정호 씨
등록 : 2016-08-04 17:55 수정 : 2016-08-05 09:51
지난달 26일 오전 안평초등학교 학생 넷과 마을활동가 김정호(39) 씨가 통학로를 따라가며 안전을 위협하는 장애물을 사진에 담고 있다.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김 씨는 “도시계획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커뮤니티를 조직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빠가 되면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터에서 방전돼 삶터에서 무기력한 내 모습을 확인하면서 삶의 균형을 찾고 싶었어요. 다른 공간과 먼 미래가 아닌 현재의 내 삶터, 아이를 키우는 마을에서 말입니다.” 김 씨가 동네에 기여하는 여유 있는 삶을 희망하게 된 계기다. “좋은 아빠의 조건은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아이와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일상에 등장하는 친구 이름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이집에 부탁해 반 친구들 사진과 이름을 출력해 식탁에 붙였지만, 잘 외워지지 않더라고요.” 아이와 함께하는 놀이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김 씨는 2012년 서울시 부모 커뮤니티 사업 공모에 참여했다. ‘마을이 고향이다’가 주제였다. “아이들에게 어린이집 친구에서 동네 친구로 함께 성장하는 친구와 함께하는, 추억이 살아 있는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공모전에 나서게 된 이유다. “사업이 선정되고 열다섯 가족이 참여해 ‘장한가족들’ 커뮤니티가 탄생했어요.” 김 씨는 이들과 함께 수요 동네 놀이터 마실가기, 아빠와 요리 체험, 부모 인문학 강의 등 다양한 놀이와 체험을 함께했다. 올해 공모한 ‘우리 동네 행복 골목 만들기'도 동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집과 학교를 오가는 길목만이라도 편안하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면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을까 싶었다.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건 사실 불가능하잖아요. 차라리 아이들이 닥치게 될 위험에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지요.” 아이들은 김 씨의 바람대로 이틀간의 워크숍을 통해 통학로의 위험 요소를 스스로 배우고 대처 요령도 만들어냈다. 김 씨는 마을활동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도 열심이다. 기록이 있어야 다른 누군가가 비슷한 일을 할 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일을 지속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2014년 <장안마을 장한가족들 이야기>로 시작한 마을공동체 잡지는 지금은 동대문구 부모 커뮤니티 연합의 이야기를 다루는 연간지 <동그랗게>로 성장했다. 사람 사는 마을살이의 재미를 두루 다루는 잡지의 틀도 갖췄다. 작은 일에서 시작하는 네트워크가 큰 힘 이렇게 조금씩 마을공동체를 향해 발길을 재촉하는 김 씨도 처음부터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자영업자, 동네 백수 등 시간적인 여유가 많은 사람이라는 입방아에 오르내렸어요. 단지 아이들과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 건데 편견이 생기더라고요. 엄마들이 저를 신뢰하고 마음을 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지요.” 지금은 색안경을 쓰고 보는 시선보다는 신뢰를 갖고 도움을 주는 주민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김 씨는 마을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네트워크이며 그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지만 공동의 일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장안동 스크린 경륜장 확장 반대 서명 운동을 경험하면서 네트워크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때 쑥쑥 자란다는 사실을 체득했어요.” 김 씨는 서명 10일 만에 2349명의 서명을 받은 일을 계기로 장평중학교, 군자초등학교, 안평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가 참여하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경험을 들려주었다. 네트워크가 만들어지자 활동은 쉽게 공유됐고 공유는 마을을 변화시키는 더 큰 힘을 만드는 기반이 됐다. 2년 전부터 도시연대에서 발행하는 <걷고 싶은 도시>에 연재하는 ‘아빠와 만드는 마을만들기’ 글을 모아 책으로 출간할 준비도 하고 있다. 박용태 기자 gangto@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