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구가 지난해부터 15개 전 동의 범죄예방 환경 디자인(CPTED·셉테드) 적용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구는 민선 7기 공약 ‘범죄 걱정 없는 광진구 만들기’ 이행으로 생활밀착 안전사업을 벌였다. 자양4동 등 오래된 다가구·다세대 주택이 많은 동네부터 시작해 내년 말 마무리할 계획이다.
11월25일 자양4동 통합초소 앞에서 내외국인 자율방범 대장들과 대원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내국인 자율방범대의 엄기한 대장, 외국인 자율방범대의 이군철 대장, 전영남 대원.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범죄예방 치안환경 구축사업 본격 추진 3년째 큰 성과
내년 완료 목표, 15개 전 동 생활안심디자인 적용 중
2020년 2월 김선갑 광진구청장이 자양4동 영동교 골목시장을 찾아 주민 의견을 듣고 있다.
광진구 제공
광진구 자양4동 양꼬치 거리 뒤편 골목길로 들어서면 군데군데 밝은색을 입힌 대문이 눈에 들어온다. 대문 오른쪽엔 태양광 엘이디(LED) 조명에 주소 명판과 우체통이 함께 있는 ‘웰컴월’이 걸려 있다. “골목길이 깔끔해져 제가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녀요.” 11월25일 유혜숙(56) 자양4동 8통 통장을 만난 한 주민이 인사말을 건넸다.
광진구는 지난해부터 15개 전 동의 범죄예방 환경 디자인(CPTED·셉테드) 적용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자양4동처럼 오래된 다가구·다세대 주택이 많은 동네부터 시작했다. 자양4동 8, 9, 10통 골목길은 낡은 주택에 남색, 회색 등의 대문 색상으로 더 어두워 보였다. 이전엔 절도나 폭력 등의 범죄도 제법 있었고, 술 취해 큰 소리로 싸우는 듯한 소리도 자주 들렸단다. 당연히 늦은 밤에 다니기 불안해하는 주민이 많았다.
중국인 주민들을위해 생활계도 메시지와 행정정보 안내를 담아 설치한 정보무늬(QR코드) 접목 사인물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구는 6월에 사전 설문조사를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모임이 어려워 통장들이 주민 의견을 모으고 시설물 설치 동의서를 받았다. 7월 주민설명회에서 어느 골목이 더 어두운지, 무단투기가 더 심한지 등 얘기를 나누고 ‘두려움 지도’를 만들었다. 이를 토대로 구가 사업을 추진했다.
신청 가구 60여 곳에 대문 색칠부터 시작했다. 분홍색, 살구색, 연두색 등 밝은색으로 바꿨다. 골목 분위기가 눈에 띄게 밝아졌다. 태양광 LED 조명이 결합한 웰컴월을 대문에 설치했다. 담장에 자전거 스테이션과 홀더를 둬 무질서하게 방치된 자전거를 정리했다. 자전거 도난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꼬치 거리 뒤편 골목 안 주택 대문에 걸린 웰컴월(태양광 조명, 주소 명판, 우체통)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유 통장은 “도시재생처럼 대규모 예산을 써 마을 전체를 바꾸는 사업은 아니지만, 주민들이 생활하며 느끼는 불안이나 불편을 덜어주는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담장에 손상이 간다며 시설물 설치에 소극적이던 사람들이 이젠 꼭 해달라고 적극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후 주거지 환경 디자인 적용과 더불어 내외국인 자율방범대 통합초소도 설치됐다. 자양4동은 등록외국인 수가 서울 전체 423개동 가운데 7번째로 많은 곳으로, 한국·중국문화가 섞여 있다. 구는 따로 떨어져 있던 초소를 합쳐 범죄예방 효과를 높이고자 했다.
방범대원들의 의견을 모아 시설 디자인에 담았다. 엄기한(56) 내국인 자율방범대장은 “주황색의 밝은 2층 건물이 멀리서도 눈에 띄어 시각적으로 아주 멋있다”고 자랑했다. 이군철(46) 외국인 자율방범대장은 “방범대원들이 더 의욕적으로 순찰 봉사활동에 나서 예방 효과도 높아졌다”고 곁들였다. 실제범죄예방 환경 디자인 사업이 진행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자양4동의 5대 범죄(절도, 폭력, 강도, 살인, 강간·강제추행)건수가 직전 같은 기간보다 20%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걱정 없는 광진구 만들기’는 민선 7기 김선갑 광진구청장의 공약이다. 공약으로 내건 배경엔 광진구의 안전 관련한 낮은 수치가 있었다. 지역안전지수는 행정안전부가 2015년부터 6개 분야(교통사고, 화재, 범죄, 생활안전, 자살, 감염병) 수준을 공표하는 지수다. 광진구는 범죄 분야에서 4등급에 머물러 있었다. 5대 범죄 발생률도 서울자치구 평균보다 30%가량 높았다. 김 구청장은 ‘구민의 안전은 생명과 관련된 것으로 다른 어떤 것보다 가장 먼저다’라는 소신으로 정책 추진에 발 벗고 나섰다.
골목시장과 주거지를 구분하는 마을 게이트 앞에서 자양4동의 유혜숙 8통 통장(오른쪽)과 한명애 광진구 생활안
전팀 주무관이 얘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광진구는 생활밀착 안전사업 추진을 위해 전담팀을 신설했다. 2018년엔 도시안전과를 꾸리고 지난해엔 생활안전팀을 만들었다. 연구 용역을 통한 ‘범죄예방 치안환경 구축 기본계획’을 지난해 세웠다. 동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안전대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전문가 자문위원단을 구성하는 등 민·관·경 치안 네트워크도 강화했다. 지역의 치안 환경과 범죄 발생 현황 등을 분석해 내년까지 전체 동을 대상으로 범죄예방 사업을 마무리할 연차별 로드맵을 마련했다.
동마다 정해진 절차를 밟는다. 중점 개선구역을 잡고 주민설명회에서 해결해야 할 동네 문제에 대한 의견을 모은다. 구는 용역사와 함께 솔루션 디자인 안을 내고 간담회와 워크숍을 거쳐 가지치기한다. 자문단 회의를 거쳐 최종 디자인이 나온다. 심의(광진구 공공디자인진흥위원회의 범죄예방소위원) 뒤 가결되면 주민 동의를 받고 시공에 들어간다. 1년가량 걸리는 작업이다.
‘범죄분야 지역안전지수’ 민선 7기 들어 한 등급 좋아져
환경·범죄 분석, 동별 맞춤형으로 진행
방범대 통합초소, 여성 안심존 설치 등
“주민 체감하게 예산·체계 갖춰 지속”
광진구는 지난해 군자동 오래된 골목의 우범지역에 생활안심디자인을 적용해 ‘빛담길’을 조성했다. 광진구 제공
자양4동과 군자동은 사업을 마쳤고 화양동 등 3개 동은 올해 마무리된다. 동마다의 특성이 반영됐다. 중곡2동은 동네 한가운데 초등학교(용마초)가 있어 어린이 통학로 안전보수 디자인을 포함했다. 중곡4동은 아차산 아래 노후 주택과 계단이 많아 등산로를 정비하고 마을버스 정류소와 공영주차장을 밝게 했다. 어르신이 많아 마을 쉼터 개선 디자인도 포함했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이 많은 군자동에선 LED 조명 우체통 84개와 고보 조명(인체 감지 센서가 반응해 바닥에 이미지를 투사하는 조명) 2개를 설치했다.
범죄 취약 구역에 반사필름을 부착해 범죄 욕구를 줄이는 안심 거울 길을 만들고, 1인 가구에 유리 파손 방지 필름과 미니소화기 등을 지원했다. 자양4동엔 골목시장과 주거지를 구분할 수 있게 마을 게이트 6개를 만들었다.
2개 동(중곡4동, 자양2동)은 디자인 개발을 마치고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 나머지 동들은 디자인 개발 중이거나 사업 기획 단계에 있다. 한명애 생활안전팀 주무관은 “15개 전 동에서 추진해 구민들이 (사업을) 인식하고 관심을 갖는 것 같다”고 했다.
15개 전 동 사업에 드는 예산은 26억원 정도다. 70%가량은 3개년에 걸쳐 구비로 집행된다. 중곡3동, 군자동, 자양4동 등은 서울시 생활안심디자인사업에 선정돼 시비로 추진됐다. 중곡4동, 화양동 등은 행정안전부의 특별교부세로 진행됐다.
성은정 생활안전팀장은 “범죄예방 환경디자인 사업을 하는 여러 자치구 가운데 구비 비중이 높은 편”이라며 “구의 사업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했다. 유지관리가 중요하기에 구는 사업 시행 2년 뒤 유지보수 예산을 마련하도록 기본계획안에 넣어뒀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주민 동의를 구하는데 많은 품이 든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로 주민 모임이 어려워 더 힘들었다. 한 주무관은 “디자인 단계부터 주민 교류가 많아야 동의받기 수월한데 코로나19 상황에서 진행이 힘들었다”고 했다.
사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지역안전지수 범죄 분야에서 구는 처음으로 3등급을 받았다. 5년 만에 한 등급이 상승한 것이다. 성 팀장은 “가정복지과, 스마트정보과 등 여러 관련 부서의 이전 범죄예방 사업들과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낸 거라고 본다”고 했다.
올해는 경찰청 주최 범죄예방 대상 공모전에서 종합부문 국무총리상도 받았다. 공모전 공식 누리집에 따르면 광진구가 지역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범죄예방 디자인을 적용해 범죄 심리를 위축시켜 범죄 발생 기회를 사전에 막고, 주민들의 불안을 덜어줬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여느 사업들처럼 범죄예방 환경 디자인사업도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한 주무관은 “환경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관심을 두고 참여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문 도색 함께 하기, 방범대원과 동네 한 바퀴, 쓰레기 줍기 등 주민 참여 활동을 하지 못한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구는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게 예산을 마련하고 유지관리 체계 등을 갖춰나갈 계획이다. 김선갑 광진구청장은 “안전한 환경은 삶을 뒷받침하는 기본적인 전제이기에 구는 앞으로도 구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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