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 문학기행

그 작가의 집 '수연산방', 문향과 차향이 가득하다

월북 작가 상허 이태준의 흔적

등록 : 2016-08-11 14:51 수정 : 2016-08-11 14:52
수연산방 본채

성북동 골짜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문인 중 한 명, 상허 이태준. 월북 작가의 작품이 해금되던 해인 1988년 대한민국에 소개된 상허 이태준의 작품에 문학청년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달밤> <오몽녀> <장마> <복덕방> <밤길> <화관> 등 100여 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그가 살던 성북동 집, ‘수연산방’이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꾸며진 뒤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작가의 집, 수연산방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난 이태준은 어릴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었다. 고아가 된 이태준은 고학 끝에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뒤 일본에서 학업을 이어간다.

1925년에 <오몽녀>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이름을 올린 이태준은 1929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1933년 발표한 <달밤>은 ‘성북동으로 이사 나와서 한 대엿새 되었을까, 그날 밤 나는 보던 신문을 머리맡에 밀어던지고 누워…’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것으로 보아 이태준은 1933년에 성북동에 정착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태준은 1946년 월북하기 전까지 고향인 철원에서 생활했던 2~3년을 제외하고 성북동에서 살면서 <달밤> <돌다리> <화관> <밤길> 등 많은 작품을 썼다. 그는 자신이 살던 집을 ‘수연산방’이라고 하고 방마다 죽향루, 문향루, 상심루 등의 이름을 붙였다.

이태준이 1935년에 <삼천리>에 연재했던 글 중에 집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중 한 대목을 옮겨 본다.

이태준의 ‘문장강화‘


‘조선 건물은 옛날부터 인격과의 교섭이 깊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엔 인격의 정도는커녕 취미로 보아도 얼마나 타락하였는가, 그 길길이 뻘건 담을 쌓고…’ 이태준의 수연산방은 생활의 공간, 창작의 산실을 넘어서 사람과 하나 되는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이태준의 수연산방 중 ‘상심루’가 한국전쟁 때 전소됐다. 상심루는 수연산방 본채 왼쪽에 있었다. 지금 그 자리에는 별채 형식의 작은 방을 만들었다. 수연산방 본채 건물 마루에 이태준 가족이 상심루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수연산방 가는 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직진한다. 과일가게와 분식 포장마차 주변에 사람들이 모인다. 중앙분리대에 늘어선 키 큰 가로수와 개성 있게 꾸민 길가 식당들이 정겹다. 성북 구립미술관을 지나면 수연산방이다.(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수연산방까지 약 1.4㎞쯤 된다.)

수연산방 작은 솟을대문을 들어서서 보면 오른쪽 건물이 본채다. 전통 한옥의 뼈대 위에 개량한 한옥이다. 사철나무 왼쪽 원두막 앞 별채 건물 자리에 상심루가 있었다.

본채 건물 처마 아래에 몇 곳에 문향루, 수연산방 등의 글자가 적힌 편액이 있다. 본채 앞 울타리 아래에는 우물이 있다. 이태준이 살던 때부터 있던 우물이다. 우물 주변에 화단을 가꾸었다.

본채 툇마루에 올라서면 마당이 깊어진다. 흙 마당에 징검다리처럼 돌을 박아놓았다. 툇마루와 마루 사이에 문을 만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천장에 서까래가 보인다. 마루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방이 있다. 한쪽은 안방이었던 곳으로 보이고 다른 한쪽은 사랑방을 닮았다.

상심루가 있던 자리에 지은 건물은 옛 모습은 아니지만 원두막과 함께 주변 나무와 어울려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수연산방 툇마루

차향 고이는 마당

지금 수연산방은 한옥의 운치를 즐기며 차 한잔할 수 있는 공간이다. 1999년부터 차를 팔기 시작했다. 찻집을 하기 전에는 일반 가정집이었다. 이태준이 살며 작품을 집필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 문인들과 국문과 학생들이 찾아왔다. 한옥의 운치를 살려 드라마를 촬영하기도 했다.

찻집을 열고부터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났다. 한 시대를 살았던 작가의 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한옥의 운치를 즐기며 차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기와와 마루, 서까래, 난간 문양, 창호, 마당과 뒤안, 돌담 등 한옥의 멋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많지만, 한지 바른 창을 통해 걸러진 햇볕이 파스텔톤으로 방바닥에 내려앉는 겨울 오전의 방 안 풍경이 으뜸이다.

이태준은 정지용·김기림·이상·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를 만들어 문단 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 중 돋보이는 <밤길>은 현진건의 <빈처>를 떠오르게 한다.

수연산방 툇마루에 앉아 얼음 띄운 오미자차 한 잔으로 뜨거운 여름 오후의 열기를 식힌다. 불어가는 바람에 땀이 식는다. 가방에 있던 이태준의 책을 꺼내어 읽는다. 숱한 고민의 밤, 작가가 작품을 써내려 갔던 그 공간에서 그 작가의 작품을 읽는 시간이 깊어진다. 문향이 남아 있는 수연산방에 차향이 가득하다. 글 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