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구는 2021년 12월 서울시 자치구 중에서 유일하게 문화도시로 지정됐다. 문화도시 추진 기반 확보를 위해 힘써온 영등포구는 지난해 6월 문래동에 예술인, 기술인, 주민이 함께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협력 커뮤니티 공간 문래예술종합지원센터를 열었다. 문래예술종합지원센터는 예술가와 기술가가 협력해 새로운 상상과 생산을 실험하는 협력 프로젝트 ‘예술×기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4개 팀의 결과물을 지난해 12월18일부터 1월13일까지 소개하는 전시 ‘잇다’전을 열었다. 감자나 옥수수를 원료로 만든 친환경 플라스틱을 사용해 접시, 컵 등 다양한 용기를 만들 수 있는 ‘플로잉 애니멀’ 프로젝트 결과물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4
서울 자치구 중 유일하게 ‘문화도시’ 지정받은 영등포구
“문화 잠재력 인정받아”…국비 등 5년간 200억원 지원
“정치, 금융, 교통의 중심지인 영등포구가 문화 중심지로 인정받은 데 의미가 크죠. 영등포구의 다양한 문화자산,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도심의 잠재력 등이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6일 문래동2가 문래예술종합지원센터에서 “서울시 자치구 최초로 문화도시로 지정된 것은 큰 성과”라며 “구민들이 예비문화도시 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노력해 이룬 결실”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문래예술종합지원센터 전경.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영등포구는 2021년 12월 문화도시로 지정됐다. 서울시 자치구 중에서 문화도시로 지정된 곳은 영등포구가 유일하다. 영등포구는 2020년 서울시 자치구 최초로 예비문화도시로 지정됐고, 2021년 문화도시 추진 기반 확보를 위해 힘써온 결과 문화도시로 최종 지정됐다.
문화도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역별 특색 있는 고유한 문화자원을 활용해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을 이루고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2019년부터 해마다 심의를 거쳐 지정한다. 문화도시 심의위원회는 2021년 12월 예비문화도시 16곳을 대상으로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1년간 추진한 예비사업 실적과 문화도시 조성계획 검토, 현장실사를 토대로 총 6곳을 문화도시로 지정했다. 문화도시로 지정되면 5년간 최대 국비 100억원, 지방비 100억원 등 총 200억원을 지원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지정한 문화도시는 모두 18곳이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이 6일 문래예술종합지원센터를 방문해 직접 플로잉 애니멀 제작 체험을 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나라의 국격이나 도심의 품격은 결국 문화에서 나옵니다. 김구 선생도 대한민국이나아갈 길은 문화강국이라고 말씀하셨죠.”
채 구청장은 “기초 지자체 입장에서 봤을 때 다양한 하드웨어에 콘텐츠를 채워가는 것은 결국 문화의 힘”이라며 문화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도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정과 환대의 이웃, 다채로운 문화생산도시 영등포.’ 영등포구의 문화도시 비전이다. 구는 이를 위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5년 동안 6개 분야에서 25개 사업을 펼친다.
영등포구에는 양평·당산권역, 여의도권역, 영등포·문래권역, 신길권역, 대림권역 등 5개 생활권역별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
양평·당산권역은 최근 젊은층 유입이 늘어나고 동네 카페와 공방이 증가하는 지역이다. 여의도권역은 한강과 샛강이 있으며 국내 정치, 언론, 금융의 중심지다. 영등포·문래권역은 소형 공장 밀집 지역으로 기술인과 예술인이 공존하고, 또한 성매매 집결지와 쪽방촌이 있다. 신길권역은 저층 주거밀집 지역으로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고층아파트가 혼재한 지역으로 변하고 있고, 대림권역은 국내에서 중국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영등포구가 다양한 생활권역을 형성한데는 영등포구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대한제국시대인 1899년 경인선, 1904년 경부선철도가 생기면서 영등포는 서울 도심과 지방을 잇는 교통의 중추 역할을 담당했다.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반시설이 생겨나고 맥주, 피혁, 섬유, 방직 등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근대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영등포 일대에 들어선 공장들은 1980년대까지 한국 산업화의 상징이 됐다.
1968년 여의도가 개발되면서 국회의사당과 방송사, 금융기관이 잇달아 들어서 영등포구는 정치, 언론, 금융 중심지로 변모했다. 1970년대 인구 139만 명에 달하던 영등포구는 서울 서남권 7개 자치구로 분구되면서 현재의 영등포구로 남게 됐다. 1980년대 이후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대규모 공장들이 지방으로 이전한 이후 영등포의 산업구조는 경공업에서 금융과 첨단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영등포구는 2000년대 이후에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주한 중국동포들이 대림역을 중심으로 거주하면서 영등포구는 외국인 최대 밀집지역이 됐다. 영등포구 인구는 38만 명인데 외국인이 5만6천 명으로 대부분 중국동포다. 또한 문래동 기계공업(철공소) 밀집지역에는 예술인이 모여들면서 다시 한번 변화를 겪고 있다. 정부의 공장 이전 정책과 재개발로 철공소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홍대거리, 대학로 등지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들어와 빈 철공소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문래창작촌에는 공연장, 갤러리, 공방과 작업실 등 100여 곳에서 예술가들이 활발한 창작활동을 한다.
5개 권역별 개성 있고 다채로운 문화 공존…영등포구의 큰 자산
시민과 함께 문화 역량 발견 작업 진행
다양한 문화의 힘으로 도시 문제 해결
“권역별 문화 색깔 지키며 발전시킬 것”
영등포 구민들이 예비문화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수변탐사대 산책 워크숍. 영등포구 제공
영등포구는 이처럼 다양하고 개성이 강한 권역별 문화를 어떻게 하면 각각의 색깔을 지키면서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구는 각 권역을 통합하기보다는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권역 간 문화 격차를 해소하면서 각각의 특성을 살려 발전시키기로 했다. 또한 문래창작촌이 가진 문화역량을 기반으로 다양한 도시 문제를 함께 협력해 해결하는 상호문화 사업을 추진한다. 풍부한 수변 자원을 활용한 생태문화 역량도 강화한다.
영등포구는 다양한 생활권역의 풍부한 문화자원이 시민이 원하는 문화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구는 예비문화도시로 지정된 이후 시민이 참여하는 찾아가는 인터뷰, 공유원탁회의, 공론장 등을 통해 영등포구의 문제와 가치를 재발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소공인과 예술가들이 함께 문래동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죠. 주민이나 소공인들은 예술가들이 들어오면서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영등포 구민들이 문화도시를 위한 공론장을 연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영등포구 제공
영등포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김윤정(40)씨는 “예술인들이 어쩔 수 없이 활동하기 편하고 저렴한 공간을 찾아 온 곳이 문래동”이라며 “뜻하지 않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기술과 예술의 만남 프로젝트 등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고 했다. 영등포구가 지난해 6월 34억원을 들여 개소한 5층 건물 문래예술종합지원센터(술술센터)가 대표적이다. 술술센터는 기술과 예술의 만남을 뜻하는 말로, 예술가들과 기술인들의 활동을 지원하며 마을 주민을 비롯해 예술가와 기술인이 소통하고 교감하는 장으로 활용하고있다.
영등포구는 산이 없는 대신 한강, 여의샛강, 도림천, 안양천, 선유도, 밤섬 등 수변자원이 풍부하다. 구는 수변 활성화를 위해 2020년부터 수변탐사대와 수변실험실을 시민들과 함께 진행했다. 시민퍼실리테이터로 수변탐사대 활동을 하는 이경희(55)씨는 “평소 영등포구가 수변도시라는 것을 잘 못 느꼈다”며 “이런 활동을 통해 지금까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영등포구의 환경 자원을 더 잘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대림권역은 선주민과 이주민 사이 인식이나 시각 차이가 존재합니다. 외부 시각과는 별개로, 내부적으로 화합이나 융합이 잘안 되고 갈등이 있습니다.” 대림동에서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하는 김철곤(37) 코디네이터는 “찾아가는 인터뷰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속내를 잘 알 수 있었다”며 “친해지고 싶은데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구와 지역주민들은 문화도시 지정을 계기로 공론장을 열어 선주민과 이주민이 화합하고 공존할 수 있는 ‘친해지는 방법’을 모색한다.
영등포구는 2022년 옛 대선제분 건물을 문화발전소로 개조하고 2026년 제2 세종문화회관을 건립하는 등 대규모 문화 인프라도 만들고 있는데, 문화도시와 함께 시너지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화도시는 소프트웨어 콘텐츠죠. 주민들이 가진 다채로운 생각, 에너지, 개성들을 잘 엮어내서 영등포구라는 큰 하드웨어를 채워나가겠습니다.” 채 구청장은 “문화도시 선정을 계기로 다양한 주체들이 차별받지 않고 삶의 질을 높이는 ‘영등포 스타일’의 문화 으뜸 도시를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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