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성내천이 만나는 송파둘레길 북쪽 끝자락에는 2개의 동을 둘러싸고 있는 긴 토성이 있다. 한강이 있는 서쪽 성벽은 대부분 유실됐고 약 2㎞만 남아 있는데, 바로 지역 이름을 딴 풍납동 토성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지정 문화재로 관리돼온 풍납동 토성의 가장 높은 곳은 5m 남짓이다. 남쪽은 완만한 구릉처럼 남아 있어 성벽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토성 내부에는 고층의 아파트와 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토성의 존재를 알아보기 힘들다. 불과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성벽 위로 파나 배추 등 경작 행위가 이뤄졌고, 서쪽 성벽 위에는 민묘도 남아 있었다.
삼국시대부터 남아 있던 풍납동 토성은 이렇게 한강 남쪽 일대가 도시화하면서 그 모습을 점차 잃었고, 백제 한성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런 문제는 토성 내부 모습뿐만 아니라 성 밖의 경관도 마찬가지다.
과거 1960~1970년대 사진을 살펴보면 북성벽과 동성벽을 따라 성내천으로 합류하던 작은 하천이 흘렀던 것을 알 수 있다. 토성 밖에 있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고 비가 오면 주변에서 넘쳐 흐른 물이 이 하천에 모여 한강으로 흘러들어 갔을 것이다. 이 하천은 1980년대 잠실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완료되면서 민가와 새로운 도로로 덮였다.
사라진 하천의 흔적은 발굴조사로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다. 2015년 문화재 정비를 위해 보상이 완료되고 나대지로 관리되던 태양열주택 부지에서 하천 흔적이 확인됐다. 4.5m 아래에서는 현대에 흘렀던 강뿐만 아니라 백제시대 토성을 따라 흘렀던 해자도 발견됐다. 풍납동 토성 최초 해자의 흔적을 확인한 중요한 순간이었다.
성벽 앞 해자를 만들기 위해 파낸 흙은 다시 토성을 쌓는 데 사용됐다. 이런 방식으로 성벽을 더 높일 수 있었고, 해자에 있는 물을 통해 방어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최대 폭 15m 정도의 해자는 토층의 퇴적 양상을 보았을 때 사계절 내내 물이 흐르지 않고 우기에만 흐르는 건천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발굴조사 뒤 송파구는 오랜 시간 나대지로 방치되던 태양열주택 부지를 백제 해자와 관련된 역사공원으로 조성하는 데 나섰다. 본래 발굴된 해자 구간을 지상에 그대도 재현하려 했으나 단절된 해자의 표현, 과거 성벽과의 높이 문제 등 풍납동 토성 해자에 대한 오해가 생길 수 있어 전문가, 주민 의견 등을 거쳐 지난해 동성벽공원으로 만들었다.
동성벽공원 중앙에는 한성 백제 전성기 때 토성 모습을 30분의 1로 축소한 모형도가 있다. 그리고 주변을 흐르는 계류를 통해 해자를 표현했다. 또 백제를 비롯한 삼국시대 유적에서 확인되는 씨앗을 참고해 매화, 살구, 복숭아, 단풍나무 등 우리나라 전통 수종을 심어 역사공원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풍납동 토성 모형도에 대한 방문객의 이해를 돕고자 혼합현실(MR)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복원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백제 한성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올해 8월을 목표로 제작하고 있다.
많은 도심화가 이루어진 풍납동 토성이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백제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곳, 풍납동 토성 동성벽공원에서는 문화재와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주민을 만날 수 있다.
노태호 송파구 역사문화재과 문화재정책팀 학예사
사진 송파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