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도움받은 만큼 나눔으로 갚으려 해요”

도시락 기부 나선 성북구 청년가게 ‘한술식당’ 사장 정태환씨

등록 : 2022-02-17 15:24
성북구 길음동의 덮밥 전문점 ‘한술식당’ 사장 정태환씨가 1월14일 정오 도시락 나눔을 위해 가게를 나서고 있다. 이날 지하철 4호선 인근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이뤄진 나눔 행사(아래 사진)에서 정씨는 갓 만든 따끈따끈한 덮밥 20그릇을 전달했다.

청년창업거리서 덮밥집 15개월 운영

6전7기로 연 첫 가게, 성공적 안착

지난해 100개, 올해 200개 나눔 목표

“나눌수록 마음 채워져 꾸준히 할 것”

“아무도 모르게 기부해야 하는데….”

성북구 길음동의 덮밥 전문점 ‘한술식당’ 사장 정태환씨가 도시락을 전하면서 쑥스러워했다. 지난달 14일 점심시간, 지하철 4호선 길음역 인근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이뤄진 성북구 나눔 행사에서 정씨는 따뜻한 덮밥 20그릇을 전달했다. 지난해에 이어 세 번째 기부다. “맛난 도시락을 보내줘 참 고맙다”고 한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행사에 참여한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청년창업거리에서 시작된 ‘나눔의 선순환’이 지역에 훈훈한 온기를 불어넣는 것 같다”고 뿌듯해했다.


기부행사 뒤 <서울&>과 만난 정씨는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 나서게 되었다”며 “지역으로부터 받은 것에 비해 나눔이 아직 미미한 것 같아 부끄럽다”고 했다. 도시락 나눔을 위해선 전날부터 좀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닭갈비, 삼겹살, 소고기 같은 주재료는 12시간 이상 숙성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눔 행사 전날은 재료를 추가로 준비해야 하니 퇴근이 늦어진다. 당일에도 한두 시간 더 일찍 나와 준비해야 한다. 그는 “어제 4시간도 채 자지 못했지만, 좋은 일 한다는 뿌듯함에 견뎌낸다”고 했다.

20대 끝자락에서 돌아본 그의 20대 생활은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도전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대학입시 실패 뒤 아르바이트하면서 운동용품 판매업 창업을 준비했으나 1년도 안 돼 접었다.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타격이 컸다. 한참 동안 은둔 생활을 했다. 어느 날 온라인에서 우연히 ‘넘어진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지만, 일어나지 않는 것은 너의 탓이다’라는 글귀를 읽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창업동아리 활동을 했다. 음식점 대기 관리 앱과 취미생활 앱 개발 프로젝트를 차례로 했지만 둘 다 실제 창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처음 실패 뒤 다시 일어서는 때까지는 무척 힘들었지만, 이후엔 실패해도 ‘뭐가 문제였지’를 짚어보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며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요식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각이 뛰어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너무 고된 업종 같아 애써 외면했지만, 실패를 거듭하면서 결국 요식업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 붕어빵 장사 석 달, 컵밥집 아르바이트 여섯 달을 지내고, 임차료 부담 없이 실전 경험을 할 수 있는 청년키움식당 사업에도 참여했다. “푸드 코트에서 덮밥 코너를 석 달 운영했는데, 맛만큼 음식을 내놓는 시간도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인터넷 서핑으로 성북구 청년창업지원 사업을 알게 됐다. 불법영업소 거리를 청년창업거리로 조성해 건강한 상권으로 키우는 사업 취지가 마음을 끌었다. 두 번의 도전 만에 2020년 하반기 선정됐다. 3평 남짓 공간의 인테리어 비용(2천만원)과 1년 임대료(750만원)를 지원받았다. 부족한 자금은 대출로 보탰다.

적정 수준의 매출이 나오기까지 처음 넉 달은 시장 보고 요리에 서빙, 설거지와 청소까지 혼자 다 했다. 어떤 때는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기도 했단다. 하지만 실패와 도전을 겪으면서 생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여자 친구가 믿고 지지해준 것도 버티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동네 찐맛집’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재주문율이 높아지고 매출도 꾸준히 올랐다. 한술식당은 삼겹살과 곱창, 닭갈비 덮밥을 주로 판다. 주재료는 반나절 이상 마리네이드로 재우고, 직접 만들어 저온숙성한 소스에 수제 양배추 피클도 곁들여진다. 한술 가득 맛과 정성을 담는다는 식당 이름대로 양 많고 맛있어 젊은 손님들의 반응이 꽤 좋다.

6전7기 끝에 연 가게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창업 1년을 앞둔 지난해 9월, ‘주위의 도움을 받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는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지역의 나눔 활동에 나서기로 결심하고 창업지원을 해준 성북구에 문의했다. 지난해 선별진료소 관계자와 취약계층 결식아동 등에게 도시락 100개를 보냈다. 올해는 200개 기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가게 운영에 지장 없는 한도에서 가능한 한 기부를 더 늘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나눌수록 더 받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기분도 좋아지고 마음이 채워지는 듯하다”고 했다. 결식아동에게 도시락을 기부한 뒤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 전화를 받았을 땐 울컥했단다. “원래는 돈 많이 벌면 나눠야지 생각했는데 작더라도 지금 시작한 게 잘한 것 같다”며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정씨는 올해 새로운 도전을 한다. 한술식당 2호점을 준비해 조만간 문을 열 계획이다. 고려대 인근 안암동 참살이길에 20여 평 규모다. “머물러 있지 않으려 또 저질렀다”고 웃으며 말했다. 자금은 정부 소상공인 창업지원금과 대출로 마련했다.

주위 사람들은 그가 ‘삶을 꽉꽉 채워 산다’고들 말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 그는 ‘잘 산 것 같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양가감정을 느낀단다. “청춘을 즐기지 못해 아쉽지만, 성공으로 보답받고 싶다”고 했다. 성공을 향한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글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