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독거남, 독거노인 도우며 ‘삶 희망’ 찾아

서울시 복지협의체 우수사례 선정된 금천구 독산3동 ‘돌아온 진짜 사나이’

등록 : 2022-02-24 15:58
금천구 독산3동 복지협의체는 2017년부터 독거남들의 모임 ‘돌아온 진짜 사나이’를 만들어 지역 독거노인을 위한 소소한 집수리 등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왼쪽부터) 차은숙 독산3동 복지협의체 간사, 황해권 위원장, 박명례 부회장, 오유경 독산3동 주무관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17년 ‘중년 저소득 독거남’ 모임 결성

소소한 집수리 기능 익혀서 봉사활동

폐가구 정리, 지역 봉사 등 활동 넓혀

예산 마련 큰 고민…협동조합화 추진

“2016년 5월께 공원에서 남성 몇 명이 자주 술을 마시는 것을 목격했죠. 아직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나이인데, 딱해 보였죠. 그래서 저분들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황해권(68) 독산3동 복지협의체 위원장은 2017년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는 40~60대 저소득 독거남성들의 모임 ‘돌아온 진짜 사나이’(돌진사)를 만들었다. 돌진사는 저소득 독거노인을 위해 소소한 집수리, 자조모임, 문화활동 등 지역 봉사활동으로 사회관계망을 만들고 자립 역량을 키우면서 사회와 소통한다.

돌진사는 정기적으로 자조모임 ‘우루사’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심리적 지지와 안정을 도모하는 시간도 갖는다. 또한, 독거노인과 함께하는 나들이, 지역 투어, 문화 활동을 하면서 1인 가구 고독사 예방에도 노력하고 있다.


“여름에 모기나 쥐가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열어놓기 무서워요. 전등불이 켜지지 않아도 갈아줄 사람이 없어요. 벽에 못을 박기 힘들어요. 가스불을 켜놓고 깜빡 잊어버려요.”

2016년부터 독산3동 통장 회장을 맡으면서 복지협의체 활동을 해오던 황 위원장은 사소하지만 그렇다고 독거노인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자주 도움을 요청하는 데 귀를 기울였다. 돌진사는 무더운 한여름에도 문을 열지 못해 답답해하거나, 전등이 들어오지 않아도 자신의 힘으로 어쩌지못해 불편한 생활을 하는 노인들을 위해 소소한 집수리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돌진사는 2021년 한 해만 해도 현관문 방충망 120곳, 창문 방충망 50곳을 교체하거나 새로 설치했다. 안전을 위해 가스타이머 70개를 설치했고 불이 들어오지 않는 형광등 60개를 갈았다. 황 위원장은 18일 “우리가 크게 도움을 주거나 감흥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웃이 어려워하는 문제를 해결해줬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돌진사는 2020년부터 활동 영역을 독산권역뿐만 아니라 시흥권역으로 넓혔다. 이제는 금천구 전역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더욱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독거노인들의 불편은 더 커져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황 위원장은 “몇 년 동안 묵묵히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다른 동네에도 소문이 나 집수리나 봉사활동을 요청하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했다.

돌진사는 2017년 12명이 활동을 시작해 지금은 8명이 활동하고 있다. 도움을 받다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돼 자존감도 높아졌다. 소소한 집수리 기능도 익혀 사회 복귀를 위한 자신감도 생겼다. 황 위원장은 “이들은 받기만 하고 살다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세상과 소통하게 되고,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돌진사는 이런 활동으로 2021년 서울시 지역사회 복지협의체 우수 사례 2곳 중 1곳으로 선정됐다. 황 위원장은 “2021년을 마무리 할 즈음에 우수 사례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다”며 “묵묵히 봉사활동을 해왔는데,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돌진사는 간단한 집수리 외에도 동네에서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저소득 노인 폐가구 정리, 반찬 나눔 봉사, 지역 행사 도우미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한다. 황 위원장은 “올해는 옥상 문화 활성화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라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언제든지 요청하면 달려가겠다”고 했다.

돌진사에는 독거남성 외에도 독산3동 복지협의체 주민들이 함께 힘을 합쳐 봉사활동을 한다. 박명례(61)씨는 올해부터 독산3동 복지협의체 부회장을 맡았고, 차은숙(54)씨는 간사를 맡아 힘을 보태고 있다. 독거노인 가구를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다보니, 남성 2~3명이 몰려가면 아무래도 혼자 사는 노인이 경계하거나 거부감을 갖는다고 했다. 그래서 평소 지역 활동을 해온 주민(통장)과 함께 방문하면 안면이 있어 노인들이 안심한다고 했다.

통장을 맡아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는 차씨는 “자식이 있어도 얼굴 한 번 보기 힘든데 이렇게 집수리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독거노인 말을 들으면 내 할 일을 한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다”고 했다. 박씨는 “독산3동 복지협의체 활동을 오래 해왔지만, 올해는 부회장을 맡아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다”며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배운 원예치료 등을 접목해 이웃이 외로움을 이겨나가는 데 힘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돌진사는 앞으로 폭넓은 취약계층 발굴과 자조 모임을 확대하면서 협동조합으로 발전시켜갈 계획이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활동 예산을 마련하는 것이다. 돌진사는 주민참여예산을 확보해 봉사활동에 필요한 방충망, 형광등, 가스타이머를 구입하는 등 운영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황씨는 “매년 주민참여예산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활동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힘들다”며 “돌진사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으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