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전시 운영요원이 관람객에게 입체 지구본의 가장 높은 부분인 에베레스트산과 가장 깊은 부분인 마리아나 해구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푸른 지구 원천 ‘바다, 미지로의 탐험’전
하늘에 뜬 달에 가본 사람 12명인데
1만m 이상 심해 가본 사람은 4명뿐
직접 갈 수 없는 곳을 체험으로 소개
심해 아귀 홀로그램에 손도 넣어보고
작은 생물, 인터랙티브 미디어로 감상
‘손으로 반죽을’ 뜻 ‘라맹알라파트’ 정신
시각 외에 촉각 등으로 생생히 전해져
지구를 손으로 만져보고 싶다면, 3월6일까지 북서울꿈의숲 상상톡톡미술관으로 가자. 프랑스 국립 자연사박물관 특별전 ‘바다, 미지로의 탐험’이 열리는 전시장 앞에 세워진 직경 1m짜리 입체 지구본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지구본을 만지면 지구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도 손톱보다 얕다.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도 다른 산맥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 위치를 모르면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마리아나 해구를 찾지 못하는 한 어린이 관람객에게 김소연 박물관 에듀케이터(교육요원)가 설명했다.
“먼저 한국을 찾아보세요. 그 옆에 일본, 그 옆에 환태평양조산대 불의 고리가 있죠? 그걸 쭉 따라 내려가면, 맞아요! 거기가 바로 마리아나 해구예요. 깊이가 1만1000m죠. 이번엔 가장 높은 산맥을 찾아볼까요? 에베레스트산은 높이가 8848m예요. 하지만 마리아나 해구보다는 작게 느껴지죠?”
그의 해설을 들으며 전시관으로 입장하니, 어둠 속에서 거대하고 푸른 행성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표면적의 71%를 바다로 덮은 물의 행성, 지구다. 그 아래에 물리학자 겸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인인 마이클 배럿의 말이 적혀 있다.
“믿기 어려울 만큼 검은 우주 속에서, 믿기 어려울 만큼 푸른빛을 띤 행성인 지구가 아무 일도 없는 듯 머물러 있다. 이 모습을 바라보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놀랍다.”
그러나 푸른 지구를 만든 바다에 대해 인류는 여전히 모르는 게 더 많다. 달을 밟아본 인류가 12명인 데 비해, 1만m 이하 심해에 가본 인류는 지금까지 4명뿐이다. 공기압의 800배에 이르는 수압, 수심 200m 아래에서 시작하는 완전한 어둠. 심해 환경은 인간에게 우주 공간 이상으로 혹독하다.
2 프랑스 심해 잠수함 노틸러스호에 탑승한 조종사와 과학자가 수행한 탐험 미션을 따라 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터. 3 전시 주관사인 주먹기획의 전승원 대표가 관람객들에게 프랑스 자연사박물관과 바다, 미지의 세계 전시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4 6m 크기로 제작된 거대 오징어의 모형이 걸려 있는 1층 전시실. 5 프랑스자연사박물관의 ‘바다, 미지로의 탐험’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북서울꿈의숲 상상톡톡미술관 전경.
이 전시회는 가서 직접 보고 만질 수 없는 해양 환경과 생태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바다 생물이 헤엄치는 대형 수족관, 동물 사체로 만든 박제나 표본은 없다. 대신 다양한 체험 활동이 있다. 심해 잠수함 운전석을 재현한 시뮬레이터 기기,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생물들을 확대해 보여주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과학자의 팩트체크(사실검증) 과정을 직접 겪게 해주는 바다뱀 목격담 음성 체험 부스 등등.
관람객들은 6m짜리 거대 오징어 모형 아래에서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바다의 노동자>를 샌드아트로 감상한다. 백악기부터 살아남았지만 인류의 불법 심해 어업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실러캔스 사본을 아이들 눈높이에서 관찰한다. 대형 모니터 속엔 산갈치가 수직으로 몸을 세우고 지느러미를 십자가 모양으로 펼친 채 우아하게 머문다. 홀로그램 사진 속에선 ‘발광 납작 앨퉁이’ 등 심해 생물들이 보인다. 한 아이가 심해 아귀 앞에서 외쳤다.
“엄마, 아귀 입에 손 넣었어.”
“어우야, 신기하다. 홀로그램이네. 전시물인데 만져도 되나?”
하지만 전시관의 누구도 아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이 전시는 보고 듣는 것뿐 아니라 만지고 체험하고 소통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전시 주관사인 주먹기획의 전승원 대표는 “프랑스식 과학교육 철학 ‘라맹알라파트’가 담긴 전시”라며 “단순관람을 넘어서 소통하는 교육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손으로 반죽을’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라맹알라파트’는 밀가루 반죽을 주무르듯 몸으로 체험해 이해하고 생활 속에서 과학을 실천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핵물리학자, 조르주 샤르파크가 주도한 과학교육 운동의 이름이자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라맹알라파트는 아이들의 호기심과 질문, 실험을 통한 진실 찾기, 말을 통한 설명과 글을 통한 기록을 중시한다. 다시 말해 자발성, 경험적 지식, 과학과 언어의 연계를 강조한다.
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지름 1미터짜리 지구본. 마리아나 해구의 깊이 등 지구의 다양한 지형을 손과 눈으로 느낄 수 있다.
이런 정신은 전시장 벽마다 빽빽하게 적힌 정보, 스킵 즉 건너뛰기 기능이 없어 모든 정보를 꼼꼼히 읽게 만든 무인 정보 단말기 등 설치물 곳곳에서 드러난다. 전 대표는 “이 전시는 관람객이 첫 섹션부터 마지막 섹션까지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과학지식을 습득하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우선, 입체 지구본에서 보셨듯 이 전시는 시각뿐 아니라 촉각을 활용해 자극을 줍니다. 적나라한 현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캐나다 노틸러스사의 자원 발굴이 심해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내용의 영상 전시물이 한 예죠.”
이 전시는 바다의 현실을 아름답게 꾸며서 보여주지 않는다. 남극해 심연에서 불가사리떼의 먹이가 되는 바다표범 사체, 1초에 206㎏씩 바다로 흘러 들어오는 플라스틱 쓰레기 등등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장면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설명한다.
“우리는 바다를 잘 안다고 과신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항상 그곳에 있으면서 큰 대가 없이 우리에게 가진 것을 내주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러한 과신과 무관심이 현재의 환경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 전시의 출발점입니다.”
‘경이로움으로 매료시켜 교육한다.’ 프랑스 자연사박물관이 밝힌 운영 철학이자 소명이다. 경이로움을 느끼면 매료되고, 매료되면 배우고 싶어진다. 어디 과학만 그러할까.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