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분노를 주인으로 삼지 마세요

내면의 괴물과 싸우는 30대 중반 여성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등록 : 2016-08-18 13:54 수정 : 2016-08-18 13:55
 
Q. 트라우마 때문에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고통과 마주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잦은 자해와 자살 시도로 정신과 약을 먹고 있지만, 3년 동안 뚜렷한 병명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병명을 얘기해 주지 않는 이유는, 우울증 증상이 너무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병명이다 낙인찍으면 치료에 도리어 안 좋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네, 하고 수긍하다가도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정말 심각한 정신병을 가진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압박감이 생기고, 나중에는 그 압박감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독설을 퍼붓거나 지나친 분노로 자해 충동과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에게 친절한 사람에게조차 독설을 퍼붓고, 인격 모독을 하고, 다 너 때문이다, 네가 날 죽이는 거다라는 말을 내뱉곤 합니다.

중요한 건…이건 정말이지 평소의 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평소의 저로 돌아오면 내가 행동했던 것들, 내뱉은 말들이 또 다른 트라우마와 죄책감으로 남습니다. 나는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인가 하고 절망감에 빠져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겪으며 눈물을 쏟아냅니다. 이젠 미안함도 외면해 버리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게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이 괴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와주세요. 루밍

A . 마음속의 괴물과 사투를 벌이고 계시는군요. 루밍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상대를 공격하고 자해·자살 시도를 하도록 만드는, 분노에 찬 괴물은 사실 우리 안의 다양한 인격 중 하나입니다. 아니, 우리 안의 인격 중에는 괴물이 없지만 우리가 싫어하고 억압하면 그 인격이 괴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수많은 인격을 갖고 있습니다. 쾌활한 인격, 모성애 있는 인격, 리드하는 인격처럼 우리가 계발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인격도 있지만, 분노하는 인격, 우울한 인격, 비판하고 비난하는 인격, 질투하는 인격처럼 우리가 혐오하고 외면하고 싶은 인격들도 살고 있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다양한 인격이 꼭 정신에 질환을 가진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나 말고 다른 인격이 살고 있다니, 망상은 아닐까 걱정하는 분들이 있는데, ‘인격’이라는 말은 특정한 에너지나 감정 패턴, 부분적인 성격 특성 같은 것들의 상징적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런 특성들과 대화도 할 수 있고 이미지로 상상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심리치료에서 내면과 대화하는 기법을 쓰지요.

실제로 우리는 날마다 다른 기분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느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이 또 다른 때에는 견딜 수 없이 화가 나는 일이 됩니다. 사람들과 만날 때는 밝고 활기찬데, 집에 들어오면 우울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인격은 우리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어떡하지?” 하고 혼잣말로 물으면 대답해 주기도 합니다.

애초에 이들은 목적이 있어서 생겨났거나 나름의 순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를 보호하려고, 또는 현실의 엄청난 고통을 견디기 위해 생겼을 거라는 말입니다. 조심스러운 짐작이지만 루밍 님의 분노도 처음에는 루밍 님을 보호하려고 강화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의도는 트라우마를 만든 막강한 경험에 의해 좌절되었을 것이고, 또 사회적으로도 늘 제지당했을 겁니다.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함부로 화를 내서는 안 되며, 불화를 조장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에요. 그 화가 내 권리를 보호하거나 해명하거나 항변하기 위한 것이라도 말이지요. 그렇게 공격당하고 억압당할 때, 그래서 본래의 건강함이 훼손당할 때 분노는 공격의 방향을 잃고 나와 무관한 사람에게 향하거나 자기 학대로 변질됩니다.

<다락방 속의 자아들>의 저자 할 스톤은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자아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존중하지 않는 자아들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내면에서 힘과 권위를 획득하면서 점점 더 크게 자라난다”라구요. 외면당한 본능적 에너지는 무의식으로 들어가 다른 에너지들을 끌어들이면서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악의처럼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루밍 님, 분노한 자신에게 “이러면 안 돼!” “네가 정말 싫어!” 하고 말하지 마시고, “많이 힘들지?” “뭐가 문제니?” “왜 그렇게 화가 났니?” 하고 물어봐 주세요. 그러면 마음속에서 대답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 대답을 듣고 또 다른 질문을 이어가세요. 분노하는 자신이 하는 말을 글로 써 보셔도 좋습니다.

그것이 바로 의식화입니다. 무의식적 존재들을 의식의 장으로 초대해서 그들을 낱낱이 이해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태도가 바로 자신의 주인으로서 보여야 할 태도입니다. 분노를 주인으로 삼지 마세요. 어른스럽게 분노에게 물으시고, 또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도 물으세요. 제 병명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싶어요. 그 병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지 않고, 철저히 공부해서 벗어나도록 노력해 볼게요, 하구요.

명심하세요. 당신의 분노는 원래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생존에 대한 욕구였을 거고, 당신의 고통을 줄여 주고자 노력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그 의도를 외면했을 겁니다. 지금은 그 모습이 흉포해 보여도, 처음에는 선한 의도가 있었을 거라는 말입니다. 당신이 그에게 부여한 ‘괴물’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괴물처럼 화를 내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끈질기게 대화해서 처음의 선한 의도를 그가 되짚을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를 충분히 이해해 주시고, 그동안 애썼다고, 고맙다고, 이제는 더 이상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여 주세요. 그렇게 하신다면 분노는 점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힘으로 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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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미라 심리상담가·<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