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나라를 지킨 이들의 영혼, 멋진 한강 경치로 위로받다

㊺ 동작구 사육신공원에서 국립서울현충원과 서달산 거북바위 숲까지

등록 : 2022-03-10 16:23
560여년 전 사육신의 ‘쉼터’에서부터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앞 자리까지

쭉 이어서 길을 걸으니 한강빛 고와라

햇볕도 따뜻이 내려 그 마음 다독인다

숲에서 한강을 보았다. 방치된 숲은 공원이 됐다. 데크길을 놓고 쉼터와 놀이시설을 만들었다. 꽃 피고 잎이 무성해지는 계절이면 한강을 굽어보는 숲으로 이름을 날릴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 깊은 곳, 호국지장사 앞 느티나무 고목을 보고 현충원을 품은 서달산 숲길을 걸었다. 그곳에도 한강을 굽어볼 수 있는 숲이 있다.

옛 정취 사라진 송학대, 7명의 충신을 모신 사육신공원

사육신공원 전망 좋은 곳에서 본 풍경.


산비탈을 치고 올라와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 때문에 산 같지 않지만, 아파트와 빌라 틈바구니에 남아 있는 손바닥만 한 녹색 공간이 옛 송학대의 이름을 잇는다.

송학대는 지금의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송학대공원과 그 언저리에 있던 명승이었다고 한다. 소나무 숲에 학이 살았다고 해서 송학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푸른 소나무 숲에 날아드는 학의 기품 있는 자태가 어울린 풍경이 송학대를 명승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옛 송학대의 풍경은 사라졌지만, 인근 유치원, 약국, 교회에서 송학대라는 이름을 볼 수 있다.

소나무 숲과 학이 사라진 그곳은 지금은 산동네 사람들의 쉼터이자 아이들의 놀이터다. 해마다 4월이면 송학대공원 앞 만양로3길은 벚꽃길이 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벚꽃 명소다. 꽃길 구간은 짧지만 산동네 생활의 편린과 어울린 벚꽃길은 풋풋하면서 고졸하다.

송학대공원 동쪽 산비탈마을 주택가 좁은 골목을 따라 내려간다. 1㎞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사육신공원이 있다. 사육신공원은 조선시대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은 충신의 무덤과 사당이 있는 곳이다. 숙종 임금 때 사육신의 뜻을 기리고자 민절서원을 세웠다. 정조 임금 때에는 신도비를 세웠다. 육각 사육신비는 1955년에 만든 것이다. 원래는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묘만 있었는데 훗날 하위지, 류성원, 김문기의 허묘도 함께 만들었다.

사육신공원 정문으로 들어서서 홍살문을 지나면 사육신 사당이 나온다. 불이문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사당 건물인 의절사가 보인다. 왼쪽에는 신도비가 있고 오른쪽에는 육각으로 된 사육신비가 있다. 의절사 뒤 숲에 사육신묘가 있다.

사육신묘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을 것 같은데, 의외로 발걸음이 잦은 곳이다. 사계절 푸른 숲에 둘러싸인 7기의 무덤에 햇볕 고인다. 이곳까지 온 사람들은 7기의 무덤을 품은 숲 둘레에 난 길을 걷는다. 햇볕 잘 드는 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보인다. 단종을 향한 사육신의 마음을 기리는 뜻일까?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는 사람도 가끔 볼 수 있다.

사육신 사당에서 나와 전망대로 향한다. 높지 않은 곳이지만 한강과 여의도, 북한산, 남산 등도 보인다. 이곳은 한국전쟁 때인 1950년 7월1일 한강 방어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이기도 하다.

용양봉저정공원과 효사정

한강 가 절벽 위에 지어진 효사정. 달맞이하기 좋다.

사육신공원에서 동쪽으로 1㎞ 안 되는 거리에 용양봉저정공원이 있다. 원래 이곳은 가꾸지 않은 숲이었다. 공원 반대쪽 산비탈은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섰던 달동네였다.

산꼭대기 집 앞 빈터에 장독대를 만들고 장독대 위로 빨랫줄을 걸었다. 해 질 때까지 빨래를 걷지 않은 날은 울긋불긋한 노을빛 속으로 빨래가 나부끼기도 했다. 저녁 밥상 물리고 나온 식구들은 장독대 앞 평상에 앉아 얘기를 나누다 별이 총총 뜨는 밤을 맞이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집 앞 빈터 풀밭과 흙바닥이 놀이터였다. 겨울이면 산꼭대기 집 앞 능선은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 연날리기 좋았다. 한강을 굽어보며 하늘 높이 연을 날리던 아이들은 사라졌다. 옹기종기 모여 살던 집은 재개발로 다 없어지고 네모진 커다란 건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더 이상 노을 속으로 나부끼는 빨래는 보지 못했다. 밤하늘을 올려보며 부채질로 모기를 쫓던 밤 풍경도 사라졌다.

방치된 숲은 공원이 됐다. 아이들이 연을 날리며 놀던 곳에 공원 전망대가 들어섰다. 다행스럽게 달동네였을 때나 지금이나 이곳 전망은 끝내준다. 이곳은 한강에서 매년 가을 열리던 불꽃축제날이면 명당을 맡으려고 대낮부터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이다. 지금도 그 전망은 변하지 않았다.

용양봉저정공원 전망대.

한강을 굽어보는 전망 속에 이제 막 생긴 용양봉저정공원이 보인다. 새잎 돋고 무성해지는 계절이면 한강을 지척에서 굽어볼 수 있는 숲으로 이름을 날릴 것이다. 용양봉저정공원 꼭대기 전망대에서 공원 쪽으로 내려간다. 한강 쪽으로 시야가 트인 전망대 몇 개와 공원 자연마당을 지난다. 반대쪽 언덕배기에 커다란 나무 옆 카페가 보인다. 카페 유리창 밖으로 한강이 보인다. 잠시 쉬며 따듯한 차 한잔 한다. 그러기 좋은 곳이다.

용양봉저정공원에서 내려와 현충로를 따라 조금 가다보면 육교다. 육교를 건너 한강 가 절벽 위에 지어진 효사정으로 간다. 시원하게 트인 시야에 풍경도 멋지지만 이곳은 달맞이하기 좋은 곳이다.

호국지장사의 느티나무 고목과 거북바위의 전설

효사정에서 내려와 육교를 건너 흑석동효사정앞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동작역·국립현충원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국립서울현충원과 그곳을 둘러싼 서달산 줄기의 숲길을 걷기 위해서였다.

국립서울현충원은 수양벚나무로 유명하다. 꽃이 피면 낭창거리며 땅에 닿을 듯 늘어진 수양벚꽃 가지가 매력적이다. 늘어진 가지 안으로 들어가서 위를 올려보면 ‘꽃폭포’ 같다.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만남의집 뒤 현충천과 작은 연못을 차례로 지났다. 현충천을 건너는 구름다리 뒤로 메타세쿼이아 나무의 거대한 모습이 겹쳐진다.

국립서울현충원.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그 숲을 지나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앞에 섰다.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학생들은 군복도 없이 교복을 입고 총을 들었다. 그중 경북 포항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이름을 알 수 없는 학도의용군 48위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육탄 10용사 현충비도 있다. 한국전쟁 전인 1949년 5월 개성 송악산 지역에서 북한군이 기습해 점령한 우리 고지를 되찾고자 10명의 용사가 폭탄을 몸에 안고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현충비다.

셀 수 없이 많은 비석이 양지바른 곳에서 빛난다. 그 사이에 난 길을 걸어 호국지장사로 간다. 호국지장사로 올라가는 가파른 오르막 시멘트 포장도로 한쪽에 350년 넘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주변 나무들과 빈 가지 서로 엮어가며 어울려 사는 느티나무 고목이 수더분하다.

느티나무 고목에서 오르막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현충원을 품은 서달산 숲길로 나가는 국립현충원상도출입문이 나온다. 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 걷는다. 커다란 돌무지 두 개가 있는 곳을 지나 계단으로 올라간다. 서달산 정상인 동작대로 가는 길이다.

거북바위.

서달산 정상은 179m다. 산 아랫마을 사람들이 쉬는 쉼터에는 오늘도 장기판이 벌어졌다. 운동기구를 이용해 운동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태극기 휘날리는 정자를 지나 달마사 위 거북바위 쪽으로 간다. 정상 동작대 정자보다 거북바위에서 보는 전망이 좋다.

거북바위 아래에 샘이 있다. 1970년 동굴을 파서 용왕상을 모셨다. 사람들은 이곳을 용왕궁터라 여기고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거북바위 앞에 한강과 도심, 주변 산세가 어우러진 전망이 펼쳐진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