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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기승부려도 봄꽃은 어김없이 피어 ‘희망’을 전한다

등록 : 2022-03-17 16:17

장태동 여행작가가 추천하는 ‘2022년 봄 서울의 꽃길’

인왕산, 안산, 청계천, 백사실계곡 등 곳곳이 ‘꽃대궐’

장태동 여행작가가 올봄 서울에서 가장 멋질 것으로 예상되는 꽃길들을 소개한다. 꽃이 피는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장 작가는 몇 년간 취재하면서 봤던 가장 멋진 순간들을 현재형으로 표현했다. 서울의 멋진 꽃길을 통해 코로나19로 지친 마음들에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편집자

3월, 4월, 5월 세상은 온통 ‘꽃천지’다. 꽃구경 생각에 마음이 먼저 분주하다. 무슨 꽃을 어디에 가서 봐야 할까? 무리 지어 피어난 꽃밭을 거니는 마음은 황홀하다. 꽃을 보는 그마음은 숨길 수 없어 꽃 앞에 선 사람들 얼굴도 꽃처럼 화사하다. 생활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온 코로나19, 규제와 방역의 규칙을 지키는 속에서 일상에 새롭고 밝은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은 새봄에 활짝 피어나는 꽃들이 아닐까? 코로나19 종식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꽃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종로구 인왕산 기차바위 아래 산골마을 꽃대궐

조선시대 세종 임금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살던 집터, 일제강점기 소설가 빙허 현진건이 살던 집터, 청계동천이라고 새겨진 숲속 바위를 보고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되돌아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좁은 골목을 나그네처럼 걸었다. 골목마다 꽃 피지 않은 곳이 없었다. 모퉁이를 돌면 개나리 노랗고, 목련꽃을 왜 나무에서 피는 연꽃이라 하는지 알려주려는 듯 연꽃을 닮은 목련꽃도 피었다. 아랫집 지붕 위에 또 다른 집으로 가는 골목길이 났다. 산비탈집들 앞에 피어난 하얗고 노란 꽃들이 오늘같은 봄이면 주소고 문패다.

그 마을로 들어가 또 골목을 거닐었다. 더이상 집이 없는 꼭대기는 마을 텃밭이다. 인왕산 기차바위 아래 깊은 골짜기다. 이랑과 고랑을 만든 텃밭에 푸릇한 생명이 자란다.


누군가의 흙 묻은 목장갑과 삽자루가 하얀꽃 피어난 나무줄기에 놓였다. 산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두서없이 피어나 산골짜기 마을 텃밭을 에워쌌다. ‘꽃대궐’이었다. 안평대군은 꿈에서 본 풍경을 찾아 헤맸다지만, 현실에서 본 이 풍경이 마음에 남았는지 꿈에서도 보였다.

종로구 능금마을과 백사실계곡의 신록

종로구 백사실계곡에서 능금마을로 가는 길

종로구 부암동에 조선시대부터 능금을 키우던 마을이 있다. 이른바 ‘능금마을’이다. 1970년대까지도 능금을 키워 내다 팔았다. 마을 안 도랑 건너 작은 밭에 이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옛날에 개성에서 가져온 능금나무가 있다. 한창때는 능금이 많이 달렸다고 한다. 지금은 이 마을에도 능금나무를 잘 볼 수 없어 몇 해 전 새로 몇 그루를 심었다. 옛날에는 과수원 울타리가 앵두나무였다.

능금마을 도랑을 따라 내려간다. 산기슭오솔길 옆 도랑물에 도롱뇽, 산개구리, 버들치, 가재가 살고 있단다. 생태경관보전지역이다. 도랑 옆은 밭이다. 도랑에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 숲으로 들어간다. 백사실계곡이다. 그러니까 능금마을은 백사실계곡의 상류다.

백사실계곡에 주춧돌 박힌 빈터와 연못이 있다. 한때는 조선시대 사람 백사 이항복의 별서 터라고 알려졌는데, 얼마 전에 추사 김정희가 백사실계곡 별서의 주인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여졌다.

신록 물들 때면 하늘을 가린 숲을 통과한 햇볕이 푸른빛의 가루가 되어 숲을 연둣빛으로 밝힌다. 꽃은 형형색색으로 봄을 알리지만 이 숲에서는 연둣빛 하나로 봄이 가득하다.

종로구 인왕산 서쪽 산비탈 봄꽃 군락

산비탈 전체가 바위 절벽이다. 바위로 된 산이다. 굵직한 절벽의 선과 육중한 바위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인왕산 서쪽 바위절벽 산비탈에 산수유와 개나리, 진달래, 산벚꽃이 어울려 핀 봄꽃 군락지가 있다. 그 꽃밭을 거닌다.

인왕산 산수유 군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고 조망 지점은 안산이다. 인왕산과 안산을 잇는 생태통로(구름다리)를 건너 안산 봉수대 동쪽 절벽에 난 길을 따라 봉수대 쪽으로 올라간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인왕산 산수유군락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 봉수대에 올라 보는 것도 좋고, 봉수대로 올라가면서 보는 풍경도 좋다.

서대문구 안산 동쪽 산비탈 산벚꽃과 신록

안산 봉수대에서 인왕산 쪽을 바라본다. 정상에서 흘러내린 산비탈이 산벚꽃과 신록이 조화를 이룬 신비한 색감으로 가득하다. 산비탈 바위 절벽 위에 간신히 얹힌 커다란 바위가 아슬아슬하다. 그 바위 틈바구니에서 소나무가 한 그루 자란다. 소나무 뿌리 언저리 붉은 진달래 한 포기도 소나무의 생명력처럼 강하다. 연둣빛 신록과 하얀 산벚꽃, 간혹 피어난 붉은 진달래가 어울려 파스텔톤으로 빛난다.

“꽃 앞에 서면 꽃처럼 화사해져…꽃 보는 그 마음 숨길 수 없어”

인왕산엔 개나리·진달래 어울려 피고

안산, 연둣빛 신록-하얀 산벚꽃 ‘조화’

강서습지, 조팝나무-민들레 ‘봄 완성’

그 풍경 속에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오솔길이 숲에 서사를 더한다. 얼마나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숲속을 걸었을까? 저 길을 다니는 사람들은 알까? 자신의 일상이 오늘도 저 숲에서 빛난다는 걸.

성동구 신답역~용답역 청계천 둔치 매화꽃길

매화가 청계천 둔치 길에 즐비하다. 성동구 신답역에서 용답역 사이 청계천 둔치길 약 1㎞ 구간은 매화꽃길이다. 꽃길 중간에 푸른 잎의 대나무도 있다.

제2마장교 아래 둔치 길로 내려서면서 매화꽃길은 시작된다. 이곳은 햇살 맑은 날 찾는 게 좋다. 하얀 매화꽃에 맑은 햇살이 비치면 꽃잎의 가장자리 윤곽선이 희미해지면서 햇볕 속으로 녹아드는 것 같다. 매화의 은은한 향기 또한 햇살에 휘발되는 느낌이다. 홍매화는 그 색이 도드라진다. 파란 하늘, 하얀구름, 붉은 꽃, 꽃 아래 서서 하늘을 배경으로 홍매화를 올려본다. 줄지어 선 대나무 푸른빛을 배경으로 피어난 홍매화도 보인다.

매화꽃길 청계천 일부 구간은 철새보호구역이다. 논병아리, 고방오리, 청둥오리, 쇠오리, 비오리 등 철새가 머문다.

강서구 강서생태습지공원 조팝나무 군락

달콤한 향기로 치면 조팝나무꽃을 빼놓을 수 없다. 작은 꽃들이 가지마다 옹기종기모여 풍성하게 피어난다. 꽃잎을 떼어놓고 보면 작지만 그 꽃잎들이 모여 이루는 조팝나무는 풍요로운 밥상 같다.

강서07 마을버스 종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강서습지생태공원에 조팝나무꽃 군락이 있다. 어른 키보다 큰 조팝나무가 연둣빛 물오른 한강 둔치 수양버들과 어울렸다. 바람이 불면 조팝나무꽃의 달콤한 향기가 공중에 가득하다.

조팝나무꽃 군락의 향연은 풀밭에 낮게 엎드려 피어나는 민들레꽃과 함께 어울려 봄을 완성한다.

강동구 강일동 가래여울마을 라일락

강동구 가래여울마을에 오래된 라일락이 한 그루 남아 있어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마을에서 3대째 이어 사는 어느 집 대문옆에 오래된 라일락이 있다. 오래전에 줄기 굵은 라일락을 직접 심은 것이다.

세월이 지나며 사람들은 늙고 나무는 점점 커졌다. 나무가 마음 놓고 가지를 뻗도록 담장 일부를 허물었다. 골목으로 나온 가지지만 제법 굵다. 담장 안에 있는 가지 또한 만만치 않은 굵기다. 두 가지를 키워낸 줄기 밑동이 어마어마하다.

오래된 라일락 나뭇가지는 쇠기둥의 부축을 받고 있다. 집은 낡아지고 사람은 나이드는데, 라일락은 해마다 봄이면 분홍빛 꽃을 피워낸다. 사랑의 맹세처럼 달콤한 라일락 꽃향기와 함께.

중구 남산 꽃길

남산에 난 길 중 장충체육관 뒤에서 시작해서 국립극장을 지나 오래된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정상에 오른 뒤 숭례문 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남산의 빼놓을 수 없는 꽃길이다. 장충체육관 뒤 동호로17길은 한양도성 성곽과 나란히 걷는 길이다. 성벽 밖 길로 걷는다. 벚나무가 높은 성벽 위로 솟아 고개를 내밀었다. 바람에 꽃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꽃비다. 낙화가 아름다운 벚꽃, 이 길의 매력은 꽃비, 벚꽃의 낙화다.

국립극장으로 가는 길에 남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도로가 보인다. 그 풍경 끝에 관악산이 있다. 남산에 피어난 산벚꽃과 신록이 어우러진 풍경이 도로 주변에 가득하다. 국립극장을 지나 남산순환버스가 가는 길도 벚꽃 천지다. 그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오른쪽에 한양도성 성곽과 성곽 바로 옆에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한양도성성곽 중 가장 오래된 성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수백 년 전 성곽 앞에 피어난 신록과 꽃이 새롭다. 남산 정상 서울타워 옆 전망대에서 보면 신록으로 물든 푸른 숲의 바다에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벚꽃의 하얀 띠가 보인다. 그 풍경과 도심이 이룬 경계선은 자연과 문명의 경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에 와룡매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은 창덕궁의 매화나무를 일본으로 가져갔다. 매화나무는 일본의 한절에서 자랐다. 그 절의 주지 스님이 사죄의 뜻을 담아 안중근 의사 순국 89주기에 그 매화나무의 후계목을 한국에 전했다. 지조 높은 매화가 피었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