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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 중심, 어우러져 사는 문화 만들 것”

향교 역사상 첫 여성 전교 당선된 안순복 강서구 양천향교 전교

등록 : 2022-03-17 16:20
안순복 양천향교 전교가 10일 양천향교 명륜당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안 전교는 지난해 12월 향교 역사상 첫 여성 전교에 당선됐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전교는 향교 수장인 ‘교장’ 의미 지녀

양천향교, 전국 유일 서울 소재 향교

20년 전 향교 입문, 봉사활동 돋보여

“국가문화재 지정, 역사관 건립 추진”

“여성 전교라고 해서 특별한 게 아닙니다. 전교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죠.”

안순복(61) 양천향교 전교는 향교 역사상 첫 여성 전교다. 안 전교는 지난해 12월 전교를 뽑는 양천향교 유림총회에서 양천향교 32대 전교에 당선됐다. 전교는 향교의 수장으로 요즘으로 치면 학교 교장인 셈이다. 10일 양천향교에서 만난 안 전교는 여성 전교라는 데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안 전교는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받으니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깨가 무겁다”며 “앞으로 양천향교를 발전시키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선 태종 11년(1411년) 건립된 양천향교는 60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전국에 있는 향교 234개 중 서울에 있는 유일한 향교이기도 하다. 양천향교가 서울에 있는 것은 행정구역의 변천 때문인데, 양천향교가 있는 강서구 가양동은 원래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에 속해 있었지만 1963년 1월부터 서울시로 편입됐다. 양천이라는 지명은 1311년 고려 충선왕이 당시 공암현을 양천현으로 개명하고부터다. 특히 가양동 지역은 현아와 향교 등 정치와 교육을 담당하는 주요 시설이 있는 양천현의 중심지였다.


“떠밀리다시피 전교가 됐습니다. 주위 분들이 한번 해보라는 권유로 하게 됐는데, 책임이 크다는 걸 느끼죠.”

여성이 전교가 되면 안 된다는 ‘향교법’은 없다. 안 전교가 전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금녀의 벽’이 두꺼운 성균관에 여성 부관장이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고부터다. “성균관 부관장이 여자인데, 나도 해보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안 전교가 당선된 데는 남다른 봉사활동 영향이 컸다. 강원도 고성이 고향인 안 전교는 결혼 뒤 줄곧 가양동에서 살다가, 20여 년 전 양천향교에 입문했다. “그동안 봉사활동을 많이 했죠. 양천향교를 위해 많은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지금도 지역사회와 향교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안 전교는 10년 전부터 양천향교 여성유도회 회장, 강서구 적십자협의회 회장 등을 맡아 대소사를 가리지 않고 일했다. 여성유도회는 여성 유림 모임이다. 1945년 10월 해방 이후 전국의 유림 대표 2500명이 성균관 명륜당에 모여 유도회를 만들었다. 이후 1975년 5월 여성 조직인 여성유도회가 만들어졌는데, 양천향교 여성유도회는 1991년 만들어졌다. “서울의 경우 직장을 다니는 남성에 비해 여성유도회가 더 활성화돼 있습니다.” 안 전교는 양천향교에서 대소사를 여성들이 더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향교는 조선시대 공립 교육기관인 ‘학교’다. 양천향교에는 공자와 성현들의 위패가 있는 대성전, 교실인 명륜당과 숙소인 동재와 서재 등 주요 건물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위(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 송조4현(주돈이·정호·정이·주희), 설총과 최치원을 비롯한 국내 유학자 18현 등 총 27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석전대제를 지내고,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례를 올린다. 중요무형문화재(85호)인 석전대제는 공자를 기리는 제사를 가리키는 명칭이고, 상정일은 첫 번째 정(丁)자가 드는 날이다. 분향례는 대성전에 향을 올리는 것을 뜻한다.

양천향교는 일제강점기에도 제향을 한 번도 거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안 전교는 “양천향교는 지방 수령이 석전제를 주관해 지냈는데, 지금은 강서구청장이 초헌관이 돼 석전제를 지내고 봄학기와 가을학기 개강식을 겸하고 있다”고 했다.

양천향교는 1990년 6월 서울시 문화재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됐고, 양천향교에서 보관하고 있던 양천현 홀기가 2009년 3월 서울시 문화재 자료 제44호로 지정됐다. 홀기는 제례 의식의 진행 순서를 기록한 내용을 담은 문서다. 안 전교는 “양천향교를 국가 문화재로 등록을 추진하고 역사관도 건립할 계획”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지금은 주춤한 상태죠.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더욱 활성화해갈 계획입니다.”

양천향교는 2016년부터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비롯해 텃밭 가꾸기, 장 담그기, 다문화사업, 유교 활성화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올해는 성인과 아이들을 위해 예절, 시경, 한시, 서예, 명심보감, 시조창(경기민요), 한국무용, 목공·목공예 등 강좌를 준비하고 있다. 양천향교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생활 규범인 사자소학을 가르친다. 배례법, 인사예절, 인성교육 등을 위주로 2주 동안 하며 무료다.

양천향교는 20여 년 전부터 전통혼례도 올리고 있는데, 결혼식 30일 전에 신청하면 된다. 또한 아이가 태어나면 집안 어른이 이름을 짓는 작명례 행사도 요청하면 실시한다. 앞으로 매년 1회 성년례 행사, 70살이 넘은 노인을 위한 잔치 길호연도 열 계획이다.

안 전교는 올해 양천향교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양천향교 입구에서 대성전까지 오르는 계단이 가팔라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이 올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향교 밖에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쉽게 대성전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동안 양천향교가 많은 풍파를 겪었습니다. 앞으로 웃음꽃 피우면서 많은 사람이 자주 올 수 있는 향교를 만들고 싶습니다.” 안 전교는 “유림이 화합하도록 만든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향교를 중심으로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문화를 만들어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