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함께 읽고 다른 가치 발견한다면 너무도 큰 수확”

카페 ‘책읽는고양이’ 열고 시네마토크 진행하는 조선희 작가

등록 : 2022-03-17 17:12
지난해 5월 낙산공원 꼭대기에 카페 ‘책읽는고양이’를 오픈한 조선희 작가는 이곳에서 책과 영화와 관련한 다양한 일들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오는 5월 오픈 1주년에는 ‘책읽고 초이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북카페의 성격을 조금 더 분명히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5월 코로나 시국에 카페 열고

올겨울 매달 영화 상영과 토크 진행

유명 여성감독 데뷔 전 단편 보고 토론

스무 명 참여 공간은 하루 만에 마감돼

5월 오픈 1주년 맞아 본격 행사 계획

매달 책 선정…저자 인터뷰·토크 진행

책 판매 시작하며 북카페 성격 분명히


“책 함께 읽는 ‘좋은 책 보급 거점’ 될 것”

“여기서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이 어떤 가치를 발견한다면 그것이 기대했던 수익이 아닐까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5월 카페 ‘책읽는고양이’를 오픈한 조선희 소설가는 이 공간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수익면에서 본다면 단지 공간을 내주고 임대료를 받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그가 오랫동안 꿈꾸던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된 것이라 고백했다.

조 작가는 지난 11일,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낙산공원 꼭대기에 있는 이 카페에서 시네마토크 ‘여성감독들의 수업시대’를 열었다. 정면에 보이는 남산뿐 아니라 인왕산·북한산·도봉산·불암산 등에 둘러싸인 이곳은 어느새 책과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사랑방으로 자리잡았다. 그가 이곳에서 프로그램을 연 계기는 공공기관 대표로 임기를 마친 지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집필을 마치고 드디어 <세 여자>(한겨레출판 펴냄)라는 역사소설이 세상에 빛을 보기 몇 해 전부터 가졌던 “작은 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싶다”는 바람이 이 공간의 출발점이다. 서울을 대표하는 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근사한 서울 야경을 볼 수있는 이 카페는 그가 좋아하는 고양이와 관련한 소품으로 꾸며졌고, 안에서는 책과 영화와 관련한 일들이 수시로 펼쳐진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이후 지난겨울 4개월동안은 매달 한 차례씩 영화 상영과 시네마토크가 함께 펼쳐지는 ‘여성감독들의 수업시대’를 열었다. ‘책읽고의 겨울밤, 시네마토크’라는 부제를 달고 시작한 이 행사는 지난 12월 작가 김초희를 시작으로 김도영·윤가은·심혜정을 라인업으로 꾸렸는데, 주목받는 여성감독들이 데뷔 전에 찍은 단편영화들을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눠보는 프로그램이다.

카페 1층 공간이 넓지 않아 매회 스무 명정도 신청받다 보니 페이스북에 공지하면 대개 하루 만에 신청이 마감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앞으로 여러 가지 주제와 형식으로 진행될 텐데 3월에는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 극장 상영이 끝나면 바로 상영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은 성공한 감독’의 작품을 단순히 소개하는 것을 넘어서 굳이 ‘감독들의 데뷔전 단편을 소개하는’ 것을 테마로 잡은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역사를 궁금해하죠.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작자라면 그 마음의 경로, 무엇이 그의 지금을 이끌어냈는지, 삶이라는 지속적인 혼돈을 어떻게 돌파해왔는지, 동시대의 보이지 않는 대중에게 말을 걸 때 어떤 용기가 필요했는지, 어떤 사람이 왜 지금의 그인지 궁금하잖아요. 감독들에게 그런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이 또한 문화계 오피니언 리더로, 동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소박한 곳에서 이웃들을 만나 책으로 소통하고 싶은 조 작가의 오래전 초심과 통한 것이 아닐까.

지난 3일 서울문화재단 월간지 편집팀원들이 ‘책읽는 고양이’에서 열린 <상식의 재구성> 북토크에 참석해 조선희 작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조 작가는 2017년 소설가로서 <세 여자>를 펴낸 데 이어 2021년에는 저널리스트로서 <상식의 재구성>(한빛비즈 펴냄)을 발간했다. 단순히 책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독자와의 만남을 이어온 그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세상 밖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와 직접 만날 때의 감정은 특별하다고 설명했다. “카페 이름도 ‘책읽는고양이’지만, 책을 함께 읽고 나누는, 좋은 서적을 보급하는 거점 공간을 염두에 두었어요. 어떻게 보면 북카페가 되는 셈인데, 작년에 낸 책 <상식의 재구성>으로 북토크를 시작해보는 거죠. 방역 문제도 있어서 크게 펼칠 형편은 아니지만 지인들끼리 3~6명까지 모여 신청해오면 제가 수시로 시간을 내려고요. 사적 모임 제한이 풀리면 15~20명까지 가능하겠죠? 카페 2층이 그런 모임에 딱 좋거든요.”

2019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6개월반 동안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과의 방문학자로 독일에 머물면서 한국 사회를 거리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 <상식의 재구성>을 쓰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소설이라는 형태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를 매핑해보는 글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당대의 혼돈을 규명해보고 싶다는, 기자로서 예전부터 꿈꾸어오던 일을 실현한 책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1929 미국 대공황> <어제의 세계> 등 세 권의 책이 이런 꿈을 충동질했을 수 있어요. 하지만 내 능력밖의 일이라 여겼는데 2019년 봄에서 여름까지 대일관계, 그다음은 법무부 장관 지명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의 갈등이 폭발하는 한복판을 통과하면서 책에 대한 구상이 구체화됐어요.” 독일 사회는 여러 면에서 한국 사회와 비교 대상과 레퍼런스가 될 만하다며, ‘민주주의 멀미’나 ‘이념 트라우마’ 등이 책의 일곱 개 챕터 가운데 하나로 ‘독일의 경우’를 넣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지금은 주저하고 있는데, 소설 <세 여자>로 총 96번의 북토크를 진행한 조 작가는 오는 5월 오픈 1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열 계획이다. 대략 이때부터는 ‘책읽고 초이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북카페의 성격을 조금 더 분명히 하게 될 것이란다. 매달 책 한 권씩 선정해 저자와 인터뷰도 하고 작가도 모시면서 북토크를 열 뿐아니라 책 판매도 할 계획이다.

“사회생활의 첫 20년을 기자로 보냈어요. 그다음엔 작가로, 또 어쩌다 공직자로 시간을 보냈네요. 그런데 60대는 이 카페에서 주로 보내게 될 거 같아요. 책은 언젠가 또 쓰겠죠? 똑 떨어지는 깔끔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소설을 쓸지도 몰라요. 하지만 분명한건 절대로 ‘얇은’ 책을 쓸 생각이에요. <상식의 재구성>처럼 두꺼운 책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웃음)”

글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아이티(IT)팀장

사진 백종헌 <씨네21> 기자

△ 조선희 작가는 고려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연합통신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뒤 1988년<한겨레> 창간에 참여해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영화 주간지 <씨네21> 편집장(1995~2000), 한국영상자료원 원장(2006~2009),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2012~2016)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상식의 재구성>(2021), <세 여자>(2017), <클래식 중독>(2009) 등이 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