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엔젤’ 애칭, 쑥스럽지만 좋아합니다”

소외계층 자활 돕는 안창권 성북구 돈암1동주민센터 주무관

등록 : 2022-03-24 16:06
지난 10일 성북구 돈암1동 주민센터에서 복지 담당 안창권 주무관이 이재근 할아버지(뒤쪽)가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손수 쓴 손편지를 보여주며 활짝 웃고 있다. 안 주무관은 임차료와 관리비가 밀려 강제퇴거 위기에 처했던 할아버지가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10년 전 어려운 이들 돕고 싶어 전직

작은 도움에 변하는 모습 보며 보람

궂은일 마다치 않아 ‘엔젤’이라 불려

“앞으로도 ‘쭉~’ 불리게 노력할래요”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네. 덕분에 큰 힘이 되었어요.”

이재근(69) 할아버지가 지난 10일 성북구 돈암1동 주민센터를 찾아 안창권(44) 주무관에게 직접 쓴 손편지를 건네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3년 전 노모가 돌아가신 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살고 있다. 빌린 돈을 갚느라 임대료와 관리비가 밀려 강제 퇴거 위기에 처했는데, 건강마저 나빠져 일을 못하고 있었다.

안 주무관은 복지관을 통해 할아버지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됐다. 그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여러 기관과 협력해 할아버지가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부족한 돈은 할아버지가 학창 시절 취미 삼아 배운 기술로 중고가전을 고쳐 팔아 메울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왔다. 안 주무관과 함께 <서울&>과 만난 이 할아버지는 “빚도 갚으며, 재능 나눔을 하면서 이웃도 도우며 살고 싶다”고 했다.


안 주무관에게 사회복지 공무원은 천직이다. 그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공감하고 배려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복지 대상자들을 상담하고 말동무하는 게 어려웠던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남을 돕는 일에 타고난 것 같다고들 주위에서 말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가 자신의 천직을 찾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적성에 맞지 않아 졸업 뒤 진로를 바꿔 사립학교 행정직원으로 일했다. 장애인을 돕는 여러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회복지사가 적성에 맞는 직업이라는 걸 깨달았다. 퇴사하고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1년여 공부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복지관에서 일할 생각이었는데, 주위에서 공무원이 되길 권했다. 1년 반 정도 준비해 합격했고, 2012년 경기도 가평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사회복지 공무원의 꿈을 이루긴 했지만, 처음엔 갈등도 있었다. 복지제도 제약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데 한계가 적잖았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긴급복지 등 서비스가 다양하지 않았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를 자주 해야 했다.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시작했는데 제도 안에서 못하는 게 너무 많아 힘들었다”고 했다.

안창권 주무관은 할아버지가 취미로 배운 전자기기 수리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도와주려 한다. 사진은 동주민센터에 있는 커피포트를 함께 살펴보는 모습.

그러나 그는 자신의 도움으로 복지 대상자들이 변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끼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한다. 90대 노모와 50대 자매 가구는 자매가 음악을 전공할 정도로 유복했다가 친척 빚보증 등으로 경제적으로 힘들어졌다. 세상과 거의 단절한 상태로 지냈다. 그는 자매의 건강부터 챙겼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의 병원 동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세심하게 돌봤다. 자매는 차츰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엄마가 장애인인 가구엔 식품권이 배급되었지만, 아이들이 제대로 쓰기 힘들었다. 그는 퇴근 뒤 아이들과 마트에 가서 시장을 봐줬다. 월말이 되면 그달 식품권을 다 써 아이들이 쫄쫄 굶는 상황이 생기지 않게 미리 챙겼다. “대상자마다 성격, 상황이 거의 달라 응대가 어렵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대부분 마음의 문을 연다”고 그는 말했다.

힘들 때도 있다. 대상자가 무턱대고 거부하는 경우다. 병원 진료를 오랫동안 설득해왔던 70대 홀몸 어르신이 지난달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가정방문을 했을 때 집이 너무 지저분해 여러 차례 얘기해 청소와 도배, 장판 교체 등 간단한 수리를 했지만, 병원 진료는 끝까지 거부했다. “더 열심히 설득해 진료받으셨으면 좀 더 사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그는 아쉬워했다.

코로나19 시기 복지 대상자들을 더 챙기지 못하는 걸 그는 안타까워했다. 많은 어르신이 홀로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우울감을 호소해 심리적 지원 사업도 필요해 보인다. “확진자가 늘면서 생활지원비 신청자가 급증해 관련 업무처리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며 “이럴 때일수록 더 챙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솔선수범이 몸에 밴 사람.’ 안 주무관과 일해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이다. 밝은 표정과 부드러운 말투로 친절하게 복지 대상자들을 대하고, 조곤조곤하게 정보를 전달하며, 상대방이 이해할 때까지 여러 차례 반복해 말해준다. 동료들에게도 ‘제가 같이할게요’ ‘제가 도울게요’라며 손을 먼저 내민다. 궂은일을 마다치 않고 도맡아 한다고 ‘엔젤’이라는 애칭도 생겼다.

그는 “엔젤 애칭이 부담스럽고 쑥스럽지만 싫지는 않다”고 웃으며 말했다. 10년 뒤에도 엔젤이라 불릴 수 있게 지금처럼 꾸준히 해나갈 생각이다. “사회복지 팀원끼리 협력해 더 많은 주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바람을 덧붙였다.

글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