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역사 교차로에서 만나는 푸근한 ‘보석’

반전 매력이 숨어 있는 중구 중림동

등록 : 2022-03-24 16:27 수정 : 2022-03-30 14:24

유독 숨은 매력이 많은 동네가 있다. 감춰진보석 같은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야 마는 동네가 있다. 중림동이 그렇다. 조선시대 칠패시장을 거쳐 현대의 서울역까지. 중림동은 언제나 사람이 모이는 곳이었다.

이 때문일까 중림동에선 1970년대 문을 연 노포부터, 역사 명소, 엠제트(MZ)세대 핫플까지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숨 쉰다. 성큼 찾아온 봄, 나들이 장소를 고민하고 있다면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동네, 중림동을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추천 코스는 성요셉문화거리, 약현성당, 서소문역사박물관, 손기정도서관을 거쳐 만리재로까지 이어지는 약 2.3㎞의 여정이다.

충정로역 4번 출구에서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서면 고소한 참기름 내가 콧속을 자극한다. 성요셉아파트 1층 방앗간에서 풍기는 향이다. 성요셉아파트는 1970년에 지어진 국내 최초 주상복합 복도식 아파트다.

100m 남짓한 거리에 50년 세월을 품은 아파트와 공방, 커피숍 등 젊은 감각의 가게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성요셉문화거리에서 5분 거리엔 약현성당이 있다. 약현성당은 1892년에 지어진 국내 최초 서양식 성당이다. 천주교 신자들이 대거 처형된 서소문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지어졌다. 한국 근대 건축사에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 곳이다. 아담한 성당을 둘러싼 풍경과 분위기가 고즈넉해, 누구나 마음을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다.

약현성당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서소문역사공원이 나온다. 조선시대에 “형장은 서쪽에 놓는다”고 한 <예기>의 규정에 따라, 바로 이 자리에서 무수한 ‘국사범’이 처형됐다. 조선 말기엔 천주교 신자가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처형된 순교자의 넋을 기리고 그 역사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높은 층고의 적벽돌과 거친 질감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진입로를 따라 내려가면, 위에선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지하 3층 규모의 박물관은 크게 10여 개 공간으로 나뉜다. 이들을 관통하는 주요 장치는 ‘햇빛’이다. 지하에 있지만 주요 공간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들어와 거룩한 느낌을 자아낸다.

지하에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면, 이젠 지상으로 올라올 차례다. 박물관에서 서부교차로를 따라 내려오면 손기정공원에 도달한다. 손기정문화도서관은 공원 왼쪽 핵심지에 자리잡고 있다. 다른 도서관이 독서만을 위한 공간이라면 손기정문화도서관은 복합문화공간에 가깝다. 1층 물의 정원과 이를 따라 조성된 산책길을 통해 독서와 사색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2층 자료실엔 캠핑·다이닝룸 등 주제를 설정해 공간을 꾸리고 그것에 맞게 서적을 배치했다. 매달 1회 클래식 공연 등을 진행하는 토요예술무대, 바리스타나 식물 세밀화 그리기 같은 소모임 활동도 수시로 진행된다.

도서관에서 마음의 양식을 채웠다면, 이제 몸의 양식을 채울 차례다. 서울로 7017 옆대로변은 ‘뉴트로’ 감성으로 엠제트세대의 뜨거운 관심을 얻는 거리다. 100년 된 돌 건물에 자리잡은 퓨전음식점. 1932년 지어진 적산가옥에 자리잡은 베이커리 카페 등 오래된 공간을 요즘 유행하는 감성으로 꽉 채운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반대로 중림동삼거리엔 노포들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1970년대 문을 연 설렁탕집, 닭볶음탕집 등이다. 모두 동네 골목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가게들이다. 올봄엔 중림동을 찾아, 그 매력을 ‘200%’ 느껴보길 바란다.

박혜정 중구 언론팀 주무관

사진 중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