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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졌던 선거 현수막 400장, 장바구니 700개로 다시 쓰여

등록 : 2022-03-31 15:15
종로구는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는 선거철을 맞아 폐현수막을 활용해 장바구니를 만드는 새 활용 사업을 추진한다. 구는 20대 대선이 끝난 뒤 현수막 400여 장을 수거해 3월15일 폐현수막 재활용업체 ‘녹색발전소’로 보냈다. 녹색발전소는 분류, 재단을 거쳐 천에 투명페트병 분리배출홍보 라벨을 붙여 재봉해 장바구니를 만들었다. 1 종로구 선별작업장에서 직원들이 수거해 온 폐현수막을 마대에 담고 있다. 2 녹색발전소 직원들이 조립식 창고 앞에서 마대를 풀고 분류 작업에 들어갔다. 3 노끈, 나무 막대 등을 떼고 남은 천을 재단하기 위해 재단대 위에 올렸다. 4 장바구니는 정확한 치수로 재단해야 해 작업자들이 조심스럽게 전동재단기로 재단하고 있다. 5 재봉실에서 재단 천에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홍보 라벨을 붙였다. 6 7일 동안의 재봉작업을 마친 뒤 100개씩 7개 상자로 포장해 종로구로 25일 택배 발송했다. 2·3·4·5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1 종로구, 6 녹색발전소 제공

종로구와 마을기업 ‘녹색발전소’, 수거·분류 뒤 재활용 추진

노끈·각목·원단은 재사용·새활용, 자투리천·코팅종이는 소각

“버려지는 선거 현수막에서 선거관리위원회 검증 확인증 빼고는 모두 재활용하거나재사용할 수 있어요.”

폐현수막 재활용 마을기업 ‘녹색발전소’김순철 대표가 선거 현수막이 든 마대자루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20대 대선이 끝난 닷새 뒤인 3월15일 경기도 파주시 조립식 창고 앞에 1t 트럭이 들어왔다. 트럭에 실린 ‘톤백마대’ 5개엔 종로구청이 수거한 선거 현수막약 400장이 담겨 있었다. 김 대표와 직원 3명이 마대자루를 차례로 끌어내렸다.

60평 크기의 창고 안쪽에는 이미 각종 폐현수막이 수북이 쌓여 있다. 분양 홍보 등을 하는 옥외 광고용 현수막이 대부분이다. 앞쪽엔 분류를 마친 원단과 나무막대가 차곡차곡 놓여 있었다. 창고 입구 빈 곳에서 분류작업이 시작됐다. 가위로 노끈을 자르고 천에서 각목을 분리했다. 천에 붙은 선거관리위원회 검증 확인증과 클립을 뗐다. 10년 넘게 손발을 맞춰온 직원들이 척척 일사천리로 분류작업을 진행했다. 김 대표는 “(비닐코팅으로 재활용이 어려운) 확인증을 도장등으로 바꾸면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을 텐데…”라고 아쉬워하며 말끝을 흐렸다.

오염 정도에 따라 원단은 세 가지 용도로 나눠 재활용한다. 깨끗한 것은 장바구니·에코백 등 가방용, 조금 더러운 건 일반 마대용, 많이 더러운 것은 자동차 정비공장 마대용이다. 노끈은 모아 폐합성수지 공장으로 보내 처리 과정을 거쳐 플라스틱 제품 원료로 재활용한다. 나무막대는 재사용할 수 있게 다시 현수막 제조공장으로 보내진다. 김 대표는 “번호를 써봤더니 같은 나무막대가 우리 쪽으로 일곱 번까지 되돌아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며 “그만큼 재사용이 잘된다고 본다”고 했다.

녹색발전소로 종로구가 선거 폐현수막을 보낸 것은 새활용 사업의 일환이다. 종로구는 선거철을 맞아 폐현수막을 활용해 장바구니를 만드는 사업을 추진했다. 올해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로 폐현수막 배출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해 세운 계획이다. 구는 선거 전후를 폐현수막 집중 수거 기간으로 정하고 수거에 나섰다. 오혜진 종로구 청소행정과 주무관은 “대선 때 약 500장을 수거해 이 가운데 오염이 심하거나 파손된 걸 빼고 약 400장을 녹색발전소로 보냈다”고 했다.


녹색발전소는 환경단체로 시작해 2003년부터 폐현수막 재활용 활동을 해왔다. 지역환경단체가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김대표가 발 벗고 나서 시작했다. 2011년 행정안전부 지정 마을기업이 됐다.

그동안 지자체와 공공기관, 기업이나 개인 등에 장바구니, 마대 등 폐현수막 재활용품을 납품해왔다. “2020년 서울시 확산사업으로 폐현수막 재활용 수거용 마대를 자치구에 납품했는데, 이때 종로구와도 인연을 맺어 올해 선거 현수막 재활용 사업으로 이어졌다”고 김남우 녹색발전소 팀장이 설명했다.

현수막 해체와 분류가 다 끝난 뒤 재단 작업이 시작됐다. 원단을 펴서 재단대로 올려놓는다. 장바구니는 크기가 정확해야 해 한번에 조금씩 조심해서 잘라야 한다. 재단판으로 자를 곳을 매직으로 표시한 뒤 전동 재단기로 잘랐다. 적당한 크기(가로 43㎝, 세로 90㎝)로 재단된 현수막은 재봉실로 옮겨졌다. 재봉실에는 재단한 천들이 곳곳에 쌓여 있고, 작업을 끝낸 장바구니들도 여기저기 걸려 있다.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이 돌아간다.

재단해 온 천은 투명페트병 수거안내 라벨을 붙여 박음질부터 했다. 두 겹을 붙여 인터로크(원단 끝을 둥글게 말아 박는 것)로 처리하고, 뒤집어 오버로크(휘갑치기) 작업을 한다. 끈은 두꺼운 실로 박음질했다. 김남우 팀장은 “끈은 끊어질 걱정을 안 해도 될 정도로 튼튼하게 만든다”고 했다. 김 팀장은 폐현수막 원단의 안전성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녹색발전소는 폐현수막의 안전성 확인을 위해 한국의류시험연구원에 유해성 물질 검사를 진행했고, 현수막 원단에서 유해성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통보받았단다.

“현수막 제작할 때 전량 수거·재활용 계획 먼저 논의해야”

노원, 업체 통해 고형연료로 만들어

강북, 전통시장 연계 장바구니 제작

“사용 최소화 방안 법제화 우선돼야”

재봉 작업 시작 15분 만에 장바구니 한 개가 뚝딱 만들어졌다. 골칫덩어리 환경 쓰레기가 쓸모있는 장바구니로 변신했다. 7일 동안 작업하니 장바구니 700장이 만들어졌다. 장바구니는 25일 종로구에 보내져 재활용품수거 보상품으로 활용된다.

종로구뿐만 아니라 폐현수막 재활용 사업을 추진하는 자치구도 여럿 있다. 몇 년 전에는 환경부, 올해는 행정안전부의 지원사업이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행안부는 1~2월 전국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공모해 22곳의 사업을 선정했다. 서울에선 강북·노원구가 참여했다. 이들 지자체는 폐현수막을 친환경 가방, 모래주머니부터 수거함, 우산, 시멘트 소성용 연료 등 다양하게 재활용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강북구는 지역 사회적기업 ‘나그네 다문화센터’와 재활용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구가 수거한 폐현수막을 센터가 장바구니, 화분보호대, 재활용품 분리수거용 마대, 청소용 마대 등 4가지로 재활용해 만든다. 구는 전통시장이 많은 지역 특성을 반영해, 시장상인회와 손잡고 장바구니를 활용한다. 일회용 비닐 대신 장바구니 사용을 장려해 주민 인식 개선 효과도 노린다.

나그네 다문화센터는 실용성을 높이기위해 장바구니를 접어서 갖고 다니기 편하게 만든다. 잉크 냄새가 덜 나게 합봉 때 인쇄 면을 안쪽으로 해 양겹 박음질을 하고 손잡이는 다른 원단을 사용한다. 허재만 나그네 다문화센터 대표는 “가볍고 튼튼한 특징에 세탁 등 위생처리를 추가하면 활용도를 더 높일 수 있는데 비용이 문제다”라고 했다.

노원구는 폐현수막 재활용 사업을 하는 엔알아이(N.R.I)와 계약을 맺었다. 현재 창고에 철거한 현수막을 모으고 있다. 창고가 꽉차면(3~4t) 업체에서 수집 운반차량으로 공장으로 가져온다. 선별 작업에서 나무는 재사용하고, 원단을 절단기로 가로세로 5㎝의 비성형 고형연료로 만든다.

1t 기준으로 선별한 뒤 원단 500~600㎏이 고형연료가 된다. 고형연료는 사용처(열병합발전, 제지 공장, 스팀(증기) 제조공장 등)에 유가로 판다. 전경호 엔알아이 이사는 “우리회사가 생산하는 고형연료에 대해 분기별로 한국환경공단 검사를 받는다”며 “우수 등급에 중금속이 거의 검출되지 않는다”고 했다.

전 이사는 “재활용이 원활하게 이어지기 위해서는 채산성이 중요하다”며 채산성이 맞기 위해서는 여러 지자체가 같이 해야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버려진 선거 현수막은 노끈부터 나무 막대, 천 등 대부분이 재활용, 재사용된다. 하지만 현수막에 붙은 선거관리위원회의 검증 확인증은 코팅 종이라 재활용이 어려워 소각 처리돼, 도장 등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녹색발전소의 폐현수막 분류 작업에서 남은 선관위 검증 확인증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이번 대선 때 전국적으로 10만 장의 현수막이 사용된 거로 추산된다. 대선 기간 후보를 알리고 투표를 독려하는 역할을 했던 선거 현수막은 선거가 끝나면 바로 골칫거리 환경오염 쓰레기가 된다. 이 때문에 선거 폐현수막재활용 지원에 앞서 사용을 줄이는 법제화부터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녹색연합과 기후변화연구소는 “자원을 절약하고 생산단계에서 재활용을 고려해야 하지만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것”이라며 “선거 현수막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왕 만든 건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순철 녹색발전소 대표는 “선거 현수막은 제작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재활용을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수거와 재활용 방법, 재활용품의 활용 등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부터 각 정당, 선관위, 자치구가 만나 대책을 세워 불필요한 쓰레기와 유해물질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