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들이 천수주말농장에서 함께 만든 물모이.
기후위기 탓에 ‘가뭄 극심 환경’ 되면서
동해안·대모산 등 겨울 산불 잦아져
토양습도 50% 이하면 ‘숲이 불쏘시개’
빗물 저장 통해 토양습도 높이기 중요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 물모이 통해
최근 발생한 산불 피해 규모 최소화해
곳곳에 작은 둔덕 만들어 물 저장 주효
“식목일에 나무와 함께 ‘빗물 심기’ 추천”
열흘 가까이 산림과 마을을 태운 동해안 산불. 남의 동네 얘기가 아니다. 서울은 전체 면적 중 25.6%, 4분의 1이 산림이다. 지난 2월24일엔 노원구 불암산에서, 3월4일엔 강남구 구룡마을과 대모산에서 불이 났다.
올해 들어 3월5일까지 발생한 산불은 모두 245건. 지난해 같은 기간(126건)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기후위기로 가뭄이 심해진 탓이다. 기후위기와 더불어 가뭄 등 극한 기후현상은 더욱 심해질 터. 동네 뒷산을 우리 힘으로 지킬 과학적 해법은 없을까?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 협력사 어스그린코리아에서 폐비닐을 원료로 개발한 계곡 빗물막이. 두 개의 패널 사이에 돌과 흙을 넣어 물모이 겸 화분을 만들 수 있다.
땅과 숲을 촉촉하게 만들어 그 위기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서울에 있다. 그것도 산불이 났던 불암산 바로 아래에.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이하 노도네)와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그들을 만나러 노원구 천수주말농장으로 갔다.
불길은 농장에 이르기 직전에 꺼졌던 모양이다. 불에 그을리고도 살아남은 나무들이 증인처럼 산자락을 지키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 규모는 적었다. 이은수 노도네 대표는 자신도 페이스북을 보고서야 산불이 난 걸 알았다고 했다. 그만큼 불이 빨리 꺼졌다.
“아주 큰 일 날 뻔했어요. 바로 우리 턱밑까지 와 있더라고요. 천만다행이죠. 주민이 즉시 신고해서 소방서에서 바로 왔대요.”
노원구청에 확인해봤다. 불길이 6천㎡를 휩쓸었는데, 나무는 다섯 그루만 불탔다고 했다. 이종혁 노원구 푸른도시과 주무관은 “주민 신고 덕분에 소방헬기가 10분 만에 갔다”며 “침엽수보다 활엽수가 많은 덕도 봤다”고 말했다.
활엽수는 침엽수보다 불에 강하다. 참나무류는 365도, 소나무류는 320도에서 불이 붙기 시작한다. 착화시간, 즉 불이 붙는 데걸리는 시간은 참나무류가 68초, 소나무류는 42초다. 산불이 잦은 강원도 산림은 건조한 토양에 강한 소나무가 주요 수종이다.
동해안 산불을 키운 또 다른 원인 중 하나가 토양습도다. 그린피스는 동해안 산불 당시 토양습도가 약 35%였다고 보고했다. 토양습도가 50% 이하로 떨어지면 식물의 수분 활용이 줄어들어 ‘숲이 불쏘시개’가 되기 시작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런데 만약 토양습도를 높일 길이 있다면?
이은수 노원 도시농업네트워크 대표가 천수주말농장의 빗물탱크를 통해 모은 물을 보여주고 있다.
농장에서 불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옆에는 빗물의 길이 따로 있다. 경사를 따라 30~40㎝ 정도 얕은 구덩이를 파거나 나무를 땅에 박아 작은 둔덕을 만들었다. 비가 내리면 이곳으로 빗물이 모인다. 물을 모으는 곳, ‘물모이’다.
이 대표는 농장의 물모이 10여 개 중 하나로 안내했다. 일주일 동안 거의 비가 내리지않은 시기였는데도, 그곳엔 물이 고여 있었다. 장화가 발목 이상 잠길 정도로 고인 물을 찰박대며 이 대표가 말했다.
“제 별명이 비버예요. 떨어진 나뭇가지만보이면 댐을 만든다고요.”
그와 노도네 회원들이 처음 물모이를 만들기 시작한 건 2019년이다. 한 교수의 ‘지속가능한 물관리’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들이 현장실습 일환으로 만들었다. 이 대표는 물모이를 만든 뒤 세 가지 면에서 좋았다고 말했다.
“우리 경지 70%가 산지잖아요. 경사가 있으니 비가 오면 자꾸 토사가 유출되는데, 빗물이 흐르다 물모이를 만나면 툭툭 걸쳤다가 가니까 흐르는 속도가 느려질 거 아니에요. 그러니 토사 유출이 덜 되더라고요. 물이 고였을 때 땅으로 스며드니 식생도 좋아지고, 가물 땐 짐승들 식수도 되고요.”
물은 흐를 때보다 고였을 때 토양으로 잘스며든다. ‘빗물박사’라고도 불리는 한 교수는 그것을 ‘빗물의 토양 침투가 가진 특이한 성질’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듣기 전에, 우선 토양의 성질을 알아보자. 토양은 토양 입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입자 사이에 ‘공극’이라는 틈이 있어 물과 공기가 채워진다. 토양 윗부분엔 공기와 물이 섞여 있다. 물로 꽉 차지 않아 ‘불포화 토양’이라 불린다. 공기 없이 물로 꽉 채워진 토양은 ‘포화토양’, 지하수가 채워진 곳이다.
“토양의 윗부분은 비가 와도 불포화 토양으로 남아 있어요. 대부분이 표면으로 타고 흘러 강으로 유출되거든요. 그래서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게 하려면 더 오래 고이게 해야 해요. 중력에 의해 아래 방향으로 침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런 빗물이 땅에 저장돼 토양습도를 높여준다. 그것을 한 교수는 “빗물을 심는다”고 표현한다. 강수량이 적더라도 이전 달에 내린 빗물을 땅에 심어두면 토양은 건조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여름에 70%의 비가 옵니다. 그걸 하수도로, 강으로 다 흘려보내 버리죠. 그래서 겨울에 가뭄이 옵니다. 토양에 있는 물의 양을 계좌로 비유하자면, 겨울에는 잔고가 바닥나는 셈이죠. 우리 가정에서 돈을 못 벌 것에 대비해 저축하듯 빗물도 땅에 저축해야 해요.”
빗물 저축은 토양 침식도 예방할 수 있다. 한 교수는 빗물이 빠르게 유출되는 땅에선침식이 빨리 일어나 수백 년 동안 만들어진퇴적토가 바다로 버려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 미생물과 곤충, 조류와 포유류로 이어지는 생태계의 순환고리가 깨진다.
한국보다 건조한 슬로바키아에선 물모이로 산불 지역의 토양습도와 생태계를 복원했다. 슬로바키아의 연 강수량은 650㎜다. 서울 평년값(1400㎜)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 정도로 건조한 지역에서도 통한 해법이라면 한국의 건조한 계절에도 통할 것이라는 게 한 교수의 생각이다.
한 교수와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는 환경재단, 대한적십자사 시니어 봉사단, 서울대 환경동아리와 함께 2일 불암산 산불 현장에 물모이를 만들 예정이다. 이번 산불로 불타 베어진 나무, 산속 돌멩이가 재료로 쓰인다.
한 교수는 동해안 산불 피해지에도 물모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재료는 인근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슬로바키아처럼 죽은 나무를 쓸 수도 있고, 미국 아이다호처럼 돌멩이로 쌓을 수도 있다.
우리 집 뒷산을 바라봤다. 아직 성긴 나뭇가지들 사이로 푸른 나뭇잎이 무성했다. 소나무들이다. 남산 소나무 숲은 국가 산림문화자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불이 잘 붙는 나무라고 홀대할 수 없는 남산의 상징이다. 이번 식목일엔 나무 대신 물을 심어볼까.
글·사진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참고 자료: ‘불포화 토양에서 빗물의 침투특성’(유건선 김상래 김충일 윤현식 한무영, 2011), ‘산림 화재감식 응용을 통한 내화림 조성에 관한 연구’(박영주,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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