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구 수유1동에 있는 마을 펍 ‘수유맥주’가 운영 100일을 맞았다. 2016년 주민 소모임으로 시작해 회원 5명이 동네를 알리는 수제맥주를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다. 4년 동안 맥주 만들기, 레시피 개발, 시음회 등을 거쳐 지난해 말 사업화에 이르렀고, 앞서 지난해 7월엔 수유수제맥주프로젝트협동조합을 창립해 올해 1월 매장을 열었다. 주민들이 편안한 공간에서 질 좋은 맥주를 즐기며 이웃들과 교류할 수 있게 운영해나가려 한다. 지난 2일 마을 펍 ‘수유맥주’에서 안주 레시피 공모전 조리심사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만든 요리를 심사위원들(조합원들)이 시식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강북구 수유수제맥주프로젝트협동조합, 도시재생사업 주민 공간 활용
운영 100일 맞아 안주 레시피 공모전 열어 “지역 브랜드로 커나갈 것”
“통삼겹살, 돈가스 같은 고기류 안주는 이미 있으니, 두부로 만드는 찹스테이크를 떠올려봤어요.”
지난 2일 오전 강북구 수유1동에 있는 빨래골(수유1동 일대 옛 명칭) 생활문화공작소 2층 마을 펍 ‘수유맥주’에서 안주 레시피공모전 조리 심사가 시작됐다. 지원자들은 메뉴를 어떻게 선정했는지부터 심사위원들에게 설명한다. 주민 조혜진씨는 “등산 갔다 마을 펍에 왔는데 좋아하는 빨간 떡볶이 안주가 없어 아쉬웠다”며 ‘통구이 새송이 사골 라볶이’를 제안한 이유를 말했다. ‘요정꿈’(요리하는 정원사를 꿈꾸다) 주민모임의 김미애씨는 “회원들이 만드는 쿠키를 활용하려 카나페 레시피를 내놓았다”고 했다. 지원자들 각자의 테이블엔 준비한 식재료와 조리 도구, 양념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조리시간은 15분이다. 지원자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수유수제맥주프로젝트협동조합(수유맥주협동조합)은 마을 펍 운영 100일을 맞아최근 수유동 주민을 대상으로 안주 레시피공모전을 열었다. 총 6팀이 지원했고, 서류심사를 통과한 3팀이 조리 심사에 참여했다. 심사는 조합원 5명과 김성훈 수유도시재생지원센터장이 맡았다. 주방 담당 조합원 차재혁씨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안전하게 요리”하길 지원자들에게 당부했다.
빨래골 생활문화공작소는 주민 공동이용시설이다. 6년 동안 추진해온 수유1동 도시재생활성화사업의 첫 결과물로 지난 1월15일 문을 열었다. 1층엔 목공방, 2층엔 마을 펍, 3층엔 카페를 겸하는 자원순환가게와 제로웨이스트숍이 있다. 김성훈 수유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워크숍과 공모 사업등을 통해 공간 구상과 설계·시공 전 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했다”며 “층마다 사업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을 꾸려 운영·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 협동조합은 수익이 생기면 일부를 지역사회를 위해 쓴다.
목공방을 운영하는 함수(함께하는 수유1동)협동조합은 집수리단에서 출발해 성장했다. 집수리 교육과 체험학교, 공구 대여 서비스 등을 한다. 자원순환가게 ‘환장’(환경을 생각하는 장)은 주민협의체 에너지자원순환분과에서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교육과 체험, 수거와 판매 등을 통해 친환경 생활방식을 알린다. 자원 재순환을 위해 아이스팩과 유리병, 텀블러, 두부 케이스 등을 수거하고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수유맥주협동조합은 2016년 ‘아빠들의 수다’라는 소모임에서 시작됐다. 애주가 주민 5명이 동네를 알리는 수제맥주를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다. 황성현 이사장은 “지역에 활기를 어떻게 불어넣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직접 만들 수 있고 잘 아는 것으로 지역 브랜드의 수제맥주를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전문 교육, 양조장 탐방을 거쳐 100여 차례 맥주를 직접 만들어봤다. 지역 축제를 통해 시음회를 수차례 하면서 맥주 맛을 다듬었다. 지난해 7월 정식으로 협동조합을 만들고 올해 약 45평 규모의 매장을 열었다. 그 사이 멤버 3명이 바뀌었다. 현재 멤버는 직장인, 지역 활동가, 도시재생 코디 등 하는 일도 다양하다.
마을 펍 문을 여는 과정에 주민 후원이 큰힘이 됐다. 인테리어 비용(3천만원)을 출자금 1천만원과 60여 명의 주민 후원금 2천만원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황 이사장은 “한달 동안 주민들을 대상으로 선구매 방식의 후원을 진행했는데, 시음회에서 맥주를 맛봤던 주민 등 여러 사람이 관심을 갖고 이용권을 기꺼이 사줬다”고 했다.
수유맥주 레시피 개발과 양조장 섭외에도 적잖은 공을 들였다. 강북구의 자랑거리소나무, 산수유를 맥주 재료로 넣어보기도 했지만, 맛이 좋지 않았다. 결국엔 기본을 살려 뒷맛이 깔끔한 ‘수유 페일에일’과 쌉싸름한 맛의 ‘수유 아이피에이(IPA)’ 두 종류 레시피를 정했다.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소규모 양조장 ‘에잇피플 브루어리’에서 위탁 양조한다. 황 이사장은 “지금까지 맛본 맥주 가운데 최고의 수제맥주라고 자부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가격은 착하다. 330㎖ 한 잔에 페일에일은 3900원, 아이피에이는 4500원이다. 수제맥주에 어울리는 안주도 맛있고 저렴하다.
가장 비싼 통삼겹살튀김이 1만7천원, 생연어 샐러드는 1만3천원, 아귀포는 1만원 등이다. 자체 개발한 맥주 외에도 에잇피플 브루어리의 라거, 바이젠, 흑맥주 그리고 수입 병맥주도 판매한다. 신선한 맥주 맛을 위해 케그(맥주 보관통) 냉장고를 갖췄다.
“가성비 좋은 수제맥주와 안주 즐기며 이웃과 교류하는 곳입니다”
2016년 소모임 ‘아빠들의 수다’로 시작
맥주 레시피 개발, 시음 거쳐 사업화
주민들은 2천만원 선구매 방식 후원
참가자들이 준비한 식재료로 조리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황 이사장은 “라벨 디자인을 남녀노소 주민 여럿이 맥주를 함께 즐기는 모습으로 그렸다”며 “마을 펍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세심하게 고려했다”고 했다. “가성비가 좋으면 수익 내기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이 공간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참여 조합원들이 함께 시간을 쪼개 인건비를 받지 않고 재밌게 일하고 있다”고 했다. “찾아오는 주민들의 ‘오래오래 있어 주세요’라는 말에 보람도 느끼고 힘도 난다”고 덧붙였다.
2일 진행된 첫 공모전 최종심사에서 지원자들이 조리를 마쳤다. 심사위원들이 맥주와 함께 직접 음식 맛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재료비, 재료 준비 시간과 방법 등을 묻고, 각자 느낌도 곁들였다. 심사 기준은 수제맥주와 어울리는지, 조리시간이 15분 안팎인지, 맛이나 비주얼이 독특한지, 판매 가격이 1만~2만원대인지 등이다.
조리심사 참가자들의 작품.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잠시 뒤 위원들은 홀에서 공방 안으로 자리를 옮겨 세 팀에 대해 심사 의견을 나누고 당선작을 결정했다. ‘두부로 만드는 찹스테이크’가 만장일치로 뽑혔다. 식었을 때도 맛이 괜찮은 점, 재료를 미리 준비할 수 있다는 점, 양념 배합을 달리해 매운맛 등을 조정할 수 있는 점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결과 발표가 바로 이뤄졌고, 시상식도 진행했다. 김주옥씨는 상금 20만원을, 조혜진씨와 김미애씨는 참가비 5만원을 받았다. 김주옥씨는 “당선작으로 뽑혀 기쁘고, 정식 안주로 메뉴판에 올라가면 뿌듯할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정식 메뉴화는 실제 주방에서 만들어보고 결정할 예정이다.
안주 공모전은 여름용, 겨울용 맥주 시즌에 맞춰 연 2회 개최할 계획이다. 황 이사장은 “시즌 맥주에 잘 어울리는 안주 메뉴를 주민들과 꾸준히 개발해나가려 한다”고 했다.
운영한 지 이제 석 달, 손님들의 반응을 챙기는 노하우도 조금씩 늘고 있다. 손님들의 표정을 보면서 ‘괜찮은지’ ‘불만이 있는지’ 등을 읽어간다. 맛에 대한 의견을 모아 레시피를 보완해나갈 계획이다.
수유맥주협동조합은 마을 펍으로 주민들의 사랑방 구실을 이어나가면서 좋은 일자리를 지역에 제공하기 위해 조만간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신청을 할 계획이다. 올해 수유맥주협동조합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육성사업에 선발돼 창업팀으로 지원받는다.
한편, 수유1동에는 올해 연말까지 5개의 주민 공동이용시설이 잇따라 들어선다. 이달엔 청소년활동지원센터(빨래골 청소년 공간 ‘모락’)가 문을 연다. 마을극장 등이 있는 마을사랑방(빨래골 마을사랑방 ‘수다’)과 중장년 커뮤니티 시설(수유 은빛마당), 생태문화공원과 카페 등 편의시설(빨래골 숲 어울 쉼터)이 조성된다.
마을 펍 ‘수유맥주’는 강북구 수유1동 주민 공동이용시설 ‘빨래골 생활문화공작소’ 2층에 있다. 1월15일 문을 연 빨래골 생활문화공작소는 수유1동 도시재생활성화사업의 첫 결과물이다. 1층엔 목공방, 3층엔 자원순환가게 겸 카페 ‘환장'(환경을 생각하는 장)도 들어섰다. 모두 주민들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이 운영한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이들 시설은 수유1동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마을관리 사협), 도시재생 주민협의체 분과 등 모두 마을 주민들이 운영한다. 마을관리 사협은 지난해 출범해 서울시 1호로 국토교통부 설립인가를 받고, 지역사업형 비영리 수익사업을 펼치고 있다. 김성훈 수유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주민 협동조합들은 지역사회를 위해 공간이 쓰이도록 운영 방향을 잡고 있다”며 “더 많은 주민이 이용해, 살기 좋은 마을로 바뀌어갔으면 한다”고 했다.
수유1동 도시재생활성화사업들은 올해로 끝난다. 강북구, 서울시, 국토교통부가 함께한 10년 프로젝트였는데, 서울시 사업은 시장이 바뀌면서 추진에 어려움이 있고 국토부의 사업 전망도 안갯속이다. 내년부터는 오롯이 주민들의 역량으로 재생사업을 이어가야 하는 형편이다. 실제 주민협의체, 마을관리 사협이 기존에 해왔던 사업들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그간 만들어진 주민공동이용시설과 주민들이 길러온 힘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갈 거라 본다”고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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