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봄 맞아 물오른 숲속 연둣빛, 붉은 꽃보다 아름답다

㊽ 최근 개방한 백악산(북악산) 숲과 향원정, 개운산을 걷다

등록 : 2022-04-21 16:57
개방한 백악산(북악산) 숲. 신록의 연둣빛과 진달래 붉은 빛이 어울렸다.

생명의 빛을 뿜어내는 신록의 기운들

그 생명의 잎사귀가 드리운 그늘 아래

쉬는 이들도 새롭고, 시간 또한 푸르다

땅엔 붉은 진달래, 등불처럼 반짝인다

일반에게 최근 개방된 백악산(북악산) 남쪽 숲을 다녀왔다. 54년 만에 처음 개방한다는 그곳에서 처음 만난 건 도롱뇽이었다. 숲길에서 경복궁 전각들이 보였다. 새로 꾸민 경복궁 향원정이 궁금해서 숲길을 다 걷고 들렀다. 백악산(북악산) 동쪽 개운산 순환산책로도 걸었다. 울긋불긋 꽃대궐에 연둣빛 신록이 빛나지 않는 곳이 없었다.


54년 만에 개방된 백악산 숲길을 걷다

바위에 파인 골을 따라 떨어지는 작은 물줄기가 웅덩이에 고였다 흐른다. 물가에 목련꽃이 졌다. 벚나무에 남아 있는 벚꽃의 하얀색이 푸른 숲에서 도드라진다. 삼청공원 후문 부근 계곡을 보며 도착한 곳은 최근 일반에 개방된 백악산 숲이다.

백악산 한양도성 삼청안내소를 통과해서 54년 동안 일반인의 발길이 끊어졌던 곳에 발길을 내디딘다. 커다란 바위 작은 틈에 핀 진달래꽃을 보고 걷는데 사람들 몇몇이 쭈그려 앉아 무언가 본다. 그들의 눈길이 머문 곳에 도롱뇽 한 마리가 있었다. 사람들 발치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닌다.

계곡을 막아 수영장을 만들었던 곳 부근에서 법흥사터 방향과 만세동방 방향으로 길이 갈라진다. 법흥사터 쪽으로 향했다. 키 큰 나무가 만든 오솔길을 걷는다. 작은 돌무지 두 개와 연둣빛 물오른 나무가 있는 곳을 지나 법흥사터에 도착했다.

법흥사터에 내려오는 이야기는 두 개다. 법흥사는 신라시대 진평왕 때 창건된 절이라는 이야기가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조선시대 세조 임금이 지금의 삼청터널 근처 연굴사 동쪽에서 호랑이 사냥을 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이곳이 연굴사터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법흥사터 한쪽 커다란 귀룽나무에 연둣빛이 한창이다. 가지가 퍼진 만큼 넓게 드리운 그늘에 오가는 이들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데크 계단으로 오르다 그 풍경을 굽어본다. 귀룽나무도 푸르고 사람도 푸르다. 그곳에서 쉬는 사람들의 시간도 푸르게 흘러갈 것 같다.

물오른 신록과 빨간 진달래꽃이 어울린 계단을 지나 올라온 길을 돌아보았다. 공중에선 연둣빛 잎이 반짝이고 땅에선 붉은 진달래가 빛난다. 이 길에선 자꾸 멈춰 뒤를 돌아보게 된다.

전망대에서 아차산부터 청계산까지 펼쳐진 풍경을 바라본다. 요즘 같으면 먼 데까지 보이는 통쾌한 풍경보다 눈 아래 펼쳐진 신록의 연둣빛 숲이 더 마음에 남는다. 전망대 부근에서 숙정문 방향과 만세동방 방향으로 길이 갈라진다.

새로 꾸민 향원정에서 시무나무를 보다

갈림길에서 만세동방 쪽으로 걷는다. 길옆 바위 틈새에서 삐쭉 자란 진달래꽃 뒤로 넓게 퍼진 백악산 숲이 펼쳐진다. 숲이 끝나는 곳에서 도시가 시작된다. 산비탈 응달 한쪽에 햇빛 줄기가 내려와 신록과 진달래꽃 무리를 비춘다. 빛이 닿는 잎과 꽃이 등불처럼 반짝인다. 아무렇게나 자란 소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룬 곳을 지난다. 가지 사이로 경복궁과 세종대로를 보았다. 백악산이 품은 경복궁, 이 숲을 다 걷고 새로 꾸민 경복궁의 향원정을 보러 가기로 했다.

백악산(북악산) 숲 만세동방 약수터.

만세동방 약수터에 도착했다. 바위틈에서 물이 난다. 그 물이 바위의 홈에 고였다 흐른다. 물은 마실 수 없지만 맑았다. 절벽에 ‘만세동방 성수남극’이라는 한자가 새겨졌다. 임금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담긴 글귀다.

산줄기의 굴곡을 따라 오르내리는 길 자체가 예쁘다. 보고 있으면 걷고 싶어지는 길이다. 커다란 바위 옆 소나무 그늘은 보기만 해도 쉬고 싶은 곳이다. 법흥사터 쪽에서 오는 사람들에겐 아마도 마지막 쉼터가 될 것이다. 출발했던 삼청안내소를 지나 삼청동길로 내려섰다. 삼청로를 걸어서 경복궁에 도착했다.

경복궁을 대표하는 풍경인 근정전과 경회루를 두고 곧바로 향원정으로 향했다. 향원정을 새로 꾸몄다는 소식을 일찍이 들었으나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향원정 연못 남쪽에 있던 취향교를 원래 자리인 북쪽으로 옮겼다. 향원정 연못 둘레를 한 바퀴 걷는다. 공사로 가림막을 쳐놓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향원정은 가을 단풍으로 유명했다.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걸었다.

경복궁 향원정 연못 옆 시무나무.

향원정 연못가 왜소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무나무였다. 전에 있던 시무나무 고목이 고사해서 2021년 경북 영양군 석보면 주남리 냇가에 자생하는 시무나무를 이곳에 옮겨 심었다고 한다. ‘시무’는 ‘스물’의 옛말이란다. 옛날에 마을 어귀에 동구나무로 시무나무도 심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시무나무를 20리마다 볼 수 있었다고 해서 ‘20리목’이라고도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숲속도 숲밖도 온통 연둣빛 신록으로 빛났다

다음날 백악산 동쪽 개운산 숲길을 걸었다. 개운산으로 들고 나는 길은 많은데, 그중 성북구 종암동 문화공간이육사를 출발 장소로 삼았다.

264예술공원에 있는 청포도 시비.

일제강점기의 독립투사이자 시인인 이육사가 살던 집이 문화공간이육사 건물 부근에 있었다. 이육사는 그곳에 살면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청포도’를 썼다. 문화공간이육사에 들러 그의 생애와 문학을 살펴봤다. 3층 전시실에서 ‘시가 내린 숲’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하고 있었다. 전시 공간을 숲의 분위기로 꾸미고 녹음된 물소리와 새소리도 들려준다. 이육사의 시가 적힌 하늘거리는 얇은 천들을 천장에 매달아 늘어뜨렸다. 전시 제목처럼 시가 내리는 듯했다. 시가 내리는 숲에서 이육사의 시를 읽고 개운산으로 향했다.

개운산 순환산책로. 운동장 한쪽,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본 풍경.

문화공간이육사에서 나와 종암로19길을 따라 400m 정도 가면 개운산 등산로 입구인 영산법화사가 나온다. 산으로 곧장 올라갔다. 개운산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개운산 순환산책로를 만났다. 마로니에마당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른다. 소나무숲 계단에 다 올라서면 막 물오른 신록의 숲이 다가선다. 오르막길이 끝나면 넓은 능선길이다. 마로니에마당으로 가는 숲길은 공중을 덮은 벚꽃의 마지막 흔적으로 애잔하다.

마로니에마당은 헬기장 표시가 된 넓은 마당이다. 이육사 시인의 시비와 연보비를 읽고 마당 둘레를 걷다가 마로니에나무(칠엽수)를 보았다. 이곳 이름이 마로니에마당이 된 이유다.

마당 한쪽 끝에서 동부센트레빌아파트 이정표를 따라 작은 운동장으로 내려서자마자 왼쪽으로 돌아 걷는다. 데크길과 오솔길이 나오는데, 오솔길로 걷는다. 산비탈에 복사꽃이 피었다. 산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연둣빛 숲을 배경으로 분홍빛 꽃을 피웠다. 자연이 내는 색의 조화가 아름답다. 산비탈은 온통 노란 개나리꽃이다.

오솔길은 산비탈 개나리꽃과 함께 계속 이어진다. 오솔길 아래 나란히 이어지는 데크길로 접어든다. ‘운동장’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걷는 내내 신록의 숲은 형광색 연둣빛을 발산한다. 꽃보다 아름다운, 생동하는 생명의 빛이다.

‘운동장’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계단에 서서 풍경을 돌아본다. 발아래 개나리꽃과 조팝나무꽃이 피었다. 산과 아파트단지의 경계는 녹색 띠를 이룬 소나무숲이다.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 능선이 길게 이어진다. 운동장 가장자리 시야가 터지는 곳에서 수락산과 불암산, 그 뒤 경기도의 어느 산줄기까지 바라본다. 길은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숲 밖도 안도 다 연둣빛이다. 숲속 갈림길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웃는다. 길은 어디로든 이어질 테고, 숲은 이렇게 신록으로 빛나는데 말이다. 온통 푸른 숲속에 피어난 하얀 목련꽃을 이정표 삼아 걷기로 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